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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5권, 문종 1년 1월 22일 임술 4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박연이 태봉 아래의 백성들의 집과 전토를 철거하지 않도록 상언하다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박연(朴堧)이 상언(上言)하기를,

"태봉(胎峯)의 아래에 백성들의 여사(廬舍)를 철거하고 그 전토(田土)를 폐지하니, 지극히 통석(痛惜)합니다. 지리(地理)094) 의 설에 말하기를, ‘닭이 울고 개가 짖고 저자가 열리고 마을에 연기가 나면 은연중에 융성하니, 누가 그 근원을 찾아내겠는가?’ 하고, 또 말하기를, ‘산조(山朝)는 수조(水朝)와 같지 아니하고, 수조(水朝)는 인조(人朝)와 같지 아니하다.’고 하였으니, 사람이 거주함을 꺼리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산수(山水)의 기운이 사람이 거주하기 때문에 손해가 있다고 하나, 즉 도성(都城)의 주·현(州縣)은 백성이 모여사는 바가 여러 해 계속되었으나 부유하고 번성하기가 한결같으니 인연(人煙)095) 이 풍수(風水)에 해(害)가 없음을 족히 증험할 만합니다. 또 장법(葬法)을 상고하면, 고금(古今)의 경험이 모두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다. 신이 보건대 신라(新羅)의 능묘(陵墓)는 왕성(王城) 안에 많이 있었으나 나라를 천년이나 계승하였고 성대(盛代)라고 일컬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묘(墓)는 전원(田園)의 두둑에 있으나 가세(家世)가 끊이지 않고 명현(明賢)이 나왔으니 인연(人煙)이 모인 것도 또한 길(吉)한 기운이 되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태실(胎室)은 능묘(陵墓)의 깊고 미묘함에 비길 바가 못되므로 더욱 인연(人煙)을 꺼려할 것이 못되는데 어찌 반드시 태봉(胎峯)의 천 길 아래에 있고, 그 산맥(山脈)에 간범되지 않는 평지 아래 땅인 전원과 제택(第宅)를 모두 남김없이 철수한 뒤에야 길(吉)하겠습니까? 이것은 심히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초목(草木)이 거칠고 무성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면 뽕나무 밭과 대나무 숲도 또한 초목(草木)의 아름다운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뽕나무 밭을 폐지하고서 풀숲을 보호하여야 하며, 사람의 거처를 철거시키고서 벌레와 뱀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까? 생각건대 악례(惡例)를 만든 자가 어찌 공경하고 삼가지 아니하며, 지극히 곡진하게 특별한 의논을 내어서 이처럼 정도에 지나친 금방(禁防)을 하겠습니까? 만약 이러한 예(例)를 굳게 고집하여 항구한 법규를 세운다면 자손 만년에 내려가더라도 태소(胎所)096) 도 또한 같으니 나라의 전토(田土)는 줄어들어 민생(民生)의 원망이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태평한 날이 오래 되어 백성들이 지극히 번성하여 사람은 많아지고 땅이 좁아지면 한 조각의 빈 땅도 없을 것이니, 백성들을 보호하고 먹는 것[食]을 풍족하게 하는 것도 또한 왕정(王政)의 급한 바입니다. 진실로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지리(地理)의 여러 책과 태경(胎經)의 설(說)을 두루 고찰하도록 명령하여, 만약 가옥(家屋)을 철거하고 농경을 금지하는 글귀가 없거든 특별히 덕음(德音)을 내려서 옛날 구업(舊業)을 그대로 허락하시고, 그 태봉(胎峯) 주변에 절이 있는 곳에는 인하여 축령(祝齡)097) 하는 곳으로 삼아서 옛사람의 태실(胎室)의 예(例)와 같이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명하여 풍수학(風水學)에 내려 이를 의논하게 하였다. 그때 허후(許詡)가 안태사(安胎使)로서 경상도 성주(星州)에 가 있었다. 임금이 허후에게 유시하기를,

"태봉(胎峯) 근방의 인가(人家)와 토전(土田)의 수와 태봉(胎峯)과 인가(人家)와의 거리의 보(步) 수와 인민(人民)이 옮겨 거주하는 것과 전토(田土)를 개간하는 것의 편하고 편하지 않은 것을 조사하여 오라."

하였다. 뒤에 풍수학(風水學)에서 의논하여 아뢰기를,

"태봉(胎峯)에 너무 가까이 사람이 거주(居住)하면 화재(火災)가 가히 두려우니, 도국(圖局)098) 의 밖에 옮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약 태봉(胎峯)의 주혈(主穴) 산기슭 이외에는 일찍이 경작한 토전(土田)과 태봉 주변의 사사(寺社)는 다른 태실(胎室)의 예에 의하여 옛날 그대로 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49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인사-임면(任免)

  • [註 094]
    지리(地理) : 풍수지리(風水地理).
  • [註 095]
    인연(人煙) : 인가에서 나는 연기.
  • [註 096]
    태소(胎所) : 임금·왕자의 태(胎)를 안치하는 곳.
  • [註 097]
    축령(祝齡) : 오래 살도록 빌어 축수함.
  • [註 098]
    도국(圖局) : 임금의 능묘(陵墓)나 태실(胎室)의 경역(境域) 안을 말함.

○中樞院副使朴堧上言: "胎峯之下, 撤民廬舍, 廢其田土, 極爲痛惜。 地理之說, 有曰: ‘雞鳴犬吠, 鬧市烟村, 隱隱隆隆, 孰探其源?’ 又曰: ‘山朝不如水朝, 水朝不如人朝’, 則不以人居爲忌, 明矣。 若曰: ‘山水之氣, 因人居而有損’, 則都城州、縣, 民所聚也, 而綿歷多年, 富庶如一, 則人烟之不害於風水, 足可驗也。 又以葬法考之, 古今經驗, 皆不忌人居。 臣見, 新羅陵墓, 多在王城之內, 而享國千年, 號稱盛代。 中國之人, 墓在田園之畔, 而家世不絶, 名賢出焉, 則人烟團集, 亦爲吉氣無疑矣。 而況胎室不比陵墓之幽玄, 尤不嫌於人烟, 何必胎峯千仞之下, 其不干山脈平下之地田園、第宅, 盡撤無遺, 然後爲吉也哉? 此甚無理。 如以草木荒茂爲貴, 則桑田、竹卉, 亦草木之美者也, 何故廢桑田而護榛莾, 撤人居而養蟲蛇爲哉? 意其作俑者, 豈不敬謹之? 至曲生別議, 爲此過中之禁防乎? 若堅據此例, 立爲恒規, 則傳祚萬年, 胎所亦同, 國田之減, 民生之怨, 靡有止息。 況昇平日久, 生齒極繁, 人多地窄, 片無閑土, 保民足食, 亦王政之所急。 誠願殿下, 命令徧考地理諸書及胎經之說, 如無撤屋禁耕之文, 則特渙德音, 許仍舊業。 其峯邊有寺之處, 因爲祝齡之所, 如古人胎室之例, 何如?" 命下風水學, 議之。 時許詡以安胎使, 往慶尙道 星州。 下諭于: "令審胎峯傍近人家、土田之數、胎峯與人家相距步數及人民移居田土開墾便否, 以來。" 後風水學議啓曰: "胎峯逼近人居, 火災可畏, 宜移於圖局之外。 若胎峯主穴山麓外, 曾耕土田及峯邊寺社, 依他胎室例, 仍舊。"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49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