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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127권, 세종 32년 윤1월 1일 병오 1번째기사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세자가 경복궁 근정전의 뜰에서 조서를 맞이하다

명나라 한림 시강(翰林侍講) 예겸(倪謙)과 형과 급사중(刑科給事中) 사마순(司馬恂)이 왔다. 수양 대군(首陽大君) 【세조(世祖)의 휘(諱). 】 에게 명하여 백관을 거느리고 모화관(慕華館)에서 맞이하게 하고, 광화문(光化門) 밖에 채붕(綵棚)을 맺고 잡희(雜戲)를 베풀게 하였다. 세자(世子)가 이어소(移御所)에서 바로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의 뜰에 나아가서 조서를 맞이하였다. 그 조서에 이르기를,

"짐(朕)이 황고(皇考) 선종 장황제(宣宗章皇帝)의 중자(仲子)로서 경사(京師)에서 번(藩)을 받들고 있었는데, 근일에 오랑캐들이 변경을 침범하여, 대형 황제(大兄皇帝)께서 화(禍)가 종사(宗社)에 미칠까 두려워하여 부득이 친정(親征)할 때, 묘궁(眇躬)018) 에게 칙지(勅旨)를 내리어 백관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으라 하셨는데, 불의에 거가(車駕)가 잘못 노정(虜庭)에 빠지었으므로, 우리 성모 황태후(聖母皇太后)께서 신민(臣民)의 바람을 위로하시기에 힘을 쓰시어, 이미 황서 장자(皇庶長子)로 황태자(皇太子)를 삼고, 묘궁(眇躬)을 명하시어 대신 도와서 국정(國政)을 총찰하라 하셨다. 황친(皇親)과 공·후·백(公侯伯)이며, 조정에 있는 문무 군신(文武群臣)과 군민(軍民)·기로(耆老)들이며, 사이(四夷)의 조사(朝使)까지 ‘천위(天位)가 너무 오래 비어 신기(神器)를 주장하는 이가 없으매, 인심(人心)이 황황(遑遑)하여 가라앉지 않는다. ’고 빨리 대계(大計)를 정할 것을 합사(合辭)하여 청하였다. 황태후(皇太后)께서 태자(太子)가 유충(幼沖)하여 미처 만기(萬機)를 처리할 수 없다고 하여, 명(命)을 묘궁(眇躬)으로 옮기시어 천하(天下)를 군림(君臨)케 하셨는데, 마침 오랑캐 진중(陣中)에서 사자(使者)로 돌아온 자가 있어 구두(口頭)로 대형 황제(大兄皇帝)의 조지(詔旨)를 전하기를, ‘종묘(宗廟)의 예(禮)를 오래도록 비울 수 없으니, 짐(朕)의 아우인 성왕(郕王)이 나이도 장성하고 또 어지니 대통(大統)을 잇게 하여서 제사(祭祀)를 받들게 하라. ’고 하였다. 돌아보건대, 통한(痛恨)함이 그지없는데 어찌 차마 급작히 순종하여 받을 것이랴, 비록 피하고 사양하기를 두세 번 하였으나 윤허하심을 받지 못하였으니, 우러러 생각건대, 지중(至重)하신 부탁을 감히 양박(涼薄)하게 굳이 사양할 것이랴. 이미 9월 초6일에 황제의 자리에 앉고 사신을 오랑캐에게 보내어 문안(問安)하고, 대형 황제(大兄皇帝)께 존호(尊號)를 올리기를, ‘태상 황제(太上皇帝)’라 하고 서서히 도로 모셔 오기를 도모할 것이다. 정치하는 도리는 반드시 그 처음을 바르게 하여야 하므로, 명년(明年)을 ‘경태(景泰) 원년(元年)’이라 하고 천하(天下)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려 모든 것들에게 새로움을 주노라. 아아, 공경하고 인자하며 성실함으로써 종사(宗社)를 편안케 할 것이고, 공손하고 검박하며 부지런함으로써 만민(萬民)에게 혜택을 줄 것이다. 일찍이 종실(宗室)의 숙조(叔祖)·숙부(叔父)와 협심(協心)하는 번병(藩屛)에 힘입고, 이미 중외(中外)의 문무 현신(文武賢臣)에 이르기까지 한가지로 덕(德)으로 바루고 도와서 중대(重大)한 어려움을 홍제(弘濟)하고, 옹희(雍熙)의 정치를 길이 왕성케 할 것을 천하(天下)에 포고(布告)하여 모두 들어 알게 하노라."

하였고, 칙서에는 이르기를,

"네가 왕작(王爵)으로써 동쪽 변방을 대대로 지켜 조정의 제후나라로 받들면서 여러가지로 직공(職貢)을 잘 닦으니, 그 지성스러움을 돌아봄에 진실로 포장(褒奬)하여 아름답게 여기노라. 이제 짐(朕)이 대통(大統)을 이어받은 처음에 마땅히 파조지령(播造之令)을 알려야 되겠기에, 특별히 조시(詔示)를 내리고 예물(禮物)을 하사하노니, 더욱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여 길이 제후국으로서 굳게 하라. 국왕(國王)에게 장화융금(粧花絨錦) 명황(明黃) 1단(段), 홍(紅) 1단(段), 청(靑) 1단(段), 남(藍) 1단(段)과 저사직 금흉배사자(紵絲織金胸背獅子) 홍(紅) 1필, 직금흉배백택(織金胸背白澤) 홍(紅) 1필, 직금흉배기린(織金胸背麒麟) 청(靑) 1필, 직금흉배기린(織金胸背麒麟) 녹(綠) 1필, 암화청(暗花靑) 1필, 암화록(暗花綠) 2필, 소홍(素紅) 1필, 소청(素靑) 1필, 소록(素綠) 1필, 채견홍(綵絹紅) 5필, 남(藍) 5필을 내려 주고, 왕비(王妃)에게는 장화융금(粧花絨錦) 명황(明黃) 1단(段), 청(靑) 1단(段)과 저채직금흉배사자(紵綵織金胸背獅子) 홍(紅) 1필, 직금흉배기린(織金胸背麒麟) 청(靑) 1필, 암화홍(暗花紅) 1필, 암화록(暗花綠) 1필, 소록(素綠) 1필, 소청(素靑) 1필, 채견홍(綵絹紅) 3필, 남(藍) 3필을 내려 주노라."

하였다. 조서를 읽기를 마치고 나서 세자가 근정전(勤政殿)의 뜰 동쪽 장막(帳幕)에 나아가 재배례(再拜禮)를 행하고, 세자가 사신에게 조명(詔命)을 대신 맞이하게 된 연고를 말하기를 한결같이 전일에 의논한 대로 하니, 예겸(倪謙)이 말하기를,

"태상 황제(太上皇帝)께서 날마다 경연(經筵)에 납시고 조정에 나아가시어 정사를 보셨으되, 비록 요(堯)·순(舜) 같은 임금이라도 이보다 나을 수 없었는데, 요사이 오랑캐가 변방을 침범함으로 인하여 종사(宗社)를 위해서 친히 정벌하려고 하시므로,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힘써 그치기를 간(諫)하였으나, 간신(姦臣)인 환자(宦者) 왕진(王振)이 성총(聖聰)을 가리우고 좇지 않는 것처럼 하여 거용관(居庸關) 밖에 이르렀는데, 병부(兵部) 광 상서(鄺尙書)와 한림(翰林) 조 학사(曹學士)가 회연(回輦)하기를 간청(懇請)하였으나, 진(振)이 또한 막아서 가리우고 아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때에 우리 군사도 모두 진력(盡力)하여 공토(攻討)하려고 하였으나 진(振)이 싸우지 말라고 말하여, 도적이 우리 군사를 에워싸 끊었으므로,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어, 드디어 거가(車駕)가 잘못하여 적에게 빠졌으니, 모두 진(振)의 소위(所爲)입니다. 조정에서 진(振)의 족속을 없애버리고 오랑캐를 모두 쫓아내고, 사방에서 정병(精兵)을 뽑아 경사(京師)에 모아 의외의 사변에 대비하였습니다. 황제께서는 인가하시고 명철하시며, 영발(英發)하시고 무열(武烈)하시며, 후하신 덕(德)이 지극하시와 태상 황제(太上皇帝)를 위하여 하례도 받지 아니하시고 잔치에도 나가지 아니하시는데, 지금 우리들이 옴에 전하(殿下)께서 맞이하여 위로하심이 길에 끊이지 아니하니, 감격하기는 하오나, 공공연히 잔치를 받으니 진실로 마음에 부끄럽습니다. 이 뒤로는 잔치를 베푸실 필요가 없고 다만 밥만을 먹겠습니다. 또 세자께서 병환 중이신 몸으로 조서를 맞이하시니 더욱 조정을 공경하시는 뜻을 알겠습니다."

하였다. 다례(茶禮)를 마치고 나서 사신이 태평관(太平館)으로 돌아가니,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하마연(下馬宴)을 대리로 행하였다. 정인지(鄭麟趾)김하(金何)로 관반(館伴)을 삼으니, 사신이 김하에게 이르기를,

"지금 조정(朝廷)에서는 잔치도 베풀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아니하는데, 우리들이 명(命)을 받들고 와서 공공연하게 음악을 들으니 마음에 불안한 바가 있소."

하니, 하(何)가 말하기를,

"황제께서 새로 보위(寶位)에 오르셨으니 천하가 함께 경사스럽고, 또 이 잔치는 예연(禮宴)이니, 음악을 쓰는 것이 어찌 해롭습니까."

하였다. 사신이 말하기를,

"이같이 하면 이는 절조(節操)를 잃는 것이니 진실로 옳지 않소."

하였다. 임금이 좌부승지(左副承旨) 이계전(李季甸)에게 명하여 사신에게 말하기를,

"대인(大人)이 음악을 물리는 뜻은 그렇거니와, 그러나, 황제께서 새로 오르신 처음에 우리 나라에서 어찌 음악이 없이 사신을 대접할 수 있소. 청하건대, 정(情)을 억제하고 음악을 들으소서."

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황제께서 북정(北征)하셨다가 돌아오지 못하시어 조정에서 음악을 쓰지 아니하는데, 우리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연회하는 것은 신하로서의 절조를 잃는 것이오."

하였다. 계전(季甸)이 또 말하기를,

"대인(大人)이 노상(路上)에서 맞이하여 위로할 때에 음악을 물리는 것은 옳으나, 오늘날 국가에서 조정의 새로운 명령을 경사스럽게 여겨 음악을 쓰는 것이니, 대인이 받는 것이 역시 옳습니다.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니, 겸(謙)순(恂)에게 눈짓하고 말하지 않는데, 순(恂)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음악을 들으면 조정에서 듣고 무어라 하겠소. 이제 만일 음악을 들으면 귀국의 뜻은 이루어지지만 우리들의 신하된 절조에는 어찌되겠소."

하고, 드디어 듣지 아니하였다. 이때 잔치할 때에 사신의 자리를 북벽(北壁)에 설치하고 수양 대군의 자리를 동벽(東壁)에 설치하였는데, 사신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어찌 감히 남향(南向)할 것이냐."

하여, 곧 자리를 고쳐 동서(東西)로 마주앉았다. 잔치가 파(罷)할 무렵 예빈시(禮賓寺)에서 연탁(宴卓)의 화초(花草)를 치우고 두목(頭目)에게 연찬(宴饌)을 거두기를 청하니, 사신이 그 화초 치운 것에 성을 내어 밤새도록 연찬을 거두지 못하게 하고 대청 위에 놓아두었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127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62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註 018]
    묘궁(眇躬) : 자기의 겸칭(謙稱).

○丙午朔/翰林侍講倪謙、刑科給事中司馬恂來, 命首陽大君, 【世祖諱。】 率百官迎于慕華館, 結綵棚, 光化門外陳雜戲。 世子自移御所徑詣景福宮 勤政殿庭迎詔。 其詔曰:

朕以皇考宣宗章皇帝仲子, 奉藩京師, 比因虜寇犯邊, 大兄皇帝恐禍連宗社, 不得已親征, 勑眇躬率百官居守, 不意車駕誤陷虜庭。 我聖母皇太后務慰臣民之望, 已皇庶長子爲皇太子, 命眇躬輔代摠國政。 皇親公侯伯曁在庭文武群臣、軍民、耆老、四夷朝使、復以天位久虛, 神器無主, 人心遑遑, 莫之底定, 合辭上請, 早定大計, 皇太后以太子幼沖, 未遽能理萬機, 移命眇躬, 君臨天下。 會有使自虜中還者, 口宣大兄皇帝詔旨: "宗廟之禮, 不可以久曠, 朕弟郕王年長且賢, 其令繼統, 以奉祭祀。" 顧痛恨之方殷, 豈遵承之遽忍! 雖避讓而再三, 兪允莫獲。 仰惟付托之至重, 敢以涼薄而固辭! 已於九月初六日, 卽皇帝位, 遣使詣虜問安, 上大兄皇帝尊號曰太上皇帝, 徐圖迎復。 爲政之道, 必先正始, 其以明年爲景泰元年, 大赦天下, 咸與惟新。 於戲! 惟敬仁誠, 可以安宗社; 惟恭儉勤, 可以惠萬民。 尙賴宗室叔ㆍ祖叔、父協心藩屛, 爰曁中外文武賢臣, 同德匡輔, 弘濟重大之艱, 永隆雍熙之治。 布告天下, 咸使聞知。

勑曰:

爾以王爵, 世守東陲。 奉藩于朝, 累修職貢。 眷玆誠悃, 良足褒嘉。 今朕嗣統之初, 宜申播造之令, 特玆詔示, 賜以禮物, 尙益攄忠, 永固藩屛。 賜國王粧花絨錦明黃一段、紅一段、靑一段、藍一段、紵絲織金胸背獅子紅一匹、織金胸背白澤紅一匹、織金胸背麒麟靑一匹、織金胸背麒麟綠一匹、暗花靑一匹、暗花綠二匹、素紅一匹、素靑一匹、素綠一匹、綵絹紅五匹、藍五匹。 王妃粧花絨錦明黃一段、靑一段、紵綵織金胸背獅子紅一匹、織金胸背麒麟靑一匹、暗花紅一匹、暗花綠一匹、素綠一匹、素靑一匹、綵絹紅三匹、藍三匹。

讀詔訖, 世子詣勤政殿庭東帳幕, 行再拜禮。 世子語使臣以代迎詔命之故, 一如前日所議, 倪謙曰: "太上皇帝日御經筵, 臨朝視事, 雖之君, 不能過此。 頃因虜犯邊, 爲宗社親征, 大小臣僚力諫止之, 姦臣宦者王振蒙蔽聖聰, 矯制不從。 至居庸關外, 兵部鄺尙書、翰林曹學士懇請回輦, 亦遮蔽不奏。

時我軍皆欲盡力攻討, 戒勿與戰, 賊撓絶我軍, 前不得進, 後不得退, 遂令車駕誤陷, 皆所爲也。 朝廷赤族, 盡逐虜, 抽四方精兵, 會于京師, 以備不虞。 皇帝仁明英武厚德之至, 爲太上皇帝不受賀, 不御宴。 今吾等之來, 殿下迎慰, 絡繹於道, 感激則有之, 公然受宴, 實愧於心, 今後不要設宴, 只是喫飯。 且世子扶病迎詔, 尤見敬朝廷之意。

行茶禮罷, 使臣歸太平館, 首陽大君代行下馬宴, 鄭麟趾金何爲館伴。 使臣謂金何曰: "方今朝廷不設宴不聽樂, 吾等承命而來, 公然聽樂, 心有所不安。" 曰: "皇帝新登寶位, 天下同慶。 且此禮宴, 用樂何妨!" 使臣曰: "如此則是失節, 固不可也。" 上命左副承旨李季甸, 告使臣曰: "大人却樂之意然矣。 然皇帝新登之初, 我國家豈可無樂以待使臣! 請抑情聽樂。" 使臣曰: "皇帝北征未還, 朝廷不用樂, 吾等聽樂宴會, 是失臣節。" 季甸又曰: "大人於路上迎慰, 去樂是矣。 今日國家慶朝廷新命用樂, 大人受之, 亦是也, 不須固拒。" 不言。 曰: "我等聽樂, 則朝廷聞之, 以爲何如? 今若聽樂, 貴國之志則成矣, 於吾等臣節何?" 遂不聽。 當宴時, 設使臣座於北壁, 首陽大君東壁。 使臣曰: "吾等豈敢南向!" 乃改座, 東西相對。 宴罷, 禮賓寺去宴卓花草, 請頭目徹宴饌, 使臣怒其去花, 終夜不徹, 置之廳上。


  • 【태백산사고본】 39책 127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62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