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종실록 124권, 세종 31년 5월 4일 계미 2번째기사 1449년 명 정통(正統) 14년

진관사를 수리하여 수륙사를 설치하라 명하다

좌의정 하연(河演)·우찬성(右贊成) 김종서(金宗瑞)가 아뢰기를,

"수륙사를 영국사에 옮기는 것이 가합니다."

하매, 우의정(右議政) 황보인(皇甫仁)이 아뢰기를,

"진관(津寬) 수륙사(水陸社)는 태조(太祖)께서 두세 번 거둥하여 정하신 것이니, 가볍게 버리어 퇴락하게 그냥 둘 수 없사옵고, 하물며, 새로 사사(寺社)를 창건하는 것은 나라에 금하는 법령이 있사온데, 영국사 중이 법을 어기고 창건하였으되 이미 치죄(治罪)하지 아니하고, 또 따라서 수륙사로 만들면 후래(後來)에 간사한 중이 어찌 징계되는 바가 있겠습니까. 그대로 진관사를 수리하는 것이 편하옵니다."

하니, 정분(鄭苯)민신(閔伸)을 불러 말하기를,

"우의정의 의논이 정대(正大)할 뿐 아니라, 또 적절하니, 진관사 수리하는 일을 마감(磨勘)하여 아뢰라."

하매, 분(苯) 등이 아뢰기를,

"수리하는 일은 예조(禮曹)에서 이미 벌써 조치하였는데, 역사할 일꾼은 자원하는 대로 들어서 정하고, 직분을 받은 중이 스스로 50일의 양식을 마련하여 역사하되, 재목과 기와는 간사승(幹事僧)을 정하여 쌀 4백 석과 면포 2백 필을 주어, 주현(州縣)이 공물(貢物)을 방납(防納)하여 그 비용에 충당하게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역사를 50일로 하는 것이 과하지 않은가. 30일이나 40일로 정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다. 분(苯)이 아뢰기를,

"자원하는 중이 많으면 3, 40일도 가하오나 적으면 아니 되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알았다."

하였다. 정분 등이 공물(貢物) 대납(代納)하는 건의를 한 이후로부터 간사승들이 주군(州郡)에 돌아다니며 그 값을 독촉해 받아 백성에게 중하게 거두니, 곡식과 쌀이 산처럼 쌓이어 마음대로 써서, 성색(聲色)과 주육(酒肉)이 무소부지(無所不至)이었으나, 감사와 수령이 감히 누구라고 하지 못하고 도리어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며 뜻을 굽히어 떠받드는 자까지 있었다. 각돈(覺頓)이란 자가 간사승 중에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자로서 여러 고을에 횡행하면서 조금만 그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모함하여 죄를 받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12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28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재정-공물(貢物)

○左議政河演、右贊成金宗瑞啓: "水陸社, 可移寧國寺。" 右議政皇甫仁曰: "津寬水陸社, 太祖再三臨幸所定, 不可輕棄, 任其頹敗也。 況新創寺社, 國有禁令, 寧國寺僧違法創之, 旣不能治罪, 又從而爲水陸社, 則後來姦僧, 何所懲乎? 仍修津寬爲便。" 召鄭苯閔伸曰: "右議政之論, 非徒正大, 且爲切當。 津寬修葺之事, 磨勘以啓。" 等曰: "修葺之事, 禮曹已嘗措置, 役徒則聽從自願受職, 僧自齎五十日糧役之。 材瓦則定幹事僧, 給米四百石、緜布二百匹, 防納州縣貢物, 以供其費。" 上曰: "役五十日, 不其過乎? 以三四十日爲定何如?" 曰: "自願僧多則三四十日可矣, 小則不可也。" 上曰: "已知之矣。" 自等獻議代納貢物以後, 幹事僧巡州郡, 督受其價, 重斂于民, 穀米山積, 惟所用, 聲色酒肉, 無所不至, 監司守令, 莫敢誰何, 至有設宴慰之, 曲意承奉者。 有覺頓者, 幹事之最姦猾者, 橫騖州縣, 人有小忤其意, 必讒而抵罪。


  • 【태백산사고본】 39책 12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28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재정-공물(貢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