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담이 불사를 열은 안완경의 족형을 국문하도록 청하다
사헌 장령(司憲掌令) 김담(金淡)이 아뢰기를,
"신 등은 토당동(土堂洞)의 불사(佛事)를 듣지 못하였다가, 대사헌(大司憲) 안완경(安完慶)이 사직(辭職)함으로 말미암아 그 뒤에야 알았습니다. 청컨대 절의 중을 잡아 와서 국문(鞫問)하게 하소서."
하였으나, 임금이 윤허(允許)하지 않았다. 다시 아뢰기를,
"《육전(六典)》에는 ‘비록 상(喪)을 당하여 천망(薦亡)495) 하는 때라도 다만 수륙재(水陸齋)는 베풀되, 법석(法席)을 행하지는 못한다.’ 하였는데, 이제 광평 대군(廣平大君)의 부인(夫人)이 까닭없이 법석을 베푼 것은 잘못입니다. 그 절의 중에게 물으면 법을 어긴 일이 반드시 많을 터이며, 만약 이문(移文)하여 추문(推問)한다면 확실히 알 수 있는 일도 현추(現推)할 수 없으니, 청컨대 잡아 와서 국문(鞫問)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불사를 금지하는 것은 법에 정식 조목이 없으며, 또 이 일은 내가 이미 아니 반드시 법을 어긴 일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전일에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용문산(龍門山)의 불사를 베풀 때에 부인도 갔으나 다만 농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바깥 사람으로는 누가 절에 올라가지 않은 것으로 알겠습니까? 이제 토당사(土堂寺)와 광평 대군 부인이 있는 집이 매우 가까우며 부인이 오랫동안 집에 있었으나 잇달아 불사를 하였으니, 신 등은 부인이 반드시 절에 올라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부인은 비록 절에 올라가지 않았을지라도 수종(隨從)하는 부녀자가 어찌 왕래하지 않았겠습니까? 승인(僧人)이 함부로 여리(閭里)를 다니지 못함은 절로 금령(禁令)이 있거니와, 과부의 집에는 더욱 엄하게 금하니, 이는 작은 사고가 아닙니다. 가령 부인이 분묘(墳墓)를 위하여 오래 그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예(禮)에는 효자(孝子)가 여막(廬幕)에 살되 상제(喪制)를 마치면 반드시 신주(神主)를 사당(祠堂)에 두고 때에 맞추어 향사(享祀)하는 것인데, 더구나 부인으로서 늘 절 곁에 있는 것이 옳겠습니까? 위의 법석의 원인 및 부인이 절에 올라갔는지의 여부는 모름지기 절의 중을 국문하여서 인심(人心)을 쾌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부인이 절에 올라간 것을 확실히 안 뒤에 추문하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절의 중은 국문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인에게 명하여 빨리 서울로 돌아오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아는데도 그 불사 베푼 것을 다시 추문하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불사가 오늘 이미 끝났으므로, 부인은 반드시 빨리 서울로 돌아올 것이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대저 종실(宗室)에서 하는 일을 성상께서 다 아시겠으나, 그 사이에 법을 어기는 일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절의 중을 국문한다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찍이 하교(下敎)하시기를, 법을 범하는 사람이 있거든 한결같이 법령에 따라 과죄(科罪)하라.’ 하였거니와, 이제 불사를 크게 벌여서 법을 범함이 아주 심하니, 청컨대 나라안의 사람들로 하여금 불사를 엄히 금함을 다 알게 하소서. 또 안완경(安完慶)이 헌사(憲司)의 장(長)으로서 승인(僧人)을 통청(通請)한 일도 옳지 못하니, 청컨대 아울러 추핵(推劾)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의 말은 비록 좋으나, 선왕(先王)의 조정에 있어서라면 반드시 감히 입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이 불사는 광평 대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안군 부인(撫安君夫人)의 기일(忌日)이기 때문에 베푼 것이니, 추문할 수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81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註 495]천망(薦亡) : 천도(薦導).
○司憲掌令金淡啓: "臣等未聞土堂洞佛事, 因大司憲安完慶辭職, 然後乃知。 請拿寺僧, 來鞫之。" 上不允。 復啓曰: "《六典》: ‘雖遭喪薦亡之時, 只設水陸, 毋得行法席。’ 今廣平夫人, 無因設法席, 非也。 問其寺僧, 則違法之事, 必多。 若移文推之, 則雖的然之事, 不能現推。 請拿來以問。" 上曰: "禁止佛事, 法無正條, 且此事予旣知之, 必無違法之事。" 復啓曰: "前日首陽大君設龍門山佛事時, 夫人亦往, 但止農舍, 不詣其寺。 然外人, 孰知其不上寺乎? 今土堂寺與廣平夫人所在之第, 甚邇。 夫人長在其第, 連作佛事, 臣等以爲 ‘夫人必上寺也。’ 夫人雖不上寺, 隨從婦女, 其不往來乎? 僧人毋得橫行閭里, 自有禁令, 寡婦之家, 尤痛禁之, 此非細故也。 縱曰: ‘夫人爲墳墓, 長在其傍’, 禮, 孝子居廬, 終制之後, 則必置神主于祠堂, 以時享祀, 況以夫人, 而常在寺傍, 可乎? 上項法席根因及夫人上寺與否, 須鞫寺僧, 以快人心。" 上曰: "的知夫人上寺, 然後推之, 可也。" 復啓曰: "寺僧, 不可不鞫, 且命夫人, 速還京都。" 上曰: "予旣知其設佛事, 復令推問, 可乎? 佛事今日已畢, 夫人必速還京。" 復啓曰: "大抵宗室所爲, 上皆知之, 然其間違法之事, 安能悉知? 若鞫寺僧, 則可知其實。 嘗下敎云: ‘如有犯法之人, 一依法令科罪’, 今大張佛事, 犯法莫甚。 請須鞫問, 使國人, 皆知嚴禁佛事。 又安完慶, 以憲司之長, 通請僧人之事, 亦爲不可, 請幷劾之。" 上曰: "若等之言, 雖善, 然在先王之朝, 則必不敢開口, 且此佛事, 非爲廣平, 乃因撫安君夫人忌日而設, 不可推也。"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81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