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승지 이계전이 《고려사》편수를 마치고 나서 임금의 재가를 청하다
이보다 앞서 도승지(都承旨) 이계전(李季甸)이 전에 정도전(鄭道傳) 등이 《고려사(高麗史)》를 편수하여 물품을 하사한 교서(敎書)를 가지고 아뢰기를,
"나라의 역사를 편수하고 상(賞)을 내려 표창하는 것은 전에도 이런 예가 있었고, 또 역대(歷代)를 통하여 또한 많이 있었습니다. 이제 《고려사》의 편수를 마치어 바쳤으니, 빌건대, 성상(聖上)께서 재결(裁決)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이계전에게 명하여 다시 전의 일들을 대내로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이계전이 아뢰기를,
"신(臣)이 삼가 《옥해(玉海)》를 상고하니, 정관(貞觀) 10년(636) 정월에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 방현령(房玄齡) 등이 주(周)나라·양(梁)나라·진(陳)나라·제(齊)나라·수(隋)나라의 《오사(五史)》를 편찬해 바치니, 계급을 올리고 차등을 두어 반사(頒賜)가 있었으며, 송(宋)나라 상부(祥符) 8년(1015)에 왕단(王旦) 등이 태조(太祖)와 태종(太宗)의 역사를 편찬하여 목록(目錄) 1권, 제기(帝紀) 6권, 지(志) 55권, 열전(列傳) 59권을 올리니, 우악(優渥)1170) 한 조서(詔書)를 내려 이에 답하고 왕단에게는 수사도 수사관(守司徒修史官)으로 올리고 조안인(趙安仁)·조형(晁逈)·진팽년(陳彭年)·하송(夏竦)·최준도(崔遵度) 등에게도 아울러 품질(品秩)을 올리고 물품을 하사하였으며, 왕흠약(王欽若)·진요수(陳堯叟)·양억(楊億)도 일찍이 그 편수에 참여(參與)한 바 있어 역시 물품을 하사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사마광(司馬光)에게 칙유(勅諭)를 내려 《자치통감》을 편수하게 하여 성사(成事)하였다.’ 운운(云云)하고, ‘위로는 만주(晩周)1171) 로 부터 아래로는 오대(五代)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발휘(發揮) 편집하여 일가(一家)의 체재를 이루었으며 그 포폄(褒貶)1172) 과 거취(去就)가 모두 의거(依據)한 바 있어 내가 살펴 열람하고 나서 진실로 깊이 가탄(嘉歎)하였다. 이제 경(卿)에게 은견대의(銀絹對衣)·요대(腰帶)·안마(鞍馬) 등을 별록(別錄)과 같이 하사하니, 이르거든 받기 바란다.’ 하였습니다. 《씨족대전(氏族大全)》은 원풍(元豊) 5년(1082)에 증공(曾鞏)이 이청신(李淸臣)·왕존(王存) 등과 더불어 역사를 편수한 것인데, 임금이 친히 중서성(中書省)에 조서(詔書)하기를, ‘《오조사(五朝史)》는 마땅히 증공에게 맡길 것이다.’ 하여, 드디어 사관(史官)이 되어 편찬하였습니다. 책이 완성되니 임금이 용의(龍衣)·금대(金帶)를 하사하고 중서 사인(中書舍人)에 발탁시켰습니다.
우리 태조조(太祖朝) 때에 정도전(鄭道傳)에게 하사한 교서(敎書)를 살피니, ‘진상한 《고려국사(高麗國史)》 37권의 일은 살펴 잘 알았노라.’ 운운(云云)하고 ‘이제 경에게 내구마(內廐馬) 1필, 백은(白銀) 50냥(兩), 단자(段子)1173) 1필(匹), 채견(綵絹)1174) 1필을 하사하니 이르거든 받기 바란다.’ 하였고, 세종조(世宗朝) 때 권제(權踶) 등이 《고려사(高麗史)》를 편수해 바쳐 당상(堂上)에 승진되고 하사물은 없었으며, 3품 이하의 문관(文官)에게는 가자(加資)를 하셨습니다. 《강목통감훈의(綱目通鑑訓義)》를 찬집(撰集)할 때, 신(臣) 이계전(李季甸) 및 김문(金汶) 등은 자급(資級)을 뛰어올라 제수되었고, 이사철(李思哲)·최항(崔恒) 등은 가자(加資)하였으며, 찬집을 마친 뒤에도 모두 다시 가자(加資)해 주셨습니다. 또 《치평요람(治平要覽)》을 찬집할 때는 3품(三品) 이하의 문신에게 3차례나 가자(加資)가 있었습니다. 신이 보니, 역대의 여러 신하들이 역사를 닦아 올리면 혹은 두터운 은혜로써 조서(詔書)를 내려 답하기도 하고 혹은 물품을 하사하기도 하고 품질(品秩)을 승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서의 하사는 그 일이 헛된 문구(文具)1175) 에 치우치는 감이 있습니다. 앞서 본조(本朝)에서 궤장(几杖)을 하사할 때 으레 교서(敎書)를 내리시고 대신(大臣)은 사양하는 전문(箋文)을 올렸는데, 모두 교서와 비답(批答)으로만 하던 것을 세종대왕께서 한갓 빈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이를 폐지하셨습니다. 이제 사책의 편수를 완성함에 있어 교서를 내리시는 일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중국에 들어가서 조칙(詔勅)을 받들어 오든가. 가뭄에 비를 빌어 비를 얻는 등의 한때의 작은 일들도 오히려 물품을 하사하여 포상하고 있는데, 더욱이 이 고려사는 그 편년법(編年法)을 고쳐 마사(馬史)1176) 의 체재를 본받아 세가(世家)·지(志)·표(表)·열전(列傳) 등 모두 1백여 권으로 하여 장차 이를 후세에 전하게 되었으니, 신은 아마도 포상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빌건대 당상관(堂上官) 이상은 성상께서 헤아려서 적당히 내리시고, 3품 이하는 가자(加資)를 하시고 그 당시에는 비록 춘추관(春秋館)에 사진(仕進)하지 않았더라도 오랫동안 편찬에 참여했던 자에게는 송조(宋朝)에 왕흠약(王欽若) 등이 편찬에 참여한 공으로 포상을 시행한 고사(故事)에 의하여 그 노고에 보수(報酬)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채백(綵帛)1177) 의 하사는 지금 바야흐로 국상(國喪) 중이라 마땅치 않으니, 차등을 두어 안장과 말을 내리는 것이 온당할 것이고, 3품 이하는 한 자급(資級)을 더하여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고, 이내 좌찬성(左贊成) 김종서(金宗瑞)·공조 판서(工曹判書) 정인지(鄭麟趾)·우참찬(右參贊) 허후(許詡)·예문 제학(藝文提學) 이선제(李先齊) 등에게는 각각 안장 갖춘 말 1필(匹)씩을 하사하고, 부제학(副提學) 신석조(申碩祖)에게는 말 1필을 하사하고, 한성부 윤(漢城府尹) 김조(金銚)·대사헌(大司憲) 정창손(鄭昌孫)·부제학 최항(崔恒) 등도 일찍이 편수에 참여한 바 있었다고 하여 또한 각각 말 1필씩을 하사하였으며, 당시 편찬에 종사한 자와 일찍이 편찬에 참여하였던 3품 이하의 관원에게는 각각 한 자급씩을 더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27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 [註 1170]우악(優渥) : 은혜가 매우 넓고 두터움.
- [註 1171]
만주(晩周) : 동주(東周)를 말함.- [註 1172]
포폄(褒貶) : 시비·선악을 평정함.- [註 1173]
단자(段子) : 비단.- [註 1174]
채견(綵絹) : 오색 비단.- [註 1175]
○乙未/前此都承旨李季甸, 將鄭道傳等修《高麗史》, 賜物敎書以啓曰: "修史褒賞, 前有此例, 且歷代亦多有之。 今《高麗史》畢修以進, 乞睿裁施行。" 命季甸, 更歷考前事以啓。 至是季甸啓曰: "臣謹考《玉海》, 貞觀十年正月, 尙書左僕射房玄齡等, 撰成周、梁、陳、齊、隋五史, 上之進階, 頒賜有差, 宋 〈大中〉祥符八年, 王旦等上太祖、太宗史, 目錄一卷, 帝紀六, 志五十五, 列傳五十九, 優詔答之, 加旦守司徒修史官, 趙安仁、晁逈、陳彭年、夏竦、崔遵度, 竝進秩賜物, 王欽若、陳堯叟、楊億, 嘗預修亦賜之。 《資治通鑑》: ‘勑司馬光, 修《資治通鑑》成事云云, 上自晩周下迄五代, 發輝緝綴, 成一家之書, 褒貶去就, 有所據依, 省閱以還, 良深嘉歎。 今賜卿銀絹對衣、腰帶、鞍馬具, 如別錄至可領也。’ 《氏族大全》, 元豊五年, 曾鞏與李淸臣、王存等修史, 上手詔中書曰: ‘《五朝史》, 事宜付曾鞏。’ 遂爲史官修撰。 史成, 上賜龍衣、金帶, 擢試中書舍人。 太祖朝賜鄭道傳敎書省所: ‘上《高麗國史》三十七卷事, 具悉云云, 今賜卿內廐馬一匹、白銀五十兩、段子一匹、綵絹一匹, 至可領也。’ 世宗朝權踶等修《高麗史》, 以(以)進堂上無賜物, 三品以下文官加資。 《綱目通鑑訓義》撰集時, 臣季甸及金汶等超資, 李思哲、崔恒等加資, 撰畢後亦皆加資。 《治平要覽》撰集時, 三品以下文臣, 三次加資。 臣觀歷代諸臣修史以進, 或優詔答之, 或賜物進秩。 然賜詔事涉虛文。 前此本朝賜几杖, 例下敎書, 大臣上辭箋, 皆以敎書批答, 世宗大王以爲虛文而罷之。 今以史成下敎書, 不必爲也。 如今入朝奉勑, 祈雨得雨, 一時小事, 尙且賜物以賞之況此《高麗史》改其編年之法, 以效馬史之體, 爲世家、志、表、列傳, 總百餘卷, 將垂後世, 臣疑其不可無賞也。 乞堂上官以上, 睿裁量賜, 三品以下加資, 雖當時不仕春秋館者, 久預修撰者, 依宋朝王欽若等預修故事施行, 以酬其勞何如?" 上曰: "賜綵帛, 時方國喪不宜也, 差賜鞍馬爲便, 三器以下, 宜加一資。" 乃賜左贊成金宗瑞工曹判書鄭麟趾、右參贊許詡、藝文提學李先齊等, 各鞍具馬一匹, 副提學辛碩祖馬一匹, 漢城府尹金銚、大司憲鄭昌孫、副提學崔恒等, 嘗預修亦各賜馬一匹, 其時仕纂修及嘗預修三品以下官, 令各加一資。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27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 [註 1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