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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5권, 문종 1년 1월 22일 임술 3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통사 김신이 변방의 경보가 없음을 치계하니 각도의 군사를 파하고 조전 절제사를 소환하다

통사(通事) 김신(金辛)이 요동(遼東)에서 치계(馳啓)하기를,

"신이 요동에 도착하여 왕대인(王大人)을 배알하고 말하기를, ‘듣건대 「탈탈(脫脫)요동을 포위하고 조선(朝鮮)으로 향하려고 한다.」 하고, 또 듣건대 「탈탈(脫脫)의 병사가 이미 동쪽으로 향하였다.」고 하였기 때문에, 전하께서는 신(臣)으로 하여금 적의 성식(聲息)을 청탐(聽探)하여 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왕대인(王大人)이 말하기를, ‘탈탈 병사 3만이 12월 23, 4일 간에 해서위(海西衛)089) 에 도착하여서 불라취(不剌吹)를 잡아서 죽이고, 그 부락에서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자는 모두 죽였다. 지휘 나탑(剌塔) 이하 1, 2백 명은 흑룡강(黑龍江)·송림(松林) 등지로 도망하였다. 건주위(建州衛)이만주(李滿住)090) 는 탈탈왕(脫脫王)이 해서인(海西人)을 죽이고 노략질했다는 것을 듣고 도망하여 산림(山林)에 숨었으나 탈탈이 끝까지 쫓지 아니하고 해서위(海西衛)로 돌아갔다. 이제 해서위(海西衛)·건주위(建州衛)091) 등지는 한결같이 비어 있으나 조선(朝鮮)으로 향했다는 것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이른바 「동쪽을 향하였다.」는 것은 건주위(建州衛)일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탈탈은 무릇 남조(南朝)092) 에서 포로가 된자는 모두 죽이지 않고 돌려 보내는데 너희 나라에 무슨 원수와 혐의가 있어서 침입하겠는가? 또 내가 일찍이 지도를 보니, 너희 나라의 후문(後門)093) 은 산과 골짜기가 험조(險阻)한데, 탈탈이 어찌 망령되게 나아가겠는가? 탈탈은 기묘한 책략이 많고 또 너희 나라 궁병(弓兵)의 이해(利害)를 알고 있으니, 너희 나라로 향하지 않을 것이 명백하였다. 너는 나의 말을 전하에게 아뢰어서 염려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우의정 남지(南智)가 아뢰기를,

"전날에 의논하기를, ‘각도에서 징병하는 것은 김신(金辛)의 회보(回報)하기를 기다린 뒤에 다시 의논하여 구처(區處)하소서.’ 하였습니다. 지금 김신의 글을 보니, 별로 긴급함이 없으니, 청컨대 각도의 군사를 놓아 보내소서."

하니,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에 이르기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였다.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황해도의 후속 군사 3천 명은 마땅히 조발하지 마소서. 또 경기·충청도·강원도 등의 군졸은 그 도의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로 하여금 점열(點閱)하여 파하게 하소서. 황해도의 군사로서 평안도에 머무르는 자도 또한 김종서(金宗瑞)로 하여금 편의대로 처리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드디어 김종서에게 유시하기를,

"이제 김신이 보고한 것을 들으니, 적의 성식(聲息)이 조금 늦추어졌다. 박강(朴薑)이 거느린 바의 군사는 즉시 놓아 돌려보내라. 만약 사변이 있으면 혹은 그때에 임하여 다시 징발하고, 만약 혹시 변고(變故)를 측량하기 어려우면 아직 그대로 머물러 주둔(駐屯)하여 얼음이 풀릴 때를 기다리라. 경이 그것을 짐작하여 시행하라."

하고, 또 황해도 도체찰사(黃海道都體察使) 및 경기·충청도·강원도·함길도의 관찰사(觀察使)와 도절제사(都節制使)에게 유시하여 모두 군사를 파(罷)하도록 하고, 아울러 각도의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를 소환(召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48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註 089]
    해서위(海西衛) : 명(明)나라 때 송화강(松花江) 유역의 여진 지역에 설치한 위소(衛所).
  • [註 090]
    이만주(李滿住) : 건주 본위(建州本衛)의 추장.
  • [註 091]
    건주위(建州衛) : 명나라 때 남만주의 요동(遼東) 지역과 압록강·두만강 일대의 여진 지역에 설치한 위소(衛所).
  • [註 092]
    남조(南朝) : 남쪽 조정. 즉 중국 명(明)나라.
  • [註 093]
    후문(後門) : 동북면(東北面) 여진 지역으로 통하던 조선의 관방(關防).

○通事金辛遼東馳啓: "臣到遼東, 謁王大人曰: ‘聞脫脫遼東, 欲向朝鮮, 又聞脫脫兵已向東, 故殿下使臣, 聽探聲息而來。’ 大人曰: ‘脫脫兵三萬, 於臘月二十三四日間, 到海西, 執不剌吹, 殺之, 其部落降者不殺, 不順者皆殺之。 指揮刺塔以下一、二百, 逃奔黑龍江松林等處, 建州衛 李滿住聞, 脫脫王殺掠海西人, 奔竄山林, 脫脫不窮追, 還于海西。 今海西建州等處一空, 未聞向朝鮮也。 所謂向東者, 是建州衛也。’ 又曰: ‘脫脫, 凡南朝被虜者, 皆不殺遣, 還於汝國, 有何讎嫌而入侵乎? 且吾嘗觀地圖, 汝國後門, 山溪險阻, 脫脫豈得妄進乎? 脫脫多奇策, 又知汝國弓兵利害, 不向汝國, 明矣。 汝以吾言, 啓殿下, 勿慮。’"右議政南智啓曰: "前日議: ‘徵兵各道, 待金辛回報然後, 更議區處。’ 今觀書, 別無緊急, 請放遣各道兵。" 上謂承政院曰: "何以處之?" 僉曰: "黃海道後運兵三千, 宜勿調發。 又京畿忠淸江原等道軍卒, 令其道助戰節制使, 點閱罷之。 黃海之兵, 次于平安道者, 亦令金宗瑞, 以便宜處之。" 從之。 遂諭宗瑞曰: "今觀金辛所報, 聲息稍弛。 朴薑所領軍士, 卽時放還。 脫有事變, 或臨時復徵。 如或變故難測, 姑留屯住, 以待解氷。 卿其斟酌施行。" 又諭黃海道都體察使及京畿忠淸江原咸吉等道觀察使、都節制使, 皆令罷兵, 竝召還各道助戰節制使。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48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