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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5권, 문종 즉위년 12월 13일 계미 5번째기사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평안 우도 도절제사 이승평이 변방의 경보를 치계하니 그 대책을 논의하다

평안 우도 도절제사(平安右道都節制使) 이승평(李昇平)이 치서(馳書)하여 아뢰기를,

"윤봉(尹鳳) 등이 요동(遼東)에 이르러 본국 호송인(護送人)에게 이르기를, ‘달달(達達)1398) 의 병마(兵馬)가 요동(遼東)을 치고, 이어서 조선국(朝鮮國)으로 향하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영의정(領議政) 하연(河演)·우의정(右議政) 남지(南智)·좌찬성(左贊成) 김종서(金宗瑞)·좌참찬(左參贊) 정갑손(鄭甲孫)·우참찬(右參贊) 안숭선(安崇善) 등을 불러 이르기를,

"적의 성식(聲息)이 얼음이 녹을 때에 있으면 별로 염려할 것이 없다. 이제 얼음이 어는 때를 당하였으니, 그 형세가 가히 두렵다. 우리 나라는 본래 곡물을 저축한 것이 부족하니, 적(賊)이 노략질하여 빼앗아 갈 물건이 없다. 그러나 태평스러운 날에 오게 되었으니, 적이 어찌 이와 같은지를 알겠는가? 적이 침입하여 약탈할 환란(患亂)을 염려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그 방어할 방책을 경들이 상량(商量) 의논하여서 아뢰어라."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이것은 비록 전하여 들은 말이나 변방(邊方)의 경보(警報)에 관계되는 일이니, 어찌 허실(虛實)을 알지 못한다고 하여 방어를 늦출 수가 있겠습니까? 신 등이 생각건대 한편으로는 요동(遼東)에 사람을 보내어 적의 성식(聲息)을 다시 탐지하고, 한편으로는 평안도(平安道)·함길도(咸吉道)·강원도(江原道) 등에 장수(將帥)를 나누어 보내어서 군마(軍馬)를 조발(調發)하고 사졸(士卒)을 훈련시켜서 불우(不虞)에 대비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김유례(金有禮)요동에 보내어 적의 성식(聲息)을 탐지하게 하고, 김종서(金宗瑞)를 평안도 도체찰사(平安道都體察使)로 삼고, 인수부 윤(仁壽府尹) 김윤수(金允壽)를 함길도 도순무사(咸吉道都巡撫使)로,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마승(馬勝)을 강원도 도순무사(江原道都巡撫使)로 삼았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평안도의 군사 액수(額數)는 이미 적으니, 인리(人吏)·일수(日守)·관노(官奴)로서 장용(壯勇)한 자를 골라서 수령(守令)의 사병(私兵)으로 삼아서 위급함이 있으면 수령이 친히 거느리고 적을 방비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지난번에 의논하기를, ‘평안도 수령은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것을 없애고, 3년을 임기로 한다.’고 하니, 의논하는 자가 있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수령의 6기(六期)의 법(法)1399) 이 허물어집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내가 다시 생각하여 보니, 수령이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한다면 변란(變亂)에 대응할 때에 먼저 처자를 구원하려고 마음을 먹을 것이니, 어찌 마음을 오로지하여 적을 방어하겠는가? 이 도는 다른 도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비록 따로 하나의 법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구법(舊法)을 허물어뜨린다고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본도의 수령을 일찍이 선간(選揀)하여 보내었으나, 무재(武才)가 없어서 임기응변(臨機應變)할 수 없는 자가 간혹 있으니, 고쳐 임명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하연(河演)이 의논하기를,

"상교(上敎)가 모두 마땅합니다. 수령(守令)으로서 이미 일찍이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한 자는 모조리 되돌려 보내도록 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였다. 남지(南智)·김종서(金宗瑞)·정갑손(鄭甲孫)·안숭선(安崇善) 등의 의논도 하연(河演)과 같았으나,

"다만 각 고을의 수령의 가족을 돌려보내도록 한다면 근수(根隨)1400) 하는 인마(人馬)가 거의 5, 60에 이를 것이니, 방어하는 군사의 액수가 반드시 감손(減損)될 것입니다. 새로 차견(差遣)하는 수령은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것을 없애고, 이미 일찍이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한 자는 점차로 되돌려 보내게 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그 재주가 없어서 체임(遞任)하여야 할 자와 무략(武略)이 있어서 임명할 만한 자를 내일 다시 상량(商量)하여 확정하여서 아뢰어라."

하고, 또 임금이 말하기를,

"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이징석(李澄石)이 지금 최질(衰絰) 중에 있는데 기복(起復)1401) 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하연(河演) 등이 대답하기를,

"성상의 교지(敎旨)가 윤당(允當)합니다."

하였다. 즉시 이징석에게 유시(諭示)를 내리기를,

"북방에 적의 성식(聲息)이 있어 내가 이제 기복(起復)하니, 경은 밤낮을 가리지 말고 역마(驛馬)를 타고 오라."

하고, 또 황해도 도절제사(黃海道都節制使) 박강(朴薑)·함길도 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 조극관(趙克寬)·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에게 유시하기를,

"방어(防禦)할 여러 가지 일을 조치하고, 진실로 변란(變亂)에 대응하여 굳게 지키도록 하라."

하였다. 그때 군병을 징발[簽發]하니, 중앙과 지방이 소동하였다. 말이 없는 자는 땅을 팔아 말을 샀는데, 본래의 값을 헤아릴 수가 없으니, 혹은 소를 몰아서 가는 자도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9장 B면【국편영인본】 6책 327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통신(通信)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1398]
    달달(達達) : 몽고의 한 부족.
  • [註 1399]
    6기(六期)의 법(法) : 지방 수령의 임기를 6년으로 하던 법. 세종 때 종래의 삼기법(三期法)을 고쳐 만든 것임. 수령이 자주 갈리는 폐단이 없이 한 지방을 오래 다스리게 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음.
  • [註 1400]
    근수(根隨) : 수종(隨從)하여 따라다니는 것.
  • [註 1401]
    기복(起復) : 나라의 일이 있을 때 상중(喪中)에 있는 대신(大臣)을 3년상이 지나기 전에 다시 벼슬에 임명하던 제도.

平安右道都節制使李昇平馳書啓: "尹鳳等, 至遼東, 謂本國護送人曰: ‘達達兵馬, 欲攻遼東, 仍向朝鮮國。’" 上召領議政河演、右議政南智、左贊成金宗瑞、左參贊鄭甲孫、右參贊安崇善等, 謂曰: "聲息在解氷之時, 則無足可慮。 今當氷合, 其勢可畏。 我國素乏儲峙, 無賊虜掠奪之物。 然昇平日久, 賊豈知至此乎? 侵掠之患, 不可不慮, 其備禦之策, 卿等商確以啓。" 僉議啓曰: "是雖傳聞之說, 然事干邊警, 豈以未知虛實, 而緩於備禦乎? 臣等以爲, 一以遣人於遼東, 更探聲息; 一以分遣將帥於平安咸吉江原等道, 調發軍馬, 訓錬士卒, 以備不虞。" 從之。 遣金有禮遼東, 探候聲息; 以金宗瑞平安道都體察使; 仁壽府尹金允壽咸吉道都巡撫使; 中樞院副使馬勝江原道都巡撫使。 上又曰: "平安道, 軍額旣少, 擇人吏、日守、官奴之壯勇者, 以爲守令私兵, 儻有緩急, 守令親率禦敵, 何如? 頃者議: ‘平安道守令, 除挈家赴任, 以三年爲期。’ 間有議者曰: ‘如此, 則守令六期之法, 毁矣。’ 然今予更思之, 守令挈家赴任, 則當應變之時, 先以救援妻子爲心, 豈能專心禦敵乎? 此道非他道之比, 雖別立一法, 不可謂毁舊法也。 且本道守令, 曾選揀以遣, 然無武才, 不能臨機應變者, 間或有之, 改差何如?" 河演議曰: "上敎皆當。 其守令已曾挈家赴任者, 悉令遣還爲便。" 南智金宗瑞鄭甲孫安崇善等議, 與同, "但各官守令家小, 卽令遣還, 則根隨人馬, 幾至五、六十, 防禦軍額, 必減損矣。 新差守令, 則除挈家赴任, 已曾挈家赴任者, 漸次遣還爲便。" 上曰: "然。 其無才可遞者, 及有武略可任者, 明日更商確以啓。" 上又曰: "前知中樞院事李澄石, 今在衰絰, 起復何如?" 等對曰: "上敎允當。" 卽下諭于李澄石曰: "北方有聲息, 予今起復, 卿其不分星夜, 乘馹而來。" 又諭黃海道都節制使朴薑咸吉道都觀察使趙克寬、都節制使李澄玉: "措置防禦諸事, 固守應變。" 時簽發軍兵, 中外擾動。 無馬者, 賣田買馬, 不計本直, 或有驅牛以行者。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9장 B면【국편영인본】 6책 327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통신(通信)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