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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윤1월 15일 경신 1번째기사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일본국과의 무역에 대해 대신들과 의논하다

하연(河演)·황보인(皇甫仁)·박종우(朴從愚)·정분(鄭苯)·정갑손(鄭甲孫)·허후(許詡) 등을 불러 이르기를,

"왜객인(倭客人)의 단목(丹木)·동납(銅鑞)을 서울로 올라오지 말게 하고, 포구(浦口)에 머물러 무역하도록 함이 내 처음부터 법을 세울 뜻인데, 옳지 않은 데가 있지 않겠느냐. 전일에 여럿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명주 1만 필을 포소(浦所)에 보내어 무역하게 하되, 그래도 부족하면 서울로 실어와서 모두 공정한 값으로 무역하게 하소서.’ 하였으니, 경 등의 그 의논도 좋으나, 또한 예조 판서가 아뢰기를, ‘한 인국(隣國)과 사귀면서 그 청하는 것을 들어주지 아니하는 것은 진실로 옳지 않으니, 조정의 관원을 보내어 명주를 가지고 가서 청하게 하소서.’ 했는데, 이 말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나라의 법을 객인(客人)의 청으로 인하여 무너뜨린다면 사필(史筆)에 어떻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예전의 제왕(帝王)으로서 이적(夷狄)에게 욕을 본 사람이 자못 많은데, 이제 이 왜인(倭人)이 우리 나라의 법에 복종하지 않고 구태어 서울에 올라오려 하니, 어찌 욕보는 것에 비교되겠는가. 또 두 가지 물건을 모두 서울에 실어와서 상인[商賈]으로 하여금 공정하게 무역하게 하되, 전례에 따라 무역하게 하면 저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국가에서 억지로 상인을 시켜 무역하게 하였다.’ 하여 반드시 분노(忿怒)할 것이니, 어떻게 처치할까."

하니, 연(演)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의 생각으로는 지금의 일본 국사(日本國使)는 삼도(三島)의 왜인과 비교가 아니온데, 스스로 말하기를, ‘조선에서 우리들을 대우하기를 삼도(三島)의 장사하는 왜인과 같이 한다. ’고 하거늘, 하물며 이제 중국에 변란이 있으므로 우리 나라의 후문(後門)의 방비를 잊을 수 없고, 또 왜인과 흔단이 생기게 되면 사면(四面)으로 적을 받는 나라가 되어 방비하여 막아내기에 실로 어렵습니다. 또 왜인은 싸움을 잘하여 하나가 백을 당하지 못하는 자가 없사와 더욱 두려운 존재이온데다, 삼도(三島)의 왜인으로서 우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자도 많사오니, 예전에 제왕(帝王)이 가죽이나 피륙이나 주옥(珠玉)으로써 융적(戎狄)을 다스리던 일이 있었으니, 이것은 특히 장사하는 왜인에게 물건을 무역하는 것이오라, 두 나라에서 통신(通信)하는 예절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오니, 비록 권도를 따를지라도 굳이 사필(史筆)에 해됨이 없을 것이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급히 명주를 보내어 그 형편을 시험하여 보아서, 만일 즐겨 받으면 명주를 더 보내고, 즐겨 받지 않을 것 같으면 그 물건을 모두 서울로 운반해 와서, 모두 공정한 무역을 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서울과 외방의 값이 다르지 아니한 것을 알게 하면, 저절로 이익이 없다 하여 뒤에는 강제로 청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니, 모두 말하기를,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127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5책 169면
  •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

○庚申/召河演皇甫仁朴從愚鄭苯鄭甲孫許詡等曰:

客人丹木、銅鑞, 勿令上京留浦貿易。 予初起意立法, 無乃有所不可乎? 前日僉議以爲: ‘送緜紬一萬匹于浦所貿易, 而猶不足, 則轉輸于京, 皆令公貿易。’ 卿等此議美矣。 又禮曹判書以爲: ‘交一隣國而不聽其請, 固不可也。 遣朝官齎緜紬往請之。’ 此言亦善, 然予意以爲國法因客人之請壞之, 則於史筆何如? 雖然古昔帝王受辱於夷狄者頗多, 今此倭人不從我國之法, 强令上京, 豈受辱之比乎! 且令盡輸二物于京, 使商賈依公貿易之例貿易, 則彼必以爲國家勒令商賈貿易, 忿怒必矣, 何以處之?"

等啓曰: "臣等以爲今日本國使, 非三島倭人之例, 自言: "朝鮮待我等如三島商。" 況今中國有變, 我國後門不能忘備, 又生釁於, 四面受敵之國, 備禦實難。 且素善戰, 無不一當百, 尤(司)〔可〕 畏也, 而三島之, 有憾於我者亦多。 古昔帝王以皮幣珠玉事戎狄者, 蓋有之, 此特商懋遷之物耳, 非關於兩國通信之禮也。 雖從權道, 固無害於史筆。"

上曰: "急送緜紬, 試觀其勢, 若肯受之, 則加送緜紬, 如不肯受, 盡輸其物于京, 竝令公貿易, 使之知京外價數不異, 則自以爲無益, 後無强請上京者矣。" 僉曰: "上敎允當。"


  • 【태백산사고본】 39책 127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5책 169면
  •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