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종실록 117권, 세종 29년 9월 9일 무술 1번째기사 1447년 명 정통(正統) 12년

이조 당상의 제수 문제를 의논하다

이사철(李思哲)로써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를, 안완경(安完慶)으로 좌부승지(左副承旨)를, 한확(韓確)으로 평안도 도관찰사(都觀察使)를 삼았다. 이때에 이조 당상(吏曹堂上)이 탄핵을 받아 전주(詮注)하는 데에 참예하지 못하므로, 동부승지(同副承旨) 이계전(李季甸)에게 명하여 맡아 하게 하였는데, 임금이 승지(承旨)에게 문의(問議)하기를,

"안완경(安完慶)이 어떠한가."

하니, 계전(季甸)이 대답하기를,

"일을 알고 숙련하며 자상하고 분명하오니, 무슨 일인들 처리하지 못하오리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이는 얼마이며, 세계(世系)는 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자세하게 알지 못하오나, 신보다 열 아홉 살 위이옵고, 세계(世系)는 일찍이 정조(政曹)와 간원(諫院)을 지냈사온데, 의심할 만한 말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신이 5품이 되였을 때 완경은 벌써 통훈(通訓)이 되였는데 요사이 오랫동안 침체(沈滯)되어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우부승지(右副承旨) 이사순(李師純)과 누가 선진(先進)이며, 나이는 누가 위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나이는 비슷한 듯하옵고, 벼슬은 완경(完慶)이 통의 반열(班列)을 받은 것이 사순보다 수년 먼저이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완경을 치켜올리는구나."

하고, 완경을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제수하였다. 명단[坐目]을 다 올리게 하고 정부에 의논하기를,

"감사(監司)의 직책은 그 소임이 가볍지 않아서 평상시에 있어서도 근로(勤勞)함이 지극한데, 더구나 구황(救荒)할 때는 분주하고 걱정함이 반드시 평상시보다 갑절이나 될 것이다. 대저 사람의 상정(常情)이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 나중에는 게을러져서 처음에 비록 열을 내어하였다가 끝을 완수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처음부터 열을 내지 않는 자일까 보냐. 조극관(趙克寬)이 황해도 감사(監司)가 되매 병을 칭탁하고 예궐(詣闕)하였는데, 때가 추운 철도 아니고 병이 감기도 아니면서 이엄(耳掩)을 끼고 병이 있는 듯이 하여 처음부터 벌써 게으른 마음이 있었으니, 그 나중을 완수하지 못할 것을 알 수 있었고, 또 그 병이 거짓이 아니고 사실이라면 비록 억지로 하려 하여도 또한 될 수가 없을 것이었다. 이제 황해도의 구황(救荒)하는 일이 그 임무가 가장 거창한 것인데, 어찌 능히 감당할 것인가. 그러나 이사원(李師元)은 파직된 지가 이미 오래 되었고, 박이창(朴以昌)은 하비(下批)하였는데도 때맞춰 가지 않고서 구황(救荒)하는 일이 느즈러지니, 그대로 극관(克寬)을 명하여 보내는 것이 어떠할까."

하니, 정부에서 아뢰기를,

"사원(師元)은 벌써 시효(時效)가 지났으니 그대로 있게 할 수가 없삽고, 극관(克寬)은 병들었다고 속였으니 보내는 것이 부당할 뿐 아니오라, 그 거짓으로 회피한 죄를 다스려야 할 것이옵고, 이창(以昌)은 이미 하비(下批)하셨사오니 마땅히 속히 보내시옵소서."

하니, 그대로 따르고 극관은 사헌부에 명하여 전라도 용안현(龍安縣)에 부처(付處)하게 하였다. 극관이 대신(大臣)으로서 병을 칭탁하고 사퇴하니 당시 의논들이 그르게 여기었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117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5책 3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구휼(救恤) / 사법-탄핵(彈劾)

○戊戌/以李思哲爲承政院都承旨, 安完慶左副承旨, 韓確 平安道都觀察使。 時吏曹堂上被劾, 未參詮注, 命同副承旨李季甸掌之。 上注擬承旨曰: "安完慶何如?" 季甸對曰: "諳鍊詳明, 何事不可處也!" 上曰: "年齒幾何? 世系何如?" 對曰: "臣未詳知, 然長臣八九歲矣。 世系則曾經政曹諫院, 未聞有可疑之言也。 臣爲五品時, 完慶已爲通訓, 此間久滯矣。" 上曰: "與右副承旨李師純, 誰爲先進? 年齒誰長?" 對曰: "年齒, 疑其相等, 官則完慶受通列, 先於師純數年矣。" 上曰: "爾推讓完慶矣。" 除完慶左副承旨, 竝坐目陞之。 議于政府曰: "監司之職, 其任匪輕, 其在常時, 勤勞至矣, 況於救荒之時, 奔走憂勤, 必倍於平時。 大抵人之常情, 始勤終怠, 初雖銳意, 未保其終, 況初不銳意者乎! 趙克寬黃海道監司, 稱疾詣闕, 時非寒冷, 病非風氣, 著耳掩以示有病, 其初也, 已有怠心, 其終之不克, 可知矣。 且其病非詐而實, 則雖欲勉强, 亦未可得也。 今黃海救荒, 其務最鉅, 安能當乎! 然李師元, 罷職已久。 朴以昌, 下批而時未往, 救荒之事緩矣。 仍命克寬遣之, 何如?"

政府啓: "師元已失時措, 不可仍置。 克寬詐病, 非惟不當遣, 可治其詐避之罪。 以昌旣下批, 宜速以遣。" 從之, 命鞫克寬于憲府, 付處于全羅道 龍安縣克寬以大臣, 稱疾辭免, 時議非之。


  • 【태백산사고본】 37책 117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5책 3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구휼(救恤)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