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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16권, 세종 29년 4월 27일 무오 2번째기사 1447년 명 정통(正統) 12년

영중추원사 조말생의 졸기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조말생(趙末生)이 졸(卒)하였다. 말생(末生)의 자(字)는 근초(謹初)이며, 본관(本貫)은 양주(楊州)인데, 서운 정(書雲正) 조의(趙誼)의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학문을 힘써서, 신사년051) 에는 장원 급제(壯元及第)에 뽑혀서 요물고 부사(料物庫副使)에 제수되었고, 감찰(監察)·정언(正言)·헌납(獻納)을 거쳐 이조 정랑(吏曹正郞)으로 영전되었다가, 정해년052) 중시(重試)에 둘째로 뽑혀 전농 부정(典農副正)에 제수되었다. 이윽고 사헌 장령(司憲掌令)에 배명되어 직예문관(直藝文館)을 담당하였고, 신묘년053) 에는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가 되었다가 곧 승정원 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에 잠시 배명되었으며, 여러 번 승진되어 지신사(知申事)가 되고, 무술년054) 에는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배명되어 품계를 뛰어서 정덕 대부(靖德大夫)로 가자(加資)하니, 말생(末生)이 사양하여 말하기를,

"신이 오래 출납(出納)055) 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조금도 계옥(啓沃)056) 한 것이 없사온데, 등급을 뛰어 제수하시오니 성은(聖恩)이 너무 지중하와 진실로 마음에 부끄럽사옵니다."

하니,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경(卿)을 대신(大臣) 자리에 두고자 하나 아직 천천히 하려 하니 사양하지 말라."

하고, 다음 달에 형조 판서로 승진시켰다가 곧 병조 판서로 옮겨서 군정(軍政)에 관한 시종(侍從)을 맡게 하여 태종(太宗)의 총애하는 대우가 더욱 융숭하였다. 병오년에 장죄(贓罪)에 연좌(連坐)되어 외직(外職)으로 좌천되었다가 무신년에 불러 들였다가 임자년에 동지중추원 사(同知中樞院使)가 되고, 이듬해 봄에 함길도 도관찰사가 되었다가 겨울에 병으로 사면하였는데, 갑인년 9월에 중추원 사(中樞院使)에 배명되고, 을묘년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가 되고,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옮겼다가, 무오년에 도로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가 되었으며, 기미년에 궤장(几杖)을 받고, 임술년에 숭록 대부(崇錄大夫)에 승차하고, 갑자년에 보국(輔國) 가자를 받고서, 병인년에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가 되었는데, 이 해에 세상을 떠나니, 나이가 78세이다. 부음(訃音)이 들리매 2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조상(弔喪)과 부의(賻儀)와 치제(致祭)를 하고, 관비(官庀)로 장사지냈다. 시호를 문강(文剛)이라 하였으니, 문(文)은 학문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함을 뜻하고, 강(剛)은 지난 허물을 뒤쫓아 고쳐 기움을 뜻한 것이다. 말생(末生)은 기개와 풍도가 크고 너르며 일을 처리함에 너그럽고 후덕하여 태종이 소중한 그릇으로 여겼으나, 옥에 티057) 가 신상에 오점(汚點)이 되어 끝끝내 국무 대신이 되지 못하였다. 아들은 조선(趙璿)조찬(趙瓚)조근(趙瑾)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11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7면
  • 【분류】
    인물(人物)

  • [註 051]
    신사년 : 1401 태종 1년.
  • [註 052]
    정해년 : 1407 태종 7년.
  • [註 053]
    신묘년 : 1411 태종 11년.
  • [註 054]
    무술년 : 1418 태종 18년.
  • [註 055]
    출납(出納) : 임금의 내리는 말과 신하의 올리는 말을 전달하는 일.
  • [註 056]
    계옥(啓沃) : 자기 의견으로 임금에게 도움되게 함.
  • [註 057]
    옥에 티 : 장죄에 연좌된 일.

○領中樞院事趙末生卒。 末生謹初, 楊州人, 書雲正之子。 自幼聰慧力學, 歲辛巳, 擢第壯元, 授料物庫副使, 歷監察、正言、獻納, 轉吏曹正郞。 丁亥, 中重試第二人, 授典農副正, 俄拜司憲掌令、直藝文館。 辛卯, 判繕工監事, 尋拜承政院同副代言, 累陞知申事。 戊戌, 拜吏曹參判, 超階加靖, 末生辭曰: "臣久處出納之地, 暫無啓沃, 超授資級, 聖恩過重, 心實有愧。" 太宗曰: "欲置卿省宰, 姑且徐之, 勿辭。" 踰月, 陞刑曹判書, 尋轉兵曹判書, 掌軍政侍從, 太宗寵待益隆。 丙午, 坐贓貶外, (戌)〔戊〕 申, 召還。 壬子, 同知中樞院事, 明年春, 爲咸吉道都觀察使, 冬, 以疾免。 甲寅九月, 拜中樞院使, 乙卯, 判中樞院事, 遷藝文館大提學。 戊午, 復判中樞院事, 己未, 賜几杖, 壬戌, 陞崇祿, 甲子, 加輔國, 丙寅, 領中樞院事, 至是卒, 年七十八。 訃聞, 輟朝二日, 弔賻致祭, 官庀葬事。 諡文剛, 學勤好問文, 追補前過剛。 末生氣度恢洪, 處事寬厚, 太宗重器之。 然玷汚其身, 終不任國事。 子


  • 【태백산사고본】 37책 11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5책 17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