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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9권, 문종 1년 9월 1일 병신 2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경연에 나아가 《대학》의 강독을 시작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대학(大學)》의 강독(講讀)을 시작하였다. 임금이 어려서부터 힘써 배우고 부지런하여 동궁(東宮)에 있을 때 사서(四書)·오경(五經)·《좌전(左傳)》·《대학연의(大學衍義)》를 4, 5번 돌려 가면서 읽었고, 《강목(綱目)》·《송감(宋鑑)》 등의 서적까지도 진강(進講)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또 한가로울 때 제사(諸史)와 자집(子集)도 역시 모두 두루 열람하여 정박(精博)을 다하였고, 더욱 성리학(性理學)에 연구가 깊었으며 저술한 문장(文章)도 역시 간결하고 고아(古雅)하여 무릇 전지(傳旨)·유서(諭書) 중에서도 대체(大體)에 관계되는 것은 반드시 친히 지어서 내렸다. 또 초서(草書)와 예서(隷書)를 잘 써서 사람들이 작은 종이에 몇자만을 얻어도 다투어 보배롭게 간직하였다. 그러나, 매양 어린 환관(宦官)으로 하여금 이를 거두어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때 《대학연의(大學衍義)》의 강독을 마치고 경연관(經筵官)이 청하여 말하기를, ‘성상의 학문이 이미 고명(高明)하나 성현(聖賢)의 천언만어(千言萬語)가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에 지나가는 것이 없으니, 가벼이 잡서(雜書)를 강독하여서는 안됩니다. 청컨대, 다시 사서와 오경을 가지고 순환해 진강토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에 경연관으로 하여금 읽게 하고 듣곤 하였다. 뒤에 근신(近臣)에게 말하기를, ‘근자에 《근사록(近思錄)》과 사서(四書)를 보니, 비로소 성현의 말씀이 의미(意味)가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2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御經筵, 始講《大學》。 上自少, 力學孜孜, 在東宮講四書、五經、《左傳》《大學衍義》, 循環至四五度, 以至《綱目》《宋鑑》等書, 無不進講, 又於燕閑, 諸史子集, 亦皆歷覽, 極其精博, 而尤邃於性理之學, 其發爲文章亦簡古, 凡傳旨諭書之關於大體者, 必手製以下。 又善草隷, 人得寸紙隻字者, 爭寶之。 然每令小宦收拾, 不欲人見之。 至是, 畢講《大學衍義》,經筵官請曰: "聖上學問已高, 然聖賢千言萬語, 莫過四書五經, 不可汎講雜書。 請更以四書五經, 循環進講。" 上從之。 乃令經筵官讀而聽之。 後謂近臣曰: "近觀《近思錄》、四書, 乃知聖賢之言有味。"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2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