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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2권, 문종 즉위년 6월 9일 신사 4번째기사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전 예조 참판 유의손의 졸기

전 예조 참판(禮曹參判) 유의손(柳義孫)이 졸(卒)하였다. 자(字)는 효숙(孝叔)이요, 전주(全州) 사람이다. 성품이 순후(醇厚)하고 근신하여 다른 마음이 없으며, 글을 잘 지었다. 세종조(世宗朝)에 과거에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들어가, 여러 벼슬을 거쳐 감찰(監察)에 이르고, 뽑혀서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이 되었고, 또 1436년[丙辰年] 중시(重試)에 제2등으로 합격하고, 승진하여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세종(世宗)이 그 사람됨을 알아서 발탁하여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삼아, 드디어 도승지(都承旨)를 제수하였다. 승정원(承政院)은 기무(機務)가 대단히 바쁜 곳인데, 유의손은 말을 더듬고 결단하는 것이 없었다. 그때 황수신(黃守身)이 좌승지(左承旨)가 되어 전횡하는 일이 많았으나, 유의손은 조금도 이것을 다투지 아니하였으니, 사람들이 장자(長者)라고 일컬었다. 세종의 대우가 심히 후하여,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승진하였으나, 잘못한 일이 있어 벼슬이 떨어졌다. 얼마되지 아니하여 세종이 근신(近臣)에게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유의손(柳義孫)이 장차 행장을 꾸려서 남쪽으로 돌아간다 하니, 마음이 실로 참연(慘然)하다."

하고, 곧 행 집현전 부제학(行集賢殿副提學)을 제수하였다. 병에 걸려 몸이 매우 수척하자, 집에서 치료하도록 명하고, 조금 뒤에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제수하였는데, 친상을 당하여 병이 더욱 심해지니, 고기를 주어 권하였다. 뒤에 안동부(安東府)에 이르러, 부사(府使) 정지담(鄭之澹)이 노루를 잡아 간을 내어 먹게 하였는데, 유의손이 최복(衰服)을 입고, 여러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이것을 먹어 피가 입술에 흐르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와하였다. 졸(卒)할 때 나이 53세였다. 부음(訃音)이 들리니 치조(致弔)하고, 또 치부(致賻)하였는데, 상례보다 더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242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前禮曹參判柳義孫卒。 義孫, 字孝叔, 全州人。 性醇謹無他善屬文。 世宗朝登第, 入藝文館, 累官至監察, 選爲集賢殿修撰, 又中丙辰重試第二名, 陞至直提學。 世宗知其爲人, 擢爲承政院同副承旨, 遂拜都承旨。 政院機務甚劇, 義孫訥而無斷。 時黃守身爲左承旨, 事多專, 義孫略不與校, 人稱長者。 世宗待遇甚厚, 進吏曹參判, 以事落職。 未幾世宗, 謂近臣曰: "予聞義孫, 將飭裝南歸, 心實慘然。" 乃授行集賢殿副提學。 遇疾羸瘦, 命在家治病, 俄拜禮曹參判, 遭喪疾劇, 賜肉勸之。 後至安東府, 府使鄭之澹, 擭獐取肝以饋, 義孫服衰衣, 在廣坐中食之, 血流口唇, 見者驚駭。 卒年五十三。 訃聞, 致弔又致賻有加。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242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