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에 권남 등 33인, 무과에 유근 등 28인에게 급제를 내려주다
문과(文科)·무과(武科)를 방방(放榜)1113) 하여, 문과(文科)에 권남(權覽) 등 33인에게, 무과(武科)에 유균(柳均) 등 28인에게 급제(及第)를 내려 주고, 권남을 사헌 감찰(司憲監察)로 임명하고, 유균을 사복판관(司僕判官)으로 삼았다. 권남은 권제(權踶)의 아들인데 재주가 있다는 평판이 있었으나 오래도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다가 이때에 이르러 향시(鄕試)·회시(會試)에 모두 으뜸[魁]을 차지하고, 전시(殿試)에 이르러 대책(對策)에서 시관(試官)이 처음에 제 4등에 두고 생원(生員) 김의정(金義精)을 으뜸으로 삼으니, 사람들이 모두 불평하여 말하기를,
"김의정은 계통이 한미(寒微)한 가문에서 나왔고, 또 명망(名望)이 없는데, 비록 대책(對策)을 잘 지었다고 하더라도 으뜸 자리에 두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하였다. 한밤중에 이르러 임금이 권남의 대책을 바치라고 명하여 이를 읽어 보니, 권남이 극력 중 신미(信眉)·학열(學悅) 무리의 간사(姦詐)하였던 일을 비방하여 말하기를,
"옛날 신돈(辛旽)1114) 이라는 중 하나가 오히려 고려(高麗) 5백 년의 왕업(王業)을 망치기에 족하였는데, 하물며 이 두 중이겠는가?"
하였다. 읽기를 마치고 임금이 말하기를,
"권남이 회시(會試)에 장원(壯元)을 하였고 또 본래 명성이 있었는데, 이제 대책을 보니 또한 훌륭한 작품이다. 권남을 장원으로 삼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허후(許詡)가 대답하기를,
"다시 권남의 대책을 보니, 진실로 훌륭한 작품입니다. 다만 시폐(時弊)를 바로 진술(陳述)하였기 때문에 말이 불공(不恭)한 데가 있었던 까닭으로 제 4등에 두었습니다. 이제 권남의 고하(高下)를 성상의 마음에서 재량(裁量)하소서."
하여, 드디어 제 1등으로 두었다. 권남의 부자가 서로 잇달아 장원(壯元)하니, 당시의 사람들이 영광으로 여겼다. 무릇 문과(文科)의 등제(等第)의 고하(高下)는 시관(試官)이 그 사람의 성명(姓名)을 보지 않고 먼저 글의 잘 되고 못 된 것을 보고 그 등급을 정한 다음에 성명을 뜯어 보는 것은 공도(公道)를 보이고자 함이었다. 권남의 일은 비록 임금의 지극한 공도(公道)에서 나왔으나 당시의 의논이 후일의 폐단이 있을까 두려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0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放文、武科榜, 賜文科權擥等三十三人、武科柳均等二十八人及第, 拜擥爲司憲監察, 均爲司僕判官。 擥, 踶之子也, 有才名, 久不中第, 至是鄕試、會試皆居魁。 及殿試對策, 試官初置第四, 以生員金義精爲首, 人皆咻之曰: "義精係出寒門, 且無名望, 雖善製策, 不宜居首。" 至夜半, 上命進擥策覽之, 則擥極詆僧信眉、學悅輩姦詐之事曰: "昔辛旽一僧, 猶足以亡高麗五百年之業, 況此二僧乎?" 覽訖, 上曰: "擥爲會試狀元, 且素有名聞, 今見對策, 亦是佳作。 以擥爲狀元, 何如?" 許詡對曰: "更見擥策, 誠佳作也。 但以直陳時弊, 語涉不恭, 故置諸第四。 今擥之高下, 裁自上心耳。" 遂置第一。 擥父子, 相繼爲狀元, 時人榮之。 凡文科等第高下, 試官不見其人姓名, 先觀文之工拙, 定其次第, 然後拆見姓名, 所以示公道也。 擥之事, 雖出於上之至公, 時議恐其有後日之弊。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0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