노숙동·이축·이명겸 등에게 관직을 하사하다
노숙동(盧叔仝)을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삼고, 이축(李蓄)·이명겸(李鳴謙)을 모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이견의(李堅義)를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으로, 정이한(鄭而漢)을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유지례(柳之禮)를 황주 목사(黃州牧使)로 삼았으며, 《고려사(高麗史)》를 편수한 3품 이하의 관원으로 만 5개월간 근무한 자와 습진 훈도관(習陣訓導官)은 모두 한 자급(資級)을 더해 주었다.
임금이 정이한(鄭而漢)에게 말하기를,
"근래 평안도가 피폐(疲弊)하였고 금년에는 백성들이 농사마저 실패하여 경(卿)을 감사(監司)로 삼은 것이다."
하니, 정이한이 아뢰기를,
"신(臣)에게 중대한 책임을 맡기시니,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여 성덕(聖德)에 누(累)를 끼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근신한다면 평안도(平安道) 한 도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하였다. 정이한이 그 성품이 민첩하고 언변이 있어 권귀(權貴)1179) 를 잘 섬겨 드디어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고, 갑자기 좌승지(左承旨)로 승진(陞進)되더니, 때마침 조서안(趙瑞安)이 파면되고, 정이한이 양계(兩界)의 사정에 익숙하다는 것으로 특별히 임명한 것이다. 정이한이 축성(築城)으로 인하여 양계를 왕래하기를 1년에 두 차례씩이나 하였는데, 이제 갑자기 통찰(統察)하게 되어 한 도내(道內)가 이를 영광으로 알았다. 그는 도승지(都承旨)를 얻지 못한 것을 한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6책 42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註 1179]권귀(權貴) : 벼슬이 높고 권세가 강함.
○以盧叔仝爲承政院同副承旨, 李蓄、李鳴謙竝僉知中樞院事, 李堅義司憲掌令, 鄭而漢 平安道觀察使, 柳之禮 黃州牧使, 《高麗史》纂修三品以下官, 仕滿五朔者, 及習陣訓導官, 竝加一資。 上謂而漢曰: "比來平安道凋弊, 今年民失農業, 命卿爲監司。" 而漢啓曰: "臣授重寄, 恐不稱職, 以累上德。" 上曰: "如此謹愼, 則於平安一道何有?" 而漢性便敏, 善事權貴, 遂知名於世, 驟遷左承旨, 會趙瑞安罷, 以而漢慣兩界之事, 特拜之。 而漢因築城, 往來兩界歲至再, 今猝爲統察, 一道榮之。 然自以不得爲都承旨爲恨。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6책 42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