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이 변방의 정세를 비밀히 상서하다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이 상서(上書)하여 비밀히 아뢰었다.
"아치랑이(阿赤郞耳)에 거주하는 여진(女眞) 오동고(吾同古)가 비밀히 영북진 도절제사(寧北鎭都節制使)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오롱초(吾弄草)에 거주하는 이귀야(李貴也)가 도절제사(都節制使)를 알현하고, 다음에 소로첩목아(所老帖木兒)의 집에 들려서 말하기를, 「새 도절제사(都節制使)가 군마(軍馬)를 많이 모으니 올량합(兀良哈)을 침공할까 두렵다.」고 하니, 소로첩목아가 이를 듣고 제종 야인(諸種野人)에게 유시(諭示)하여 병사를 정돈하여 변(變)에 대비하게 하였고, 이어서 획목(畫木)1279) 을 재종 야인(諸種野人)에게 보내어 모여서 의논하였는데, 장성한 자들은 말하기를, 「우리들이 마땅히 먼저 발병(發兵)하여야 한다.」고 하고, 늙은 자들은 말하기를, 「까닭없이 먼저 발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동량북(東良北)에 거주하는 올량합(兀良哈) 시가귀(時加貴)가 새 도절제사를 알현하고자 하여 회령(會寧)에 도착하니, 절제사(節制使)가 말하기를, ‘이달에는 우선 정지하고 오는 달을 기다려서 진알(進謁)하라.’고 하여, 도로 돌아갈 즈음에 소로첩목아를 보을하(甫乙下)에서 만났는데, 소로첩목아가 말하기를, 「내상(內廂)1280) 에 군사가 많이 모였다.」고 하니, 시가귀도 또한 말하기를, 「군병(軍兵)이 많이 모였고, 또 회령 절제사(會寧節制使)가 나를 물리쳐서 새 도절제사에게 진알(進謁)할 수가 없었다. 생각건대 침입하여 정벌하는 일이 있을까 두렵다.」고 하고, 제종 야인(諸種野人)에게 유시(諭示)하고자 하여 소로첩목아의 획목(畫木)을 가지고 갔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비단 이것뿐만 아니라, 전에 중국과 본국(本國)에서 이만주(李滿住)를 협공(挾攻)하였으므로 범찰(凡察)의 말을 저들이 듣고서 의심하였는데, 또 신(臣)이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다시 의심하기를 더합니다. 알타리(斡朶里) 등도 아울러 죽을까 의심하여 회령(會寧)의 내야탄(乃也灘) 가에 모여서 일을 의논하였는데, 회령 절제사가 사람을 보내어 물으니, 정상을 숨길 수가 없어서 이에 말하기를 ‘올적합(兀狄哈)이 와서 침입할까 두려워하여 관하(管下)의 군마(軍馬)를 점고(點考)하여 사열합니다.’고 하여, 거짓말을 퍼뜨려 인심을 들뜨게 한 것이 이미 여러 날입니다. 신(臣)이 몰래 절제사 유익명(兪益明)으로 하여금 소로첩목아를 불러서 말하기를, ‘너희가 나라의 은혜를 입어 작위(爵位)가 2품에 이르렀고, 이미 복종(僕從)을 하사(下賜)받았다. 또 행성(行城)1281) 안에 거주하여, 무릇 본국(本國)의 일을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 것이 없는데, 지난 날에 무슨 말과 무슨 일을 숨겼겠는가? 남도(南道)의 군마(軍馬)가 무슨 날 무슨 시에 많은 수가 와서 모였겠는가? 너의 장인[婦翁] 이첨수(李添壽)가 너의 집에 도착하여 오래도록 머무는데, 새 도절제사가 부임(赴任)한다는 말을 듣고 친히 알현하고 돌아가서 어디의 군마(軍馬)가 내상(內廂)에 모였다고 하던가? 근래 알타리(斡朶里)와 올량합(兀良哈)이 한 사람도 내상(內廂)에 내왕(來往)하는 자가 없는 것은 반드시 너의 장인의 망언(妄言) 때문일 것이다. 근거가 없는 말을 가지고 제종 야인(諸種野人)에게 획목(畫木)을 전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을 동요(動搖)하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도절제사와 국가(國家)에서 이를 듣고서 너로써 본국(本國)의 재상(宰相)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마땅히 속히 제종(諸種)에게 전하여 유시(諭示)하기를, 「전에 보낸 말은 실로 망설(妄說)이었다.」고 하여 저들로 하여금 의심을 풀게 하는 것이 의리에 심히 합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고 그의 형세를 보고서 신은 이를 다시 생각해 보건대, 소로첩목아의 사람됨이 인면 수심(人面獸心)1282) 이니, 충신(忠信)을 기대할 수가 없고 순(順)한 말로써 고(告)할 수도 없습니다. 지난해에 좌의정(左議政) 황보인(皇甫仁)이 술을 먹이던 날에 그 광포(狂暴)한 성질을 부리어 칼을 뽑아서 사람을 상하게 하였고, 울분이 아직도 풀리지 않아서 지금 또 은혜를 배반하고 스스로 거짓말을 퍼뜨려 제종 야인(諸種野人)을 동요시키니, 그 죄가 큽니다. 이제 유익명의 말을 들으니, 그 죄를 저절로 알 수가 있습니다. 인심이 흉흉(洶洶)하여 조용하지 못하고 몰래 변(變)을 일으킬 것을 도모하니, 이것이 염려됩니다. 우선 유익명으로 하여금 말하지 말게 하였으나, 지난 가을에 범찰(凡察)의 아들 보로(甫老)가 그 곳을 내왕하였는데 반드시 그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이 도착하여 부임한 뒤에 이귀야(李貴也)가 잠시 와서 보지도 않고 스스로 군마(軍馬)가 많이 모였다는 말을 만들어서 시가귀와 더불어 말하기를, ‘내상(內廂)에 군마가 많이 모였다.’고 하고 획목(畫木)을 주어서 제종 야인(諸種野人)에게 전달하여 유시하고 망령된 말로 난(亂)을 선동하였으니, 그 마음이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올량합(兀良哈) 가운데 본국(本國)에 의부(依附)하여 안심(安心)하고 토착(土着)하는 자들로 하여금 또한 의심을 내어서 그들이 동창(童倉)·보로(甫老)의 말을 듣고 따르도록 하기에 이르러, 이곳에 남아 있는 알타리(斡朶里) 등을 이끌고 저곳으로 도망하려 함이니, 그 계책이 심히 명백합니다. 이와 같이 선동하여 어지럽히는 자를 변경(邊境)에 살려 둔다면 후일에 여러 오랑캐들을 물들여 미혹하여 도리어 본국(本國)에 해(害)가 될 것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이곳에 거주하지 말도록 하고, 경중(京中)에 안치(安置)하여, 혹은 그 죄를 드러내 알리고 처치하여 여러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임금이 정부에 비밀히 의논하고 이징옥에게 회유(回諭)하기를,
"알타리(斡朶里)가 비록 1백 호(戶)에 차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남아 있기를 정원(情願)한다고 중국(中國)에 주문(奏聞)하였고, 또 비밀히 내지(內地)에 거주하여 본국인(本國人)과 다를 바가 없으니, 우리 나라의 허실(虛實)과 도로의 굽고 곧은 것과 산천(山川)의 험하고 평탄한 것을 자세히 일찍부터 알고 있다. 더군다나 올량합(兀良哈)은 그 수가 많아서 동량북(東良北)에서 야춘(夜春)에 이르기까지 5진(五鎭)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오래도록 번리(藩籬)가 되어 안심하고 생활하여 왔는데, 만약 들떠서 움직이고 인심이 조용하지 못하면 왕래(往來)하는 변환(邊患)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니, 모름지기 온갖 계책으로써 효유(曉諭)하여 동요(動搖)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그러나 왕래(往來)하는 말이 혹은 빈말이기도 하고 혹은 사실이기도 하여, 확실히 믿을 수가 없으니, 경(卿)이 다시 보고 듣기를 더하여, 만약 그 사실이 있다면 즉시 괴수(魁首) 등에게 다른 일을 핑계하여 혹은 통사(通事)를 보내기도 하고 혹은 본국(本國)과 서로 교분이 있는 사람을 보내기도 하여 이를 위로하기를, ‘5진(五鎭)을 설립(設立)한 이후부터 너희들이 성심으로 귀순(歸順)하여 아침 저녁으로 왕래(往來)하므로, 비록 소소한 사변(事變)이라도 남김없이 전하여 알리었다. 5진(五鎭)의 인민(人民)이 서로 사귀어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돕기에 이르니, 국가에서도 또한 너희들이 힘써 순종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을 아름답게 여겨서 은의(恩義)로써 어루만져 날이 오랠수록 더욱 두터이 하는데, 어찌 털끝만치라도 서로 의심할 일이 있겠는가? 그 사이에 무지한 소인(小人)이 있어서 스스로 뜬말을 만들어 피차(彼此)를 이간(離間)한 것이 있으나, 너희들은 간언을 믿지 말라. 세월이 이미 오래 지나면 허실(虛實)을 곧 알 것이다.’고 하라. 이와 같이 정녕히 효유(曉諭)하고, 혹은 괴수(魁首)되는 사람을 초치(招致)하기도 하고, 혹은 술과 음식을 먹이기도 하고, 혹은 어물(魚物)을 먹이기도 하여 따뜻한 말로 후대(厚待)하면서 위와 같이 효유(曉諭)하라. 또 다른 일을 핑계하여 소로첩목아를 초치하여서 타이른 다음에 위로하기를, ‘세종(世宗)께서 승하하고 새 임금이 사위(嗣位)하였으니, 상경(上京)하여 숙배(肅拜)하여야 하는데 지금이 그러한 때이다. 더구나 정조(正朝)는 중외(中外)의 대소인(大小人)이 모여서 조하(朝賀)하는 날이니, 친신(親信)하는 반인(伴人)들을 인솔하고 상경(上京)하여 귀부(歸附)하는 것이 예에 심히 합한다.’고 하라. 이와 같이 은근히 효유(曉諭)하는 것도 또한 상책(上策)이다. 만약 혹시 따르지 않거든 삼가서 위협과 핍박의 형상을 드러내지 말고, ‘부득이 상경(上京)하여 와야 한다.’는 말을 가지고 굳게 말하여 조치하여 올려 보내는 것이 가(可)하며, 이귀야(李貴也)도 또한 소로첩목아의 예와 같이 올려 보내는 것이 또한 가(可)하다. 야인(野人)들이 경(卿)의 위엄과 용맹을 두려워하는 것이 오로지 금일(今日) 만이 아니니, 경은 위로 세종(世宗)께서 옛날 내전(內傳)1283) 한 말을 몸받아서 그 위세와 용맹을 부리지 말고 은혜와 믿음을 펴도록 힘써서, 저들로 하여금 그 혐의(嫌疑)를 풀게 하라. 마음을 돌려 사랑하고 흠모하게 하는 것은 성심껏 무수(撫綏)하는 데 있을 뿐이니, 경(卿)은 그것을 잘 알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6책 317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註 1279]획목(畫木) : 여진(女眞) 사람들이 통문(通文)을 돌릴 때 글자를 새겨서 돌리던 나무패.
- [註 1280]
「내상(內廂) :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있던 군영(軍營). 또는 도절제사가 다스리던 고을.- [註 1281]
행성(行城) : 직선으로 쌓은 성.- [註 1282]
인면 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을 가짐.- [註 1283]
내전(內傳) : 임금이 비밀히 내리는 전갈(傳喝). 대개 군사상의 기밀에 속하는 일이나, 사사로운 일을 부탁할 때 쓰는 방법임.○咸吉道都節制使李澄玉上書, 密啓曰:
阿赤郞耳住女眞 吾同古, 密告寧北鎭都節制使云: "吾弄草住李貴也謁都節制使, 歷入所老帖木兒家, 說: ‘新都節制使, 多聚軍馬, 恐侵兀良哈也。’」 所老帖木兒聞之, 諭諸種野人, 令整兵待變, 仍送畫木于諸種野人, 聚議。 壯者曰: ‘吾輩當先發。’ 老者曰: ‘不可無故先發。’ 又東良北住兀良哈 時加貴, 欲謁新使, 到會寧, 節制使曰: "今朔姑停, 待來朔進謁。" 還歸之際, 遇所老帖木兒於甫乙下, 所老帖木兒言: "內廂多聚軍士, 時加貴亦言: ‘多聚軍兵, 且會寧節制使却我, 不得進謁於新使, 意恐有侵伐之事也。’ 欲諭諸種野人, 將所老帖木兒畫木而去。" 非徒此也, 前有中朝與本國, 夾攻滿住, 凡察之言, 彼人聞而疑之, 又聞臣之下來, 更加疑焉。 斡朶里等, 亦疑幷勦, 會于會寧 乃也灘邊, 議事。 會寧節制使, 遣人問之, 不得隱情, 乃言曰: ‘恐有兀狄哈來侵, 點閱管下軍馬。’ 其胥動浮言, 已有日矣。 臣潛令節制使兪益明, 招所老帖木兒, 言曰: ‘爾厚蒙國恩, 爵至二品, 旣賜僕從。 又居行城之內, 凡本國之事, 無不細知, 往日諱何言、何事乎? 南道軍馬, 何日何時數多來聚? 爾婦翁李添壽到爾家, 久留, 聞新都節制使赴任, 親謁而回, 何處軍馬聚於內廂乎? 邇來斡朶里、兀良哈, 無一人來往於內廂者, 必爾婦翁之妄語也。 以無根之言, 傳畫木於諸種, 動搖衆心, 可乎? 都節制使及國家聞之, 得以爾爲本國宰相乎? 宜速傳諭諸種曰: ‘前送之言, 實是妄說’, 使彼釋疑, 於理甚合。" 以聽其言, 以觀其勢, 臣更思之, 所老帖木兒爲人, 人面獸心, 不可以忠信, 待不可以順言告。 前年左議政皇甫仁饋酒之日, 肆其狂暴, 拔劍傷人, 憤猶未怠, 今又背恩, 自發浮言, 搖動諸種, 其罪大矣。 今聞兪益明之言, 則自知其罪。 洶洶不靜, 潛圖生變, 是可慮也。 姑令益明勿說, 前秋凡察子甫老, 來往其處, 必有其意。 臣到任之後, 李貴也暫無來見, 而自作軍馬多聚之言, 與時加貴言: ‘內廂, 多聚軍馬’ 授畫木, 傳諭諸種, 妄言扇亂, 其心孔艱。 至使兀良哈之依附本國, 安心土着者, 亦令生疑, 其聽從童倉、甫老之言, 率此處遺存斡朶里等, 逃往他處, 其計甚明。 如此皷亂者, 生存邊境, 則後日染感諸狄, 反害本國, 無疑矣。 勿令居此, 安置京中, 或暴揚其罪, 處置警衆, 何如?
上密議于政府, 回諭澄玉曰: "斡朶里, 雖未滿百戶, 旣以情願存留, 聞于中國, 且密居內地, 與本國人無異, 我國虛實、道路迂直、山川險夷, 備嘗知之。 況兀良哈, 其數衆多, 自東良北, 至夜春, 環居五鎭, 久爲藩籬, 安心過活, 若胥動不靜, 則往來邊患, 不可勝言。 須以百計曉諭, 不使動搖, 此策之上也。 然往來之言, 或虛或實, 不可據信。 卿更加聞見, 如有其實, 卽於魁首等, 托以他事, 或遣通事, 或遣本國相交人, 尉之曰: ‘自五鎭設立以後, 汝等誠心歸順, 朝夕往來, 雖小小事變, 無遺傳通。 至於五鎭人民相交, 有無相資, 國家亦嘉。 汝等効順誠心, 撫以恩義, 愈久愈厚, 豈有一毫相疑之事? 間有無知小人, 自作浮言, 離間彼此者有之, 汝等毋信間言。 日月旣久, 則虛實乃知。’ 如是, 丁寧曉諭, 或招致魁首人等, 或饋酒食, 或饋魚物, 溫言厚待, 如上曉諭。 且托他事, 招致所老帖木兒, 因言次慰曰: ‘世宗上昇, 新主嗣位, 上京肅拜, 此其時也。 況正朝, 中外大小人聚會朝賀之日, 任率親信伴人上歸, 於禮甚合。’ 如是, 慇懃曉諭, 亦策之上也。 如或不從, 愼勿露威逼之形, 以不得已上來之說, 牢固措置, 上送爲可。 李貴也, 亦如所老帖木兒例, 上送亦可。 野人畏卿威猛, 非獨今日。 卿仰體世宗昔日內傳之辭, 止其威猛, 務布恩信, 使彼, 釋其嫌疑。 回心愛慕, 在誠心綏撫而已。 卿其知悉。"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6책 317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註 1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