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종실록121권, 세종 30년 7월 19일 계묘 2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신석조·조서안·이계전 등이 불당설치의 불가함을 아뢰다

집현전(集賢殿) 직제학(直提學) 신석조(辛碩祖)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불당 세울 것을 정지하는 일로 여러 번 신청(宸聽)을 시끄럽게 하였으나, 유윤(兪允)을 얻지 못하였으니, 통분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지금 또 전지(傳旨)를 얻어 보고 반복하여 생각하매, 더욱 놀라운 마음 간절하여, 다시 천위(天威)를 무릅쓰고 삼가 하나하나 조목을 들어 진달합니다. 생각하옵건대, 천하의 일은 시비 선악의 두 끝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시비는 양립(兩立)할 수가 없고, 선악은 길을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착한 것은 좋아하고 악한 것은 미워하며, 옳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은 인심의 다 같은 것입니다. 불씨가 군부(君父)를 배반하고 윤리(倫理)를 멸하며,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좀먹으며, 집을 패하고 나라를 그르치니, 그 해가 이루 말할 수 없는지라, 이런 까닭으로 고금 사람들이 모두 그 나쁘고 악한 것을 의논하여, 삼척동자도 익히 듣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은 진실로 성교(聖敎)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미 나쁘고 악하다고 말한다면, 배척하고 내치기에 여념이 없어야 하겠고, 취사(取捨)로 논할 수가 없습니다. 가사 취사로 말하더라도, 옛날로부터 인주(人主)가 마음으로 좋아하여 능히 사태(沙汰)하지 못하면 취(取)라고 말할 수 있지마는, 비록 미워하기는 하여도 혹은 습속(習俗)의 오랜 것을 따르고, 혹은 사세의 어려운 것으로 인하여 다 태거(汰去)하지 못하는 것도 또한 취(取)라고 하는 것이 가합니까. 우리 태종(太宗)께서 고명하고 세상에 나기 힘든 자품으로, 고려의 무너지고 어지러운 뒤를 당하고 태조의 초창한 때를 만났으나, 오히려 시속을 따르지 않고서 정도(正道)를 부지(扶持)하고 이단(異端)을 배척하여 비익(裨益)한 것이 대단히 많았는데, 즉위하신 뒤에 사찰을 혁파하고 전민(田民)을 회수하며, 산릉(山陵)에 있어서도 여러 의논을 물리치고 사찰을 설치하는 것을 허락치 않고서 말씀하기를, ‘더러운 무리로 하여금 내 곁에 가까이 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 깊이 미워하고 아프게 끊는 것이 엄하였습니다. 이에 불씨의 폐단이 10중 8,9는 없어졌는데, 기신(忌晨)에 재를 베풀고 대상(大喪)에 추천(追薦)하는 등의 일 같은 것은 정히 습속의 오랜 것과 사세의 곤란한 것으로 돈연(頓然)히 고치지 못한 것이니, 아마도 소정(小貞)을 하여서 다른 날 대정(大貞)의 기초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찌 아울러 이것을 가지고 사(捨)하지 못하고 취(取)하였다 할 수 있습니까. 만일 이 불당이 특별히 문소전(文昭殿)의 예전 것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전의 문소전은 다만 속례에 따라서 쉬용(晬容)을 봉안하였을 뿐이요, 지금은 이것과 달라서 그 체제가 종묘(宗廟)와 똑 같으니, 어찌 묘궁(廟宮) 예법의 땅 옆에 불우(佛宇)를 세워서 더러운 치류(緇流)로 거처하게 할 수 있습니까. 종을 울리고 북을 치고 불경을 외는 소리가 새벽 저녁으로 들리면, 태종의 하늘에 있는 영령의 내 곁에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마음에 편안히 여기겠습니까. 또 이 불당의 건립(建立)이 의리에 합하여 마땅히 먼저할 것이라면, 계축년 이후 지금까지 16년이나 되는 오랜 동안에 어째서 성려(聖慮)가 일찍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였고, 온 나라의 신료(臣僚)가 어찌 하나 둘 충성을 바치어 건백(建白)한 자가 없고서 비로소 오늘에 발하였겠습니까. 근래에 불사가 점점 늘어나고, 이 일이 또 생겼으니, 비록 조종의 옛것을 회복한다 하더라도, 신하와 백성의 마음에는 모두 전하의 부처를 좋아하는 정성이 여기에 이르러 지극하였다 할 것입니다. 대개 인인(仁人)·효자의 사친(事親)하는 것은 반드시 예(禮)로 하고 반드시 의(義)로 하여야 하나니, 만일 예의로 하지 못한다면 나머지는 보잘것 없는 것입니다. 예전 제왕이 궁묘(宮廟) 옆에 절을 지어 가지고 효자가 되었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비록 신 등의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으로 헤아려도 그의 옳은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또 의리에 불가하다면 비록 한 간을 짓고 한 중이 지키며 멀리 들 밖에 있더라도 불가한데, 어찌 간수와 지키는 중의 많고 적음과 땅의 멀고 가까움을 따질 것이 있습니까. 오늘날의 한 간·한 중이 어찌 후일의 천백 간·천백 중의 시초가 되지 않음을 알겠습니까. 만일 좋은 말이라면 꼴베고 나무하는 사람의 말이라도 또한 채납(採納)하거늘, 하물며, 의정 대신(議政大臣)이 모두 불가하다 하옵는데, 전하께서 이를 어기시고 억지로 이 일을 거사하옵시니, 의정은 전하께서 주신 것이요, 천위(天位)를 한가지로 하고 천직(天職)을 다스리는 것이온데, 이 말씀을 따르지 않으시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시니, 전하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함께 나라를 다스리시렵니까. 지금은 의정뿐만 아니라, 육조(六曹)·대간(臺諫)·시종(侍從)·신료(臣僚)가 모두 불가하다 하는데, 전하께서 오히려 따르지 않으시니, ‘혹 일으키던지 혹 폐하던지 출입하는 것은 사우(師虞)라. ’는 뜻에 어떠합니까. 또 흥천(興天)·흥덕(興德)·개경(開慶) 등의 절은 비록 기울어지고 무너지는 데에 이르더라도 인하여 수리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지난날에 흥천사의 탑을 수리할 때에도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뜰에서 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수리한 일이 또한 국가의 공의(公議)에서 나온 것이 아니온데, 어찌 끌어다가 전례를 삼을 수가 있습니까. 신 등은 참으로 이 불당이 더욱 친절한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백년을 폐철(廢撤)하더라도 무슨 부끄러울 것이 있겠습니까. 예전 예(禮)를 어기고 공론을 등져가며 묘궁(廟宮) 곁에 불우를 세우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신 등은 두렵건대, 전하가 혼자 스스로 부끄러워할 뿐 아니라, 후세에서 또한 전하를 위하여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이 불당을 세우는 것이 비록 작은 일이라고 하지마는, 자손의 본받는 것과 아랫 백성의 취향(趣向)과 치화(治化)의 오륭(汚隆)과 정도(正道)의 소장(消長)과 생민의 이병(利病)과 국세(國勢)의 안위(安危)가 모두 여기에서 결정됩니다. 국가는 조종(祖宗)의 국가요, 전하의 사유(私有)가 아니온데, 어째서 국가 만세의 염려를 하지 않으십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귀에 거슬리는 것을 꺼리지 마시고 생각하여 고치시어서, 급히 정파(停罷)하는 명령을 내리소서."

하였으나, 회답하지 아니하다. 석조(碩祖) 등이 또 아뢰기를,

"이 일은 시비 선악이 환하게 명백하여 의심할 것이 없는데, 어찌 성상께서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시겠습니까. 온 나라 신하들이 말을 같이 하여 간하나, 하나도 가부(可否)하시는 것이 없으니, 마음이 간절히 아프옵니다."

하고, 좌승지(左承旨) 조서안(趙瑞安) 등은 아뢰기를,

"신 등이 여러 번 아뢰어서 황공하오나, 일이 대체(大體)에 관계되니, 어찌 감히 침묵할 수 있습니까. 국론이 모두 같아서 한 사람도 옳다고 하는 이가 없으니, 면강하여 여론을 좇으소서."

하였으며, 동부승지(同副承旨) 이계전(李季甸)은 말하기를,

"예로부터 온 나라 사람이 모두 옳지 않다고 하는데, 인주가 듣지 않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 아니며, 또 온 나라가 힘써 간하는데 마침내 듣지 않는 법도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다시 생각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12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5책 82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정론(政論)

    ○集賢殿直提學辛碩祖等上疏曰:

    臣等以停建佛堂, 累瀆宸聽, 未蒙兪允, 不勝痛憤。 今又獲覩傳旨, 反復思度, 益切驚愕, 更冒天威, 謹逐一條達。 竊惟天下之事, 不越乎是非善惡兩端而已。 是非不兩立, 善惡不同途, 故好善惡惡, 取是捨非, 人心之所同然也。 佛氏背君父滅倫理, 惑世蠧民, 敗家誤國, 其害不可勝言。 是以古今人皆論其非且惡, 而三尺童子, 亦莫不習聞, 誠有如聖敎者矣。 旣曰非且惡, 則排擯黜斥之不暇, 不容以取捨論也。 假以取捨言之, 自古人主心好之而不能沙汰, 則謂之取可也, 雖惡之, 而或循習俗之舊, 或因事勢之難, 未能盡汰者, 亦謂之取可乎?

    太宗以高明不世出之資, 當高麗壞亂之餘, 値太祖草創之時, 然猶不徇時俗, 扶持正道, 排斥異端, 裨益甚多。 及卽位, 革寺社收田民, 至於山陵, 排群議而不許置刹, 若曰: "毋令汚穢之徒, 褻近我側。" 其深惡而痛絶之者嚴矣。 於是, 佛氏之弊, 十去八九。 若其(忌晨)〔忌辰〕 設齋大喪追薦等事, 正以其習俗之舊、事勢之難而不能頓革耳。 抑爲小貞, 以爲他日大貞之漸也, 豈可倂以此爲不能捨而取之也! 儻曰此佛堂, 特復文昭殿之舊耳, 則向之以文昭殿, 但從俗奉安睟容而已。 今則異於是, 凡其體制, 一如宗廟, 豈宜於廟宮禮法之地之傍而爲建佛宇, 處以汚穢之緇流乎! 鳴鍾擊鼓梵唄之聲, 鬧於晨夕。 以太宗在天之靈毋近我側之心, 其肯安之乎!

    且此堂之建, 於義爲合, 在所當先, 則自癸丑以後至今十六年之久, 而何聖慮曾不及此! 擧國臣僚, 豈無一二效忠建白者, 而始發於今日乎! 近來佛事稍張, 而此事又生, 雖曰復祖宗之舊, 臣庶之心, 皆以爲殿下好佛之誠, 至於此極也。 夫仁人孝子之事親, 必以禮必以義, 苟不以禮義, 餘無(正)〔足〕 觀, 未聞古之帝王創寺於宮廟之側, 以爲孝子者也。 雖以臣等愚暗之心度, 亦未知其可也。 且義所不可則雖創一間, 守以一僧, 遠在郊坰之外, 固爲不可, 何計其間架居僧之多少與地之遠近乎! 今日一間一僧, 安知不爲後日千百間千百僧之權輿乎!

    苟言之善者則芻蕘亦在可採, 況議政大臣, 皆曰不可, 殿下違之, 强爲此擧! 議政, 殿下所與共天位治天職者, 而言之不從, 諫之不聽, 殿下誰與共爲國乎? 今則非獨議政六曹, 臺諫侍從臣僚, 亦皆以爲不可, 殿下猶不從之, 其於有廢有興出入師虞之義何如? 且興天興德開慶等寺, 雖至傾頹, 因而不葺可也。 向者興天修塔之時, 在朝臣僚, 罔不廷諍。 然則修葺之事, 亦非出於國家之公議, 豈宜援以爲例乎! 臣等固未知此堂之尤爲親切也。 雖廢撤百年, 何愧恥之有! 違古禮背公論, 建佛宇於廟宮之側, 實爲可恥。 此擧不已, 臣等恐殿下不獨自恥, 而後世亦爲殿下恥也。 此堂之建, 雖曰小事, 然子孫之則効、下民之趣向、治化之汚隆、正道之消長、生靈之利病、國勢之安危, 皆決於此。 國家者, 祖宗之國家, 非殿下之私有也, 何不爲國家萬世慮乎! 伏惟殿下勿以逆耳爲憚, 繹而改之, 亟賜停罷。

    不報。 碩祖等又啓曰: "此事是非善惡, 灼然甚明, 無可疑者, 豈聖上不知其然乎! 擧國臣僚同辭以諫, 一無可否, 心切痛焉。" 左承旨趙瑞安等啓曰: "臣等累煩惶恐, 然事關大體, 豈敢含默! 國論皆同, 無一人以爲可者, 勉從輿議。" 同副承旨李季甸曰: "自古擧國之人, 皆以爲不可, 而人主不聽, 實非美事, 亦無有擧國强諫而終不聽者, 伏惟更思之。"


    • 【태백산사고본】 38책 12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5책 82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