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재암에 불지른 향교 생도 양회, 현령 최추 등을 유배보내다
의금부 부진무(義禁府副鎭撫) 강맹경(姜孟卿)이 전라도로부터 돌아와서 아뢰기를,
"신 감사(監司)가 사헌부의 관문(關文)에 의거하여, 역승(驛丞) 서구성(徐九成)으로 하여금 도내(道內)를 다니면서 재암(齋庵)을 새로 짓는 것을 금(禁)하게 하였는데, 구성(九成)이 능성(綾城)에 이르러 향교 생도 양회(梁淮) 등의 공초(供招)를 가지고 말하기를, ‘만일 새로 지은 것이 있는데도 고하지 아니하면 죄를 받아도 사피(辭避)하지 못하리라.’ 하니, 회(淮) 등이 평소 고을에 재암(齋庵)이 많은 것을 분하게 여겼으므로, 이에 현령(縣令) 최추(崔湫)에게 고하여 불살라 없애기를 청하매 이를 허락해 주니, 회(淮)가 양창문(梁昌文)·석강(石綱)·성삼덕(成三德)·배치문(裵致文)·김효종(金孝宗)·양유(梁洧)·장우신(張又新)·양흥지(楊興沚) 등과 더불어 재암(齋庵) 11곳을 불살라 버렸는데, 모두 새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추(湫)와 회(淮) 등의 저지른 죄가 가볍지 아니하므로 이미 주현(州縣)에 나누어 가두게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처음에 듣던 것과는 같지 않구나, 내 처음 듣기로는 ‘불당(佛堂)을 세운 이후로 유생들이 횡역(橫逆)하여 재암(齋庵)을 불살라 헐었다.’ 하였는데, 이제 알고 보니 감사가 헌부의 관문에 의거하여 하게 하였으므로, 일이 근인(根因)이 있으니, 이는 듣던 바와 다르다. 사사(寺社)를 새로 짓는 것을 금함이 비록 《원전(元典)》에 기록되어 행한 지 60여 년이 되었어도, 절을 헐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이제 내가 불당을 세우게 되니까, 감사와 수령들이 법을 지키는 것처럼 하여 일부러 불사르게까지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 염불하는 향도(香徒)를 내가 10세 전에 이미 들었지만, 금지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근일(近日)에 승정원에서도 역시 이르기를, ‘옛적에 기로(耆老)들이 염불(念佛)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태종(太宗)께서 정부(政府)를 불러 일을 의논할 적에 정승(政丞) 성석린(成石璘)이 염불하러 절에 가느라고 혼자 참여하지 못했다. ’고 하니, 염불하는 향도는 그 유래가 오래 된 것이다. 이제 헌부에서 나의 불당을 헐 수 없으므로 법을 지키는 것처럼 하여 소민(小民)들의 불당을 헐려고 하니, 헌사(憲司)에서 기강(紀綱)을 진작(振作)시킴이 어찌 인망(人望)에 족하겠는가. 승정원은 강맹경(姜孟卿)과 더불어 함께 이 뜻을 알고 의금부에 가서 효유하여 율(律)에 비추어 아뢰라."
하였다. 이에 사람의 방옥(房屋)을 고의로 불지른 율로서 조율(照律)하여, 추(湫)와 회(淮) 등 9인이 모두 참형(斬刑)에 해당한다 하니, 명하여 1등(等)을 감(減)해서 장(杖) 1백 대에, 유(流) 3천 리에 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12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42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사법-재판(裁判) / 역사-전사(前史)
○義禁府副鎭撫姜孟卿還自全羅道啓: "新監司據司憲府關, 令驛丞徐九成行道內, 禁新創齋庵。 九成至綾城, 取鄕校生梁淮等供招曰: ‘如有新創, 不告則受罪不辭。’ 淮等素憤縣多齋庵, 乃告縣令崔湫, 請燒毁, 許之。 淮與梁昌、文石綱、成三德、裵致文、金孝宗、梁洧、張又新、楊興 沚等遂燒齋庵十一所, 皆非新創者。 湫及淮等, 罪犯匪輕, 已令分囚州縣。"
上曰: "與初所聞不同。 予初聞之, 以爲建佛堂以後儒生橫逆, 燒毁齋庵, 今知監司據憲府關爲之, 事有根因, 此異於所聞也。 新創寺社之禁, 雖載《元典》, 行之六十餘年, 未聞毁寺者。 今予建佛堂, 而監司守令佯爲守法, 至使故燒, 何哉? 且念佛香徒, 予年十歲前已聞之, 而未聞禁止者也。 近日承政院亦云: ‘古有耆老念佛之事。’ 昔太宗召政府議事, 政丞成石璘以念佛詣寺, 獨不與, 念佛香徒其來久矣。 今憲府不能毁予佛堂, 佯爲守法, 亦欲毁小民佛堂, 憲司之振綱, 豈滿於人望乎! 承政院與姜孟卿共知此意, 往諭義禁府, 照律以啓。"
於是, 照以故燒人房屋律, 湫及淮等九人, 竝皆斬, 命減一等, 杖一百, 流三千里。
- 【태백산사고본】 39책 125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42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사법-재판(裁判)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