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121권, 세종 30년 9월 8일 신묘 1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이개·임종선·여섯 승지·김수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개(李𧪚)로 순성군(順城君)을 삼고, 임종선(任從善)으로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삼았으며, 여섯 승지(承旨)로 모두 첨사원(詹事院) 첨사(詹事)를 겸하고, 김수온(金守溫)으로 수 승문 원교리(守承文院校理)를 삼았는데, 수온(守溫)은 본래 부처에 아첨하는 자이다. 그 형 중 신미(信眉)가 승도(僧道)를 만들어 꾸며 임금께 총애를 얻었는데, 수온(守溫)이 좌우를 인연(夤緣)하여 수양(首陽)과 안평(安平) 두 대군과 결탁해서 불서(佛書)를 번역하고, 만일 궁내에서 불사(佛事)가 있으면, 사복 소윤(司僕少尹) 정효강(鄭孝康)과 더불어 눈을 감고 돌올하게 앉아서 종일 밤새 합장(合掌)하고 경(經)을 외고 염불을 하며 설법하여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빛이 없었다. 또 항상 대군(大君)을 꾀이기를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이 법화(法華)나 화엄(華嚴)의 미묘(微妙)함에 미치지 못한다 하므로, 여러 대군들이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이라 여기어 임금이 특별히 정조(政曹)를 제수하라고 명하였는데, 마침 빈자리가 없기 때문에 우선 이 벼슬을 준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121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5책 9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