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 등이 육조와 함께 불당설치 불가를 상소하다
의정부 좌의정(議政府左議政) 하연(河演) 등이 육조(六曹)와 함께 상소하기를,
"신 등이 엎드려 전지(傳旨)를 보니, ‘문소전(文昭殿) 서북 모퉁이에 한 불당을 세우고 일곱 중으로 지킨다.’ 하였으므로, 신 등이 놀라서 그 불가한 것을 진달하였으나, 다만 궁성 밖에 영건하는 것을 허락하였을 뿐이요, 유음(兪音)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물러가서 생각하여 보니, 이번 이 한 가지 일이 실로 정치의 오륭(汚隆)과 국가의 흥체(興替)에 관계되므로, 차마 침묵하지 못하고 다시 소(疏)를 갖추어 들리어서, 천청(天聽)이 혹시라도 돌이키기를 바랍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성효(聖孝)가 깊고 지극하시어, 무릇 추복(追福)이 될 만한 것은 지극한 정성을 쓰시지 않음이 없으시니, 반드시 생각하시기를, 불씨의 도가 비록 믿을 것은 못되나 혹시 유명(幽明) 사이에 일종의 도리가 있을 듯도 하다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신 등의 마음에는 생각하기를, 천지 일월과 산천 귀신이 소명하게 퍼져 있고 장엄하게 널려 있는데, 저 부처가 또한 무슨 귀신이기에 그 사이에서 능히 화복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단연코 아무 것도 없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 비록 시속을 따라서 효도하는 생각을 편다 하더라도, 또한 산수가 깨끗한 곳에 이미 행한 조종의 법에 의하여 명복을 구하는 데에 불과할 뿐입니다. 더욱이 경복궁(景福宮)은 태조가 세운 만세의 법궁(法宮)이요, 문소전은 앞은 묘(廟)이고 뒤는 침소(寢所)이어서, 종묘(宗廟)와 서로 표리(表裏)가 되어 만세의 원묘(原廟)이므로, 부도(浮屠)로 섞어서 만세의 구실을 남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날에 문소전의 불당이 있는 것을 전하가 이미 그 불가한 것을 알고 철거하시니, 신민들이 모두 전하의 한결같은 마음을 우러렀으매, 오늘날에 다시 이 거조를 하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이 함께 재주롭지 못하오나, 정부(政府)나 육조(六曹)에 직위를 갖추어 있어 실상 휴척(休戚)을 같이하므로, 삼가 간담을 피력(披瀝)하여 진달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서너 번 생각하시고 급히 전 명령을 회수하시어, 신 등이 밤낮으로 우러러 바라는 소원에 부응(副應)하여 주소서."
하였으나,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12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5책 83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정론(政論)
○議政府左議政河演等同六曹上疏曰:
臣等伏覩傳旨曰: "文昭殿西北隅, 建一佛堂, 七僧守之。" 臣等驚駭, 陳其不可, 但許宮城外營建而已, 未蒙兪音。 退而思之, 今此一擧, 實關政治之汚隆、國家之興替, 不忍含默, 更具疏以聞, 冀回天聽之萬一。 臣等竊惟聖孝深至, 凡可以追福者, 無所不用其極, 必以爲佛氏之道, 雖不足信, 或者幽明之間, 容有一種道理。 然臣等之心以爲天地日月山川鬼神, 昭布森列, 彼佛亦何等之鬼, 能作禍福於其間耶! 斷然知其無有也。
殿下雖從流俗, 以伸孝思, 亦不過於山水淨處, 依已行祖宗之法, 追福而已。 況景福宮, 太祖所建, 萬世之法宮; 文昭殿, 前廟後寢, 與宗廟相爲表裏, 萬世之原廟, 不可雜以浮屠, 以貽萬世之口實。 前日文昭殿之有佛堂, 殿下旣知其不可而撤去, 臣庶咸仰殿下一哉之心, 不圖今日更爲此擧也。 臣等俱以不才, 備位政府六曹, 實同休戚, 謹披肝瀝膽以陳, 伏望殿下特留三思, 亟收前命, 以副臣等日夜仰望之願。
不報。
- 【태백산사고본】 38책 12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5책 83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