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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1권, 세종 30년 7월 1일 을유 1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남지·김효성·안지·조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남지(南智)로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겸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김효성(金孝誠)으로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안지(安止)로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조부(趙傅)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이화(李樺)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조극관(趙克寬)이인화(李仁和)로 아울러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를, 곽운(郭惲)으로 행 첨지돈녕부사(行僉知敦寧府事)를, 박중림(朴仲林)으로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조수산(趙壽山)김흔지(金俒之)·유응부(兪應孚)로 아울러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노호(盧皓)로 수 사헌 집의(守司憲執義)를, 김순(金淳)으로 수 사헌 장령(守司憲掌令)을, 조혜(趙惠)로 경기 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 겸 판광주목사(判廣州牧事)를, 권극화(權克和)로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 겸 판청주목사(判淸州牧事)를, 민공(閔恭)으로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겸 상주 목사(尙州牧使)를, 신자근(申自謹)으로 황해도 도관찰사(黃海道都觀察使) 겸 판해주목사(判海州牧事)를, 신기(愼幾)로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 겸 원주 목사(原州牧使)를, 한확(韓確)으로 평안도 도관찰사(平安道都觀察使) 겸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를, 성승(成勝)으로 경상도(慶尙道) 우도 처치사(右道處置使)를 삼았는데,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하고 평안 감사(平安監司)가 절제사(節制使)를 겸하는 것이 이때에 시작되었다. 노호(盧皓)가 남양 부사(南陽府使)가 되어 국고(國庫)의 미곡 2천여 석을 포흠(逋欠)내고도, 권귀(權貴)한 사람을 잘 섬기어 집의(執義)로 발탁 제수되니, 이때의 의논이 이를 더럽게 여기었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12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5책 7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乙酉朔/以南智判中樞院事、兼判兵曹事, 金孝誠爲工曹判書, 安止藝文館大提學, 趙傅同知敦寧府事, 李樺同知中樞院事, 趙克寬李仁和竝中樞院副使, 郭惲行僉知敦寧府事, 朴仲林工曹參議, 趙壽山金俒之兪應孚竝僉知中樞院事, 盧皓守司憲執義, 金淳守司憲掌令, 趙惠 京畿都觀察使、兼判廣州牧事, 權克和 忠淸道都觀察使、兼判淸州牧事, 閔恭 慶尙道觀察使、兼尙州牧使, 申自謹 黃海道都觀察使、兼判海州牧事, 愼幾 江原道觀察使、兼原州牧使, 韓確 平安道都觀察使、兼(兵馬都制節使)〔兵馬都節制使〕 , 成勝 慶尙道右道處置使。 監司兼牧, 平安監司兼節制使始此。 盧皓南陽府使, 欠國庫米穀二千餘石, 又善事權貴, 擢拜執義, 時論鄙之。


  • 【태백산사고본】 38책 12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5책 7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