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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9권, 문종 1년 8월 5일 경오 1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사헌부에서 문중선의 죄를 청하다

정사를 보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문중선(文仲善)이 왕명(王命)을 품(稟)하여 친히 전하는 것이 그 직분상 당연히 할 일인데 오매패(烏梅牌)974) 를 별감(別監)에게 맡겨서 선명(宣命)975) 을 옮겨 전하므로 집현전(集賢殿)에서 사리에 의거하여 회설(回說)을 보냈음에도 아직도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폭언(暴言)을 더하고 있으니 그 버릇을 키워서는 아니됩니다. 청컨대 장(杖) 70대에 도(徒) 2년에 처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감(末減)하여 태(笞) 40대에 그치었다. 형조(刑曹)에서 아뢰기를,

"병조(兵曹)의 영사(令史)976) 이강(李剛)이 일찍이 향리(鄕吏)의 삼정(三丁)977) 으로서 들어와 벼슬하다가 무거운 죄를 범하고 먼 곳에 유배(流配)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병조 영사’라 사칭(詐稱)하고 충청도에서는 함부로 역마(驛馬)를 타고 우리(郵吏)978) 를 침해하였으며, 또 원자명(元自明) 등의 고신(告身)을 위조하여 법망(法網)을 크게 무너뜨리는 등 그 간사한 꾀를 부리고 횡포를 자행함이 비길 바 없습니다. 형률을 살피건대, 장(杖) 1백 대에 도역(徒役) 3년을 가하는 것이 마땅하나, 이런 간특한 무리들을 다만 이 율(律)만을 적용한다면 장차 이를 징계해 다스리지 못할 것이니, 청컨대 법밖의 형률을 시행하여 전가족을 변지(邊地)로 사민(徙民)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한 사람의 죄 때문에 그 처자식들에게까지 미치게 하며, 또 어찌 반드시 법 밖의 율을 시행하겠는가? 마땅히 정률(正律)을 쫓아 죄를 주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좌참찬(左參贊) 안숭선(安崇善)이 아뢰기를,

"신이 전에 북경(北京)에 갔을 때 중국 사람들의 살림집을 살펴보니, 집집마다 양(羊)을 잘 기르고 있었습니다. 신이 이런 뜻을 가지고 회계(回啓)하였더니, 세종 대왕께서 통사(通事) 이흥덕(李興德)을 보내시어 중국으로부터 양을 사 오게 하고, 곧 이흥덕으로 하여금 그 임무를 오랫동안 맡게 하여 이를 분예빈시(分禮賓寺)979) 에서 보살펴 기르게 하였으므로, 양이 날로 번성하였습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전구서(典廐署)에서도 또한 희생(犧牲)을 관장하고 있어서 그 일이 가볍지 않은 까닭에 세종조 때 김기지(金器之)로 하여금 그 임무를 오랫동안 맡게 하여 희생을 기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오랫동안 맡은 사람이 없고 신진의 관원이 번갈아 나가고 들어와 목양(牧養)에 관한 모든 일들이 매우 허술한 상태에 있습니다. 청컨대 근검(勤儉)한 사람을 얻어 〈그로〉 하여금 오래 맡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대사헌(大司憲) 정창손(鄭昌孫)이 아뢰기를,

"각도(各道)에 행대(行臺)980) 를 나누어 보내는 일을 의논하여 정하기만 하고 아직 시행하지 않았으니, 청컨대 이를 보내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난 봄에 이미 행대를 보냈기 때문에 내 뜻은 요즈음에는 정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니, 정창손이 다시 아뢰기를,

"앞서 행대를 나누어 보낼 때에 소재지의 수령(守令) 및 절제사(節制使)·처치사(處置使)·만호(萬戶) 등이 불법한 일을 많이 행하다가, 행대가 그 지경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놀라서 모든 소행을 다 감추었다가, 그가 서울로 귀환함에 미쳐서는 바로 전대로 되돌아가 무익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경계해 깨우친 것이 또한 많았으니, 행대를 명하여 보내는 것이 정치의 근본에 매우 합치하는 일인가 합니다. 또한 본부(本府)981) 에서 외방의 범법 사실을 듣고 이를 감사(監司)에게 이첩(移牒)하면 감사가 다시 수령을 보내어서 죄인을 신문(訊問)하면 모두가 듣던 바와 다르고 도리어 그 허물을 엄폐합니다. 만약 행대가 그 지경에 내려간다면, 본부에서 들은 대로 행대에게 이첩해 추신(推訊) 한다면 어찌 수령을 보내는 것보다 낮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행대를 나누어 보내어 월여 동안 순력(巡歷)하며 규찰(糾察)을 엄히 한다면 조그마한 보익(補益)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일찍이 헌의(獻議)하는 자가 말하기를, 근래 행대가 순력할 때 각 고을 수령들의 불법 행위의 탄로가 빈번히 있어 거의 모두가 두려워서 움추리고 있을 것이므로, 금년·명년 동안은 비록 보내지 않아도 가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경(卿)의 말을 들으니, 행대를 다시 보냄직도 하다. 무릇 수령이란 비록 한 달 동안이라도 두려워서 금법을 범하지 않으면 족한 것이니, 금년 가을에도 역시 보내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다. 내 마땅히 다시 의논해 시행하리라."

하였다. 정창손이 또 아뢰기를,

"문중선(文仲善)이 환관(宦官)으로서 명을 받들어 친히 선전(宣傳)하는 것은 그 직분에 당연히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오매패(烏梅牌)를 가지고 여러 별감(別監)에게 위임하여 멀리서 왕명을 선포하였고, 또 집현전에서 사리에 의거하여 다시 힐문한 까닭을 깨닫지 못하고는 도리어 횡패(橫悖)982) 를 더하여 조정 관원을 멸시하고 욕보였으며, 근자에 경연관(經筵官)을 궤향(饋餉)983) 할 때, 경연관을 접대하던 환관이 부제학 최항(崔恒)과 함께 궤향하는 청사에 들어갈 수 없다 하여 함부로 쫓아낸 바 있으니, 그 풍속이 실로 두렵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두터운 은혜로 대우해서는 아니됩니다. 이제 그를 정률(正律)로 다스리지 않고 도리어 가벼운 법을 가하시니, 신은 아마도 이를 징계해 다스릴 수 없고, 환시(宦寺)들이 더욱 커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정률을 가하소서."

하니, 윤허하지 않았다.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무비사(武備司)984) 정랑(正郞) 손조서(孫肇瑞)는 도성(都城)의 수축으로 인하여 항상 수성 도감(修城都監)에 나아가고, 승여사(乘輿司)985) 정랑(正郞) 송처검(宋處儉)은 벌써부터 진설(陣設)986) 에 참여하고 있는데, 진설을 편찬하는 것은 곧 무비(武備)에 속하는 일로서 무비사는 사무가 번다(煩多)하고 승여사는 사무가 간략합니다. 청컨대 사무가 간략한 직무를 손조서에게 옮겨 주어 그대로 도성 수축을 감독(監督)케 하고 사무가 번다한 직무를 송처검에게 옮겨 주어 그 본사(本司)에 상시 근무토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에〉 당시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손조서의 인품이 송처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무를 이유로 이같이 청한 것이라고 하였다. 형조(刑曹)에서 청하기를,

"조육(趙育)으로부터 속공(屬公)된 노비(奴婢)를 성균관(成均館)에 10구(口), 남부 학당(南部學堂)에 30구, 중부 학당(中部學堂)에 35구, 동부 학당(東部學堂)에 25구, 서부 학당(西部學堂)·한성부(漢城府)·사간원(司諫院)에 각각 10구씩을 주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선공감(繕工監)은 공역을 관장하는 곳이라서 오로지 인력(人力)만을 쓰고 있으니, 모름지기 선공감에 40구(口)쯤 참작해 주고 그런 연후에 다른 여러 관사(官司)에 나누어 주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17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농업-축산(畜産)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신분(身分)

  • [註 974]
    오매패(烏梅牌) : 임금이 선소(宣召:대신을 부름)하거나 선명(宣命:왕명을 선포함)할 때 내리던 패(牌). 왕명(王命)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오매(烏梅:검은 매화나무)로 만든 패(牌)임.
  • [註 975]
    선명(宣命) : 임금의 왕명(王命).
  • [註 976]
    영사(令史) : 아전·서리(胥吏).
  • [註 977]
    삼정(三丁) : 여말 선초(麗末鮮初)에 향리(鄕吏) 1호(戶)에 세 장정(壯丁)이 한꺼번에 역(役)을 서게 되면, 그 중에 한 사람은 역(役)을 면제하여 주던 것을 말함.
  • [註 978]
    우리(郵吏) : 역리.
  • [註 979]
    분예빈시(分禮賓寺) : 조선조 때 빈객(賓客)의 연향과 공궤(供饋)를 맡아 보던 예빈시(禮賓寺)의 분사(分司).
  • [註 980]
    행대(行臺) : 조선조 때 민간의 이해(利害)·수령(守令)의 득실(得失)·주군 향리(鄕吏)의 횡포를 살피기 위하여 지방에 보내던 사헌부(司憲府)의 감찰(監察). 행대 감찰(行臺監察).
  • [註 981]
    본부(本府) : 사헌부.
  • [註 982]
    횡패(橫悖) : 거스르고 어기어짐.
  • [註 983]
    궤향(饋餉) : 임금이 내린 음식을 먹임.
  • [註 984]
    무비사(武備司) : 조선조 때 병조(兵曹)에 속한 분사(分司)의 하나. 군적(軍籍)·마적(馬籍)·병기(兵器)·전함(戰艦)·점열(點閱)·군사 훈련·방수(防戍)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음.
  • [註 985]
    승여사(乘輿司) : 조선조 때에 병조에 속한 한 분사(分司). 노부(鹵簿)·승여(乘輿)·목마(牧馬)·역(驛)·경각사(京各司)의 사령(使令)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음.
  • [註 986]
    진설(陣設) : 진도(陣圖)법.

○庚午/視事。 司憲府啓: "文仲善稟命親傳, 職分當爲, 乃以烏梅牌委諸別監, 傳傳宣命, 集賢殿據理回說, 尙不覺悟, 反加橫言, 漸不可長。 請杖七十, 徒二年。" 上末減, 止笞四十。 刑曹啓: "兵曹令史李剛, 曾以鄕吏三丁入仕, 犯重罪配于遠地。 至是詐稱兵曹令史, 乃於忠淸道濫騎驛馹, 侵漁郵吏, 且僞造元自明等告身, 大壞禁網, 其售奸逞, 暴無比。 按律宜杖一百, 加役三年, 然此奸侫之徒, 只抵此律, 則將無所懲艾, 請行法外之律, 合戶徙邊。" 上曰: "豈以一人之罪, 延及妻孥, 又何必行法外之律乎? 當從正律罪之。" 左參贊安崇善啓: "臣昔赴京時, 觀中國人居家, 家皆善畜羊。 臣將此意回啓, 世宗大王差通事李興德, 買羊于中國而來, 仍使興德爲久任, 監養于分禮賓寺, 羊日繁盛。 非特此也, 典廐署亦掌犧牲, 其事非輕, 故世宗朝, 以金器之爲久任, 以養犧牲。 今無久任之人, 乃以新進之士, 送出迭入, 牧養諸事, 甚爲踈虞。 請得勤儉之人, 俾爲久任。" 上然之。 大司憲鄭昌孫啓: "各道分遣行臺議定, 而未行, 請遣之。" 上曰: "去春已遣行臺, 故予意以爲, 近者可停也。" 昌孫更啓: "前此分遣行臺, 所在守令及節制使, 處置使, 萬戶等, 多行不法, 聞行臺下界, 則望風驚輒匿所爲, 及其還京, 尋復如常, 似爲無益。 然其間有所警駭省者亦多, 命遣行臺, 甚合治體。 且本府聞外方犯法之事, 而移牒監司, 監司差守令推覈, 皆不如所聞, 而反掩其咎。 若行臺下界, 則本府隨所聞, 移牒行臺而推之, 豈不愈於差守令乎? 請分遣行臺, 踰月巡歷, 以嚴糾察, 庶有小補。" 上曰: "嘗有議者以爲: ‘近來行臺之行, 各官守令不法敗露者, 比比有之, 庶皆畏縮矣, 今明年間, 雖勿遣可也。’ 今聞卿言, 行臺復可遣也。 凡守令雖一月之內, 畏不犯禁足矣, 今秋亦遣甚可。 予當更議施行。" 昌孫又啓: "仲善以宦官受命, 親自宣傳, 職本當爲也。 乃以烏梅牌委諸別監, 遙宣上命, 又不悟集賢殿據理更問之故, 反加橫悖, 凌辱朝官, 近者經筵官饋餉時, 對客宦官, 以副提學崔恒, 不宜同入饋廳, 擅令出之, 其漸可畏。 如此之人, 不可以優恩待之也。 今不施正律, 而反加輕典, 臣恐無所懲艾, 而宦寺益張矣。 請加正律。" 不允。 兵曹啓: "武備司正郞孫肇瑞, 因修築都城, 常仕修城都監, 乘輿司正郞宋處儉, 曾參陣說, 修撰陣說, 乃武備之事, 武備司事煩, 乘輿司事簡。 請以事簡之任, 移授肇瑞, 而仍監修城, 以事煩之任, 移授處儉, 而常仕本司。" 從之。 時人皆言, 肇瑞人品不及處儉, 故因其事而請之也。 刑曹請: "以趙育屬公奴婢, 於成均館給十口, 南部學堂三十口, 中部學堂三十五口, 東部學堂二十五口, 西部學堂、漢城府、司諫院各十口。" 上曰: "繕工監掌工役, 專用人力, 須於繕工監量給四十口, 然後分諸他司。"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2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17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농업-축산(畜産)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신분(身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