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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0권, 세종 30년 5월 15일 기해 1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지대구군사 이보흠의 사창 사의에 대한 집현전의 의논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 이보흠(李甫欽)에게 유시하기를,

"네가 아뢴 사창 사의(社倉事宜)는 정부에 내려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행하기 어렵다.’ 하고, 또 집현전에 내려 의논하니, 혹은 ‘우선 시험하자.’ 하고, 혹은 ‘행할 수 없다.’ 하여, 여러 의논이 같지 않기 때문에 사장(社長)의 상직(賞職) 절차는 의거하여 정할 수가 없으나, 그러나 사창(社倉)의 법은 주문공(朱文公)이 이미 행하였고, 또 네가 바야흐로 뜻을 날카롭게 하여 영위하니, 우선 한 읍에 시험하여 백성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보고자 한다. 네가 시험하되 그 포치(布置)의 방략은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하고 누그러지게 하여 번요(煩擾)하게 하지 말라. 집현전의 의논을 동봉(同封)하니 아울러 참고하라.

1. 집현전 부제학 정창손(鄭昌孫), 직제학 신석조(辛碩祖)·최항(崔恒), 직전(直殿) 이석형(李石亨), 교리 김예몽(金禮蒙)·하위지(河緯地), 부교리 양성지(梁誠之), 수찬 유성원(柳誠源)·이극감(李克堪), 부수찬 서거정(徐居正)은 말하기를, ‘사창(社倉)의 법은 전현(前賢)이 이미 시험한 것이니, 행하는 것이 적당함을 얻으면 참으로 보흠(甫欽)의 말한 것과 같아서 심히 백성에게 편하지마는, 의논하는 자가 이 법이 비록 실상은 백정을 위하여 베푼 것이나, 이식(利息)을 취한다는 이름이 대체에 누가 될 것 같고, 또 사장(社長)을 다 청렴하고 근실한 사람으로 얻지 못하면 혹은 벼슬을 얻기를 바라고, 혹은 나머지를 훔치려고 엿보아 이자를 취하기에 힘써, 거두어 들이는 것이 중도에 지날 것입니다. 혹은 환수하기가 어려운 것을 염려하여 다만 부호(富戶)에만 주고 고독한 사람에게는 주지 않을 것이며, 기타 침어(侵漁)하고 횡포한 것이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니, 혜택은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먼저 그 폐해를 받을 것입니다. 신 등은 망령되게 의논하건대, 대저 입법하는 처음에 영영 끝내 폐단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도 오래되면 폐단이 반드시 생기거늘, 하물며 이 법은 이해(利害)에 대한 의논이 이제 이미 분분하니, 마땅히 영갑(令甲)보다 먼저 익히 강구하여 자세히 절목(節目)을 가하여 우선 크고 작고 비옥하고 척박한 것이 같지 않은 두어 고을에 수년 동안을 시행하여 그 법의 이해와 민정의 편의 여부를 증험하여 과연 이익이 있고 해가 없다면 두루 여러 도에 행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하고, 응교 어효첨(魚孝瞻)은 말하기를, ‘사창(社倉)의 법이 뜻은 아름다우나 거두고 흩고 판비하고 모으고 하는 것이 유약한 사람의 할 일이 아니고, 반드시 교활한 아전의 손으로 돌아갈 것이니, 자고로 재리의 권세를 관장하면서 혜택이 능히 백성에게 미쳤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보흠(甫欽)이 환상(還上)의 폐단을 의논하기를, 「15두가 거의 18, 9두에 이르는데, 사창의 이자 취하는 것은 3두에 불과하니, 환상에 비교하면 큰 폐단이 없을 것이라.」하였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으니, 지금 사창의 법으로 본다면 15두에 이자 3두를 거두니, 이것은 18두이나 호횡(豪橫)한 아전이 거두면 반드시 20여 두에 이를 것이니, 폐단은 더욱 심할 것입니다. 비록 백 가지 교묘한 말로 실지로 폐단이 없다고 이르더라도 신은 믿지 않습니다. 대개 법을 세우는 것은 반드시 민정(民情)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살펴야 합니다. 만일 민정이 싫어한다면 필경은 반드시 백성을 병들이고 말 것이니, 이익이 비록 백 배가 되더라도 행하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만일 부득이하여 행해야 한다면, 청하옵건대 4, 5군현(郡縣)에 4, 5년을 행하여 백성들의 편의 여부를 익히 경험하기를 기다려서, 인하여 더 자세히 물어보아서 수령(守令)과 사장(社長)이 모두 행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고, 반드시 한 고을 백성이 모두 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다만 한 고을의 백성뿐 아니라, 반드시 4, 5고을 백성이 모두 행할 수 있다고 말한 연후에 행하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단연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고, 응교 신숙주(申叔舟)·교리 이개(李塏)·수찬 정창(鄭昌)은 말하기를, ‘근년에 흉년이 서로 겹치어 민생이 조잔하고 병들어 의창(義倉)의 환자도 오히려 상환하지 못하는데, 또 사창(社倉)을 세워 이자를 취하면 백성이 견디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이자를 받는 것이 본래는 백성을 위하고자 함인데 대체에는 실상 누가 있습니다. 또 거두고 흩는 사이에 간사하고 횡포한 것이 날로 불어서 폐해가 장차 만 가지로 될 것이니, 도리어 국가의 백성을 구제하는 뜻에 어긋납니다. 사창(社倉)은 전현이 이미 행한 법이라고 말하지마는, 이것도 역시 특별히 한 고을에 시험한 것이니, 천하에 반포함에 미쳐서는 과연 모두 폐단이 없었겠습니까. 한갓 선유(先儒)가 이미 시험한 법이라는 것만 가지고 반드시 행할 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청묘전법(靑苗錢法)으로 보더라도 당초에 섬서(陝西)에서 시험할 때에는 이롭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천하에 통행함에 이르러서는 사해(四海)가 떠들썩하고 모두 그 폐해를 받았으니, 어찌 한 곳에서 편하였다 하여 사방에 통하여 행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릇 법을 세우는 데는 민정(民情)과 사세(事勢)의 마땅히 할 것으로 따르는 것이 귀하고, 억지로 할 것은 아닙니다. 신 등은 망령되게 생각하건대, 사창(社倉)의 법은 반드시 시험한 연후에 그 불가한 것을 알 것이 아닙니다. ’고 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12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8면
  • 【분류】
    재정-창고(倉庫) / 구휼(救恤)

○己亥/諭知大丘郡事李甫欽: 爾所啓社倉事, 宜下政府議之。 僉曰: "難行。" 又下集賢殿議之, 或以爲姑試之, 或以爲不可行, 衆論如是其不同, 故其社長賞職節次, 不可據以爲定。 然社倉之法, 朱文公固已行之, 且爾方銳意爲之, 便欲姑試一邑, 以觀民之好惡, 爾其試之。 其布置之方略, 務要徐緩, 勿致煩擾。 同封集賢殿議, 幷考之。

一, 集賢殿副提學鄭昌孫、直提學辛碩祖崔恒、直殿 石亨、校理金禮蒙河緯地、副校理梁誠之、修撰柳誠源李克堪、副修撰徐居正曰: "社倉之法, 前賢所已驗, 行之得宜, 則誠如甫欽所言, 而甚便於民也。 但議者以爲: ‘此法雖實爲民而設, 然取息之名, 似累大體。 且社長未能盡得廉謹者, 則或僥倖得爵, 或窺竊羨餘, 務於取息而收納過中, 或慮還收之難, 只給富戶, 而不給煢獨。 其他侵漁豪橫, 無所不至, 惠未及民, 而先受其弊。’ 臣等妄議大抵立法之初, 以爲永終無弊者, 及其久也, 弊必生焉, 況此法利害之議, 今已紛紜, 要當先甲熟講, 詳加節目。 姑於大小膏塉不同數郡, 行之數年, 驗其法之利害與民情之便否, 果有利無害, 遍行諸道爲便。"

應敎魚孝瞻曰: "社倉之法, 意則美矣。 然其斂散辦集, 非柔弱者可能, 必歸猾吏之手, 自古未聞管財利之權而能惠澤及民也。 甫欽論糴之弊, 乃曰: ‘十五斗, 幾至十八九斗, 社倉收息, 不過三斗。 比之於糴, 可無大弊。’ 此不然也。 今以社倉之法觀之則於十五斗收息三斗是十八斗也, 而豪吏斂之, 則必至於二十餘斗, 弊又甚焉。 雖百巧言, 謂實無弊, 臣不信也。 夫立法, 必審民情之好惡, 若民情厭之, 則終必病民, 利雖百倍, 莫如勿行。 若不得已而必行之, 則請於四五郡縣, 行之四五年, 俟其民熟驗便否, 仍加訪問, 雖守令社長皆曰可行, 勿聽, 必一邑之民, 皆曰可行也。 不獨一邑之民, 必四五郡縣之民, 皆曰可行也, 然後行之可也, 不如是則亶不可行。"

應敎申叔舟、校理李塏、修撰鄭昌曰: "近年飢饉相仍, 民生凋瘵, 義倉之糴, 尙未能償, 又立社倉而取息, 竊恐民不能堪也。 取息, 本欲爲民, 而其於大體, 實亦有累焉。 且其斂散之間, 姦橫日滋, 弊將萬端, 反違國家救民之意。 雖曰社倉前賢所已行之法, 然是亦特試於一邑耳, 及其頒諸天下, 則果皆無弊乎? 固不可徒以先儒已驗之法而必謂之可行也。 以靑苗錢法觀之, 當初試之於陝西, 非不利也, 至於通之於天下, 則四海嗷嗷, 悉受其弊, 豈可以便於一處而遂謂可通於四方也! 凡立法, 貴因民情事勢之所當爲, 不可强之也。 臣等妄意社倉之法, 不必試驗然後知其不可也。"


  • 【태백산사고본】 38책 12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8면
  • 【분류】
    재정-창고(倉庫)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