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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122권, 세종 30년 11월 8일 경인 1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세자가 금성 대군 집으로 이차하고, 세자의 조참 장소에 대해 의논하다

세자가 금성 대군(錦城大君)의 집으로 이차(移次)하였다. 이 앞서 임금이 경창부 윤(慶昌府尹) 정척(鄭陟)에게 명하기를,

"세자궁(世子宮) 안이 편치 못하여 장차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移次]고자 하나, 계조당(繼照堂)은 동궁(東宮)에 가까우므로, 이곳에서 조참(朝參)을 받을 수 없으니, 근정문(勤政門)에서 동쪽에 앉아서 서쪽을 향하여 조참을 받음이 어떨까."

하니, 정척이 아뢰기를,

"근정문은 곧 전하께서 조회를 받는 문이온데, 세자가 비록 동쪽에 앉아서 서쪽을 향할지라도, 백관의 철반(綴班)034) 이 일체 전하께서 조회를 받을 때와 같사오니, 군신(君臣)의 명분(名分)으로 어찌 허위(虛位)035) 라고 경솔히 할 수 있사오리까. 신은 생각하옵건대, 보루문(報漏門)영제교(永濟橋)의 서쪽 수각(水閣)이 가하다고 여겨집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보루문은 대궐을 등졌고, 수각은 물 위에 있으니, 모두 불가하다. 근정문에서 조참을 받는 것은 근거가 없지 아니하니, 듣건대, 대명(大明)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가 병이 있어서, 인종(仁宗)이 태자로 있으면서 봉천문(奉天門)의 동쪽에 앉아서 조회를 받았고, 또 처음에 계조당(繼照堂)을 지어서 정인지(鄭麟趾)가 말하기를, ‘세자가 근정문 동쪽에 앉아서 조참을 받음이 가하다. ’고 하였으니, 나의 이 의논은 이 까닭으로서이다. 다만 내가 왕위를 내놓은 것이 아니니, 궁궐이 세자의 궁이 아니므로, 백관들이 서북(西北)으로 철반(綴班)함은 조금 의심스러움이 있다."

하고, 인하여 승정원에 의논하기를 명하니, 승정원에서도 역시 수각(水閣)을 말하매, 임금이 의정(議政) 하연(河演)·황보인(皇甫仁)·찬성(贊成) 박종우(朴從愚)·김종서(金宗瑞), 참찬(參贊) 정분(鄭苯)·정갑손(鄭甲孫), 예조 판서 허후(許詡), 참판(參判) 조극관(趙克寬) 등을 불러 의논하니, 하연 등이 모두 아뢰기를,

"홍례문(弘禮門) 외정(外庭)의 동쪽 직방(直房) 앞에 장전(帳殿)을 설치하고 조참을 받음이 적당하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홍례문은 대내(大內)와 멀어서 걸어서 나갈 수 없고, 또 사궁(私宮)이 아니고 가마[轎]도 탈 수 없으니, 나는 생각하기를, 근정문 밖의 영제교(永濟橋) 북편 길 동쪽에 자리를 베풀고 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하니, 하연 등이 정분·허후·극관 등으로 하여금 편부(便否)를 살펴보게 하여, 드디어 영제교 북쪽으로 정하였다. 예조에 전지하기를,

"동궁(東宮)이 이접(移接)하여 있을 동안은 근정문의 외정(外庭)에서 조참을 행하고, 이접하여 있는 곳에서 정사를 보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12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04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註 034]
    철반(綴班) : 반열을 지어 서는 것.
  • [註 035]
    허위(虛位) : 임금이 나오지 아니한 빈자리.

○庚寅/世子移次于錦城大君第。 先是, 上命慶昌府尹鄭陟曰: "世子宮內未安, 將欲移次他所。 繼照堂近東宮, 不可受朝參於此, 勤政門坐東面西受朝參, 何如?" 曰: "勤政門, 乃殿下受朝之門。 世子雖坐東面西, 百官綴班, 一如殿下受朝之時, 君臣名分, 豈可以虛位而忽之哉! 臣以謂報漏門永濟橋 西水閣可矣。" 上曰: "報漏門背闕, 水閣水上, 俱不可也。 勤政門受朝, 不爲無據。 聞大明 太宗文皇帝有疾, 仁宗爲太子, 坐奉天門東受朝。 又初作繼照堂, 鄭麟趾以爲: ‘世子坐勤政門東受朝參可也。’ 予之此議, 以此也。 但予非釋位, 宮闕非世子宮, 而百官西北綴班, 稍有可疑。" 仍命承政院議之。 政院亦以水閣爲言, 上召議政河演皇甫仁、贊成朴從愚金宗瑞、參贊鄭苯鄭甲孫、禮曹判書許詡、參判趙克寬議之。 等皆曰: "弘禮門外庭東直房前, 設帳殿受朝參便。" 上曰: "弘禮門遠於大內, 不可徒步以出, 且非私宮, 亦不可乘轎。 予以爲勤政門永濟橋北道東設次爲之, 若何?" 河演等令克寬等相視便否, 遂以永濟橋北爲定。 傳旨禮曹: "東宮移接間, 朝參於勤政門外庭, 視事於移接處。"


  • 【태백산사고본】 38책 12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04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