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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7권, 문종 1년 4월 20일 무자 2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윤대하고 경연에 나아가 《대학연의》를 강하다

정사(政事)를 보고, 윤대(輪對)하고, 경연(經筵)에 나아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講)하였다. 검토관(檢討官) 하위지(河緯地)가 당(唐)나라 태종(太宗)위징(魏徵)430) 을 대우한 두 가지 일을 논하기를,

"태종이 전에는 언박(彦博)을 시켜서 안험(按驗)431) 하였으니, 매우 명철(明哲)하였습니다. 그 후에 참소(譖訴)를 받아서 혼인(婚姻)을 파하고, 비석(碑石)을 엎어 버렸으니 후군집(侯君集) 등을 천거한 것, 또는 저수량(褚遂良)432) 에게 간초(諫草)를 보였다는 것을 의중(意中)에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모르겠다."

하였다. 하위지(河緯地)가 말하기를,

"무릇 사람이 천거할 즈음에 우연히 과실이 있는 것이니 이를 노할 것까지는 없다면 차라리 간초(諫草)를 보인 것으로 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뒷날에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위징(魏徵)이 매양 조정에서 나를 욕보였으니, 모름지기 이 촌 늙은이를 죽이리라.’ 하였으니, 욕하는 말치고는 깊이 그를 미워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위징의 성품이 본디 곧으니, 비록 실제로 간초를 보였더라도 책망할 것은 없다."

하였다. 하위지가 말하기를,

"옛사람에는 간초를 불살라서 비록 자손이라도 볼 수 없게 한 사람이 있었으니, 위징이 간초를 보인 것은 역시 과실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방하였다. 비록 간초를 불사르는 아름다움 만은 못하나, 어찌 큰 과실이겠는가?"

하였다. 하위지가 말하기를,

"태종이 참으로 간초를 보인 것으로 노하였다면 어진 임금이 아닙니다. 이제 두 가지 일을 보면 명철(明哲)함과 암우(暗愚)함이 매우 분간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태종은 어진 임금인데, 어찌 그 일로 가벼이 평의(評議)하겠는가?"

하였다. 하위지가 말하기를,

"대저 임금은 흔히 잘못을 문식(文飾)433) 합니다. 태종이 요동(遼東)을 쳐서 그리 크게 패한 것이 아니니, 잘못을 문식할 수 있을 듯한데도 뉘우치는 말을 하였으니, 이것이 그를 어진 임금이라 하는 까닭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좋은 말이다."

하였다. 하위지가 또 말하기를,

"하삼도(下三道)의 절제사(節制使)는 일이 없는 데에 있으면서 오히려 절제사(節制使)의 녹(祿)을 받는데, 평안도 절제사는 방수(防戍)의 중한 곳에 있는데도, 도리어 아록(衙祿)을 받으니, 참으로 흠결이 있는 법전(法典)입니다. 세종(世宗)께서 일찍이 명하여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김윤수(金允壽)와 평안도 도절제사 김효성(金孝誠)에게 절제사의 녹을 주게 하셨음은 어찌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청컨대 항규(恒規)434) 로 삼아서 주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우대하여 받아들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7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재정(財政)

  • [註 430]
    위징(魏徵) : 당나라 태종(太宗) 때 명신.
  • [註 431]
    안험(按驗) : 자세히 살펴서 증거를 세움.
  • [註 432]
    저수량(褚遂良) : 당나라 초기의 명신.
  • [註 433]
    문식(文飾) : 일의 실속은 없이 겉만 그럴듯이 꾸밈.
  • [註 434]
    항규(恒規) : 상례(常例).

○視事, 輪對, 御經筵, 講《大學衍義》。 檢討官河緯地, 論 太宗魏徵二事曰: "太宗前, 則使彦博按驗, 其明甚矣。 其後受譖, 停昏仆碑, 意其擧侯君集等、或示褚遂良諫草。 上曰: "予亦未知。" 緯地言: "凡人薦擧間, 偶有過失, 不足致怒, 無乃怒示諫草歟? 他日太宗以爲: ‘魏徵每廷辱我, 會須殺此田舍翁’, 辱之爲言, 深惡之也。" 上曰: "此亦未可知也。 , 性本直, 雖實示草, 無足責也。 緯地言: "古之人有焚諫草, 雖子孫, 不得見者, 之示草, 不亦過乎?" 上曰: "無傷也。 雖不如焚草之美, 豈是大過乎?" 緯地言: "太宗誠以示草爲怒, 則非賢君也。 今觀二事, 則明暗甚分。" 上曰: "太宗賢君, 豈可以此輕議乎?" 緯地言: "大抵人主, 多文過飾非, 太宗遼東, 甚非大敗, 若可文過, 而乃有悔悟之言, 此其所以爲賢君也。" 上曰: "善。" 緯地又言: "下三道節制使, 居無事之地, 猶受節制之祿, 而平安道節制使, 則居防戍重處, 反受衙祿, 實爲欠典。 世宗嘗命給咸吉道都節制使金允壽平安道都節制使金孝誠等節制使之祿, 豈非以此歟? 請以爲恒規給之。" 上優納之。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7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