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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6권, 문종 1년 3월 16일 을묘 4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삼등·강동의 두 고을을 합하여 삼강현을 세우도록 하다

평안도 도체찰사(平安道都體察使)가 아뢰기를,

"이제 강동현(江東縣) 인민이 원하는 본현(本縣)을 세우는 것이 편한지 편하지 아니한지를 조사한즉, 삼등(三登)·강동 두 고을의 호수(戶數)를 합계하면 민호(民戶)가 모두 7백 28호, 향호(鄕戶)가 43호, 관노비(官奴婢)가 41구(口)인데, 만약 두 고을에 각각 수령을 두면 민리(民吏)와 노비의 수가 다 넉넉하지 못하고 세력이 나누어져서 힘이 약할 것이니, 그대로 한 고을을 만드는 것이 거의 편리할 것입니다. 다만 삼등의 현재 있는 곳이 한 모퉁이에 치우쳐 있고 강동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강동 인민의 왕래에 폐가 있습니다. 신이 이제 고을 중앙에 읍성(邑城)을 설치할 만한 곳을 친히 살펴본즉, 옛 원(院) 터에 빈 땅이 있는데 산수(山水)의 기운이 모였고, 서쪽에는 평양, 동쪽에는 성천(成川), 남쪽에는 상원(祥原), 북쪽에는 자산(慈山)과의 도로의 거리가 균적(均適)하여 영송(迎送)에 폐가 없고 두 고을 인민의 왕래도 편리하며, 또 개천(价川)·은산(殷山)·자산(慈山)·순천(順天)의 적로(賊路)가 서로 모이는 곳이 되니 관방(關防)을 두는 것이 마땅합니다. 더욱이 삼등현(三登縣)을 이 곳에 옮겨서 두 고을 공해(公廨)288) 의 재목과 기와로 관사(官舍)와 객사(客舍)를 짓고 본도 백성의 힘이 소생되기를 기다려서 읍성을 쌓을 것이며, 인하여 삼등과 강동 두 고을의 이름을 따서 삼강(三江)이라 일컬으면, 오직 백성의 마음이 둘 다 편할 뿐 아니라, 힘을 같이 하여 수어(守禦)하면 형세가 외롭지 아니하여 실로 편리할 것입니다."

하니, 명하여 이조(吏曹)에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67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관방(關防) / 호구-호구(戶口)

  • [註 288]
    공해(公廨) : 관가의 청사(廳舍).

平安道都體察使啓: "今考江東縣人民所願立本縣便否, 合三登江東兩縣戶數而計之, 民戶共七百二十八, 鄕戶四十三, 官奴婢四十一口。 若於兩縣, 各置守宰, 則民吏奴婢之數, 幷皆不敷, 勢分力弱, 仍爲一縣, 庶爲便益。 但三登,時排處偏在一隅, 距江東遙隔, 故江東人民, 往來有弊。 臣今親審兩縣中央可設邑城處, 有古院基之地閑曠, 山水氣聚, 西距平壤, 東距成川, 南距祥原, 北距慈山, 道路適均, 迎送無弊, 兩縣人民, 往來亦便, 且爲賊路交會, 宜置關防。 若移設三登縣于此, 撤兩縣公廨材、瓦, 以造官、客舍, 待本道民力蘇息, 以築邑城, 仍取三登江東兩邑之號, 稱爲三江, 則非惟民心兩便耳, 同力守禦, 勢不孤單, 實爲便益。" 命下吏曹。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67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관방(關防) / 호구-호구(戶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