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황보인·남지·조극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황희(黃喜)를 영의정 부사(領議政府事)로 그대로 치사(致仕)하게 하고, 하연(河演)을 영의정 부사(領議政府事)로, 황보인(皇甫仁)을 좌의정(左議政)으로, 남지(南智)를 우의정(右議政)으로, 조극관(趙克寬)을 형조 판서(判書)로, 이명신(李明晨)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로, 안완경(安完慶)을 형조 참판(刑曹參判)으로, 조수량(趙遂良)을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이승손(李承孫)을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이수의(李守義)를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남계영(南季瑛)을 성균 사성(成均司成)으로 삼았다. 예로부터 내려온 관례(慣例)에 의하면, 하등극사(賀登極使)는 반드시 수상(首相)으로서 보냈었다. 이제 남지(南智)를 등극사로 삼았으므로, 특별히 이를 제수한 것이고, 황희(黃喜)는 재상의 자리에 있기를 20여 년에 지론(持論)054) 이 너그럽고 후한데다가 분경(紛更)055) 을 좋아하지 않고, 나라 사람의 여론을 잘 진정(鎭定)하니, 당시 사람들이 명재상[眞宰相]이라 불렀다. 하연(河演)은 까다롭게 살피고 또 노쇠하여 행사에 착오가 많았으므로, 어떤 사람이 언문으로 벽 위에다 쓰기를, ‘하 정승(河政丞)아, 또 공사(公事)를 망령되게 하지 말라. ’고 하였다. 남계영(南季瑛)은 재산을 영위함에 부지런하였다. 그가 밀양 부사(密陽府使)로 재직하였을 때에는 청렴하지 못하다는 이름이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126권 2장 A면【국편영인본】 5책 14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壬子/以黃喜領議政府事、仍令致仕, 河演(領議政府司)〔領議政府事〕 , 皇甫仁左議政, 南智右議政, 趙克寬刑曹判書, 李明晨知敦寧府事, 安完慶刑曹參判, 趙遂良(中樞院府事)〔中樞院副使〕 , 李承孫司憲府大司憲, 李守義僉知中樞院事, 南季瑛成均司成。 舊例, 賀登極使必遣首相, 今以智爲登極使, 故特拜之。 喜居相位二十餘年, 持論寬厚, 不喜紛更, 能鎭定國人, 時稱眞宰相。 演苛察, 又老耄, 行事多顚錯, 人有以諺字書壁上曰: "河政丞且休妄公事。" 季瑛勤於營産, 其爲密陽府使, 有不廉之名。
- 【태백산사고본】 39책 126권 2장 A면【국편영인본】 5책 14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