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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0권, 세종 30년 4월 24일 기묘 3번째기사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세자가 익선관을 쓰는 문제로 의논하다

의정부와 이조 판서 정인지(鄭麟趾), 한성부 윤 김하(金何)를 불러 말하기를,

"세자(世子)의 관복(冠服)에 대하여 일찍이 주문(奏聞)하였으나 유윤(兪允)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제 다시 아뢰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또 지금 세자가 군사를 진무하고 나라를 감독하고 있으니, 다른 세자의 비교가 아닌데 다만 평각 사모(平角紗帽)만 쓰고 있어 신하와 다름이 없으니, 사리에 어그러지는 것 같다. 지금 익선관(翼善冠)을 쓰게 하려고 하는데 지장이 없겠는가. 만일 쓸 수 있다고 하여 쓴다면 혹시 명나라 조정에서 사신이 나오던지 혹시 세자가 입조(入朝)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생각하고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좌의정 하연(河演) 이하가 모두 말하기를,

"관복(冠服)은 임금이 명령하는 것이어서 반드시 얻으리라고 예기할 수 없으니, 아직 정지하여 후일을 기다리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고, 정인지(鄭麟趾)·김하(金何)는 말하기를,

"신 등이 주문(奏聞)하는 것이 가합니다. 아뢰어서 얻으면 우리 나라의 복이요, 아뢰어서 윤허되지 않더라도 무슨 해로울 것이 있습니까."

하고, 우의정 황보인(皇甫仁)은 말하기를,

"익선관(翼善冠)은 오직 전하께서만 쓸 수 있고 그 나머지는 쓸 수 없는데, 만일 쓴다면 혼동하여 분별이 없는 데에 가깝지 않습니까."

하고, 김하(金何)는 말하기를,

"면복(冕服)은 윤허를 받지 못하였지마는 익선관(翼善冠)은 평상시에 쓰는 것이니, 비록 쓰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전에 양녕(讓寧)이 세자(世子)로서 조현(朝見)할 때에 평각 사모(平角紗帽)를 썼는데 중국 조정 사람이 묻기를, ‘너희 세자가 어찌 이런 관을 썼는가.’ 하였으니, 대개 불가함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자가 익선관을 쓰는 것이 상례(常例)입니다."

하고, 우찬성 김종서(金宗瑞)는 말하기를,

"중국의 예(禮)에 면복(冕服)을 입은 자는 익선관을 쓰는데, 군왕(郡王)의 장자(長子) 이하는 옷이 면복이 아니므로 다만 평각 사모만 쓰는 것입니다. 만일 중국 사신이 와서 세자가 익선관을 쓴 것을 보고 법에 의거하여 힐문하면 장차 무슨 말로 대답하겠습니까."

하고, 여러 의논도 또한 말하기를,

"관복을 청하기 전에는 이것을 써도 오히려 가하지마는, 지금 관복을 청하여 윤허를 받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이것을 쓰면 불가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의논이 심히 당연하니 아직 정지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120권 9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2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衣生活)

○召議政府及吏曹判書鄭麟趾漢城府尹金何曰: "世子冠服, 已曾奏聞, 未蒙兪允, 今欲更奏, 何如? 且今世子撫軍監國, 非他世子之比, 而只服平角紗帽, 與臣下無異, 似乖於理。 今欲令冠翼善冠, 無奈有所妨乎? 若以爲可冠而冠之, 則設有朝廷使臣出來, 或世子入朝, 則何以處之? 擬議以聞。"

左議政河演以下皆曰: "冠服, 君上所命, 不可期以必得, 姑停之, 以待後日何如?" 鄭麟趾金何曰: "臣等爲奏聞可也。 奏而得之, 則我國之福, 奏而不允, 庸何傷乎?" 右議政皇甫仁曰: "翼善冠, 惟殿下服之, 其餘不得服也。 若服之, 則不幾於渾而無別乎?" 金何曰: "冕服則已不得蒙允矣, 若翼善冠, 常時之服, 雖服之, 無所妨也。 昔讓寧以世子朝見, 着平角紗帽, 中朝人問曰: ‘爾世子, 何用此冠乎?’ 蓋以爲不可也。 然則世子服翼善冠, 常例也。" 右贊成金宗瑞曰: "中國之禮, 服冕服者冠翼善, 郡王長子以下服, 非冕服, 故只着平角紗帽。 脫有中國使臣來見世子服翼善冠, 據法詰之, 其將何辭以對?" 諸議亦以爲: "若未請冠服之前服之, 猶之可也, 今請冕服, 未蒙允兪, 而遽服此服, 無乃不可乎?" 上曰: "衆議甚當, 姑停之。"


  • 【태백산사고본】 38책 120권 9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2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衣生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