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125권, 세종 31년 9월 29일 병오 2번째기사
1449년 명 정통(正統) 14년
새 황제 즉위함에 따라 진하 진위사를 보낼 것을 논의하다
절일사(節日使) 정척(鄭陟)이 요동에서 치보(馳報)하기를,
"황제가 달달(達達)을 친히 정벌하다가 잘못하여 오랑캐의 나라에 잡혀갔으므로, 황태후(皇太后)가 정통(正統)의 서자(庶子) 견심(見深)을 봉하여 황태자(皇太子)를 삼고, 황제의 아우 성왕(郕王) 기옥(祈鈺)이 즉위하여 원년(元年)을 경태(景泰)라 고치고, 멀리 정통(正統)을 태상황제(太上皇帝)라 존칭하였나이다."
하니, 임금이 듣고 깜짝 놀래어, 의정부와 육조(六曹)를 불러 이르기를,
"황제가 잘못 오랑캐에게 잡혀 가고 새 황제가 즉위하여 이같은 큰 변이 있으니, 진하(進賀)와 진위(陳慰)를 속히 해야 할 것이며, 또 양계(兩界)의 방어하는 것을 더욱 경계하고 엄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임금이 태상황제(太上皇帝)를 위하여 곡림(哭臨)을 행하고자 하여 집현전에 명하여 옛 법을 상고하게 하였으나, 옛 적에 그 예(禮)가 없다 하여 행하지 아니하고, 드디어 판중추원사 남지(南智)로 하등극사(賀登極使)를, 대사헌 조수량(趙遂良)으로 부사(副使)를 삼고, 중추원 사(中樞院使) 이명신(李明晨)으로 진위사(陳慰使)를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125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5책 148면
- 【분류】외교-명(明)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