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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7권, 문종 1년 4월 1일 기사 6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윤면이 경혜 공주의 집을 짓는 데 30여 가의 인가가 철거됨을 아뢰다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윤면(尹沔)이 아뢰기를,

"신 등이 이제 듣건대 장차 영선(營繕)하려고 하여 철거시키도록 명하신 양덕방(陽德坊)의 인가가 30여 구(區)에 이른다 하는데, 그 곳을 무엇에 쓰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역하는 자들이 비록 외방(外方)의 농민들은 아니나, 농사철을 당하여 온갖 사무를 아울러 정지하고서 백성들을 사역시켜 역사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또 즉위하신 처음에는 마땅히 안정(安靜)에 힘써야 하는데, 사람의 사는 곳을 철거하여 헐면, 혹은 원망이 일어날 것이니, 청컨대 정지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혜 공주(敬惠公主)가 지금 집이 없으므로 그 집을 지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바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민력(民力)을 보아가며 점차로 성취하려고 할 따름이다. 너희들이 실지로 무엇에 쓰려는지 몰라서 와서 말하는 것인가? 그 까닭을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하였다. 윤면이 다시 아뢰기를,

"신 등이 처음에는 장차 영양위(寧陽尉)의 집을 짓는다고 들었으나, 오늘 아침에 그 방(坊)의 관령(管領)327) 을 잡아다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쓰일 곳은 아직 모르나, 다만 헐어내는 인가가 거의 30여 구(區)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이 말을 듣고서는 어디에 쓰일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이제 명을 듣고서야 영양위의 집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30여 가(家)를 헌다면, 그들의 이사하여 옮길 고초가 참으로 염려됩니다. 또 영양위는 사는 집이 없지 않으니, 혹은 근방에서나 혹은 다른 곳에서 인가를 사들여서 개조(改造)하여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영양위가 사는 집은 그가 사사로이 마련한 것이고, 공가(公家)에서 준 것도 아니다. 또 기울어 위험하고 좁기도 하므로 영조(營造)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부마(駙馬)328) 에게는 으레 집 한 채를 지어서 주는 것이니, 지어 준다면 모름지기 터를 가려야 하는데, 다시 어느 곳에서 빈 터를 얻겠는가? 내가 듣기는 어쩔 수 없이 헐리는 집이 다만 7, 8구(區)뿐이라 하니, 어찌 30여 구(區)나 헐리게 될 줄 생각하였겠는가? 만약 그런 폐단이 있거든, 다시 살펴서 아뢰라."

하였다. 세종조(世宗朝) 말엽부터 대군(大君)이 사는 집이 지극히 장엄하고 화려하여 말하는 자가 상당히 있었으므로, 임금이 그 폐단을 깊이 알고서 공주를 위하여 집을 짓지 않고 옛집을 수리해서 하사하려고 하였다. 수리가 이미 끝나고 출합(出閤)329) 할 날이 아직 남았을 적에 그 옛집이 기울어져 위험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새로 짓도록 명하였다. 유사(有司)에서 집을 짓는 것이 정도에 지나쳤으나, 임금이 이를 알지 못하였다. 대간(臺諫)에서 말을 많이 하였는데, 임금이 믿지 않고 그 집에 거둥하여 살펴보려 하였으나, 끝내 실행하지 못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71면
  • 【분류】
    건설-건축(建築) / 정론-정론(政論)

  • [註 327]
    관령(管領) : 조선조 때 한성(漢城) 오부(五部)에 속해 있던 각방(各坊)의 우두머리를 말함.
  • [註 328]
    부마(駙馬) : 임금의 사위.
  • [註 329]
    출합(出閤) : 왕자(王子)나 공주(公主)가 성장하여 결혼한 뒤에 사궁(私宮)으로 나가는 것.

○司憲持平尹沔啓: "臣等今聞 ‘將欲營繕, 命撤陽德坊人家, 至三十餘區’, 未知用之何處。 所役者, 雖非外方農民, 然當農月, 百務竝停, 不可役民興作也。 且卽位之初, 當務安靜, 而撤毁人居, 或興怨咨。 請停之。" 上曰: "敬惠公主時, 無家舍, 故欲起第, 然非欲急急爲之, 徐觀民力, 漸次成就耳。 若等實未知所用之處, 而來言乎? 知其所以, 而有是言歟?" 更啓曰: "臣等初聞將構 ‘寧陽尉之第’, 今朝拿其坊管領, 而問之, 答云: ‘用之之處則未知, 但撤去人家, 幾至三十餘區。’ 臣等聞此, 未能的知用於何處, 今聞命, 乃知爲寧陽尉之第。 然至撤三十餘家, 其播遷之苦, 誠爲可慮。 且寧陽尉非無居第, 或於旁近, 或於他處, 買得人家, 改造以給, 何如?" 上曰: "今寧陽尉所居之第, 乃其私備, 非公給者也。 又傾危狹窄, 故不得已營造。 且駙馬例, 構一第以給之, 若其造給, 則須擇地, 又何處得空地乎? 予聞 ‘不得已撤去之家, 只七八區, 豈意至撤三十餘區也? 如有其弊, 更審以啓。" 自世宗之末, 大君居第, 極爲壯麗, 頗有言者, 上深知其弊, 不欲爲公主起第, 欲修舊第以賜之。 繕修已訖, 出閤有日, 有言其舊第傾危者, 迺命新構。 有司經營過度, 上不之知。 臺諫多言之, 上不信, 欲幸其第而觀之, 竟不果。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71면
  • 【분류】
    건설-건축(建築)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