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전 등이 대간을 처벌한 것을 거두어 달라고 아뢰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 이계전(李季甸), 응교(應敎) 최항(崔恒)·어효첨(魚孝瞻), 교리(校理) 박팽년(朴彭年),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부수찬(副修撰) 이개(李塏)·이예(李芮), 박사(博士) 서거정(徐居正)·한혁(韓弈)·유성원(柳誠源), 저작(著作) 이극감(李克堪)이 아뢰기를,
"대간(臺諫)은 〈임금의〉 이목(耳目)과 같은 관직인데, 지금 국사를 말한 것이 옳지 아니하였다고 이를 처벌한다면, 신하로서 임금에게 말을 올릴 수 있는 길이 막혀질 것이오니, 그 죄를 용서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수양 대군이 임금의 교지(敎旨)를 전하기를,
"그대들의 말은 옳다. 그러나 그대들이 내 마음을 알지 못한다."
하고, 이에 의금부에 유시(諭示)한 언문(諺文)의 글을 보이면서,
"범죄가 이와 같은데 죄주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계전 등이 아뢰기를,
"대간의 죄는 비록 이와 같지마는 진실로 사사(私事)가 아니오니, 어찌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용납되겠습니까. 다만 나라의 일을 의논한 것뿐이온데 지금 만약 이를 죄준다면, 비록 말할 만한 일이 있더라도 누가 감히 말하겠습니까. 말할 수 있는 길이 통하고 막히는 것은 국가의 안위(安危)에 관계되오니, 죄가 비록 이와 같더라도 마땅히 너그러이 용납해 주어야 될 것입니다."
하니, 수양 대군이 노하여 말하기를,
"간사하여 임금을 속이는 사람을 죄주지 않음이 옳겠는가."
하였다. 이계전 등이 대답하기를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니, 수양 대군이 말하기를,
"이 일은 관계된 바가 가볍지 않으니, 내가 마땅히 써서 이를 계(啓)하겠다."
하면서, 즉시 붓을 잡아 쓰기를,
"대간(臺諫)이 간사하여 임금에게 무례(無禮)하였으니, 이를 죄주는 것이 진실로 마땅하지마는, 이를 죄준다면 신하로서 임금에게 말을 올릴 수 있는 길이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니, 죄는 비록 이와 같지마는 마땅히 너그러이 용납해야 되겠습니다."
하고는, 계전 등에게 보이기를,
"그대들의 말도 이와 같은가."
하니,
"그렇습니다."
하였다. 수양 대군이 또 도승지 황수신(黃守身)에게 이르기를,
"이 일은 매우 큰일이니 쉽사리 계(啓)할 수가 없겠다. 대간(臺諫)들이 임금을 속인 죄를 용서할 수가 있겠는가. 대간이 본디 이 죄가 없었는가. 그 이유를 자세히 물어 보라."
하니, 계전이 대답하기를 또한 앞에 말한 것과 같이 하였다. 수신(守身)이 말하기를,
"계전 등의 뜻은 다만 언로(言路)가 막힐까 두려워하였을 뿐입니다."
하니, 수양 대군이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 효첨(孝瞻)이 계전에게 이르기를,
"형세가 반드시 의금부에 내려 가둘 것이니, 속히 입자(笠子)를 가져오는 것이 옳겠다."
하니, 계전이 말하기를,
"만약 옥에 내려 가둔다면 입자(笠子)를 벗고 갈 것인데, 어찌 입자가 필요하겠는가."
하였다. 임금이 조금 후에 계전에게 이르기를,
"내가 그대들의 의사를 알았으니, 국문(鞫問)을 마치고 난 뒤에 이를 상량(商量)하겠다."
하였다. 이보다 먼저 임금이 강진(康晉)을 힐책(詰責)함이 매우 엄하니, 계전·효첨과 직제학(直提學) 김문(金汶)이 마침 이를 보고, 효첨이 말하기를,
"오늘날에 강진의 신세(身勢)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하였다. 계전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이 언사(言事)로써 옥에 갇혔으니 언로(言路)가 통하고 막힘이 이번 일거(一擧)에 있으니 작은 일이 아니다. 마땅히 동료(同僚)와 더불어 의논하여 아뢰야 되겠다."
하였다. 이튿날 김문이 계전의 집에 가서 말하기를,
"임금의 노여움이 한창 대단하시니 위엄을 무릅쓰고 아뢸 수는 없다."
하니, 계전이 말하기를,
"이 일을 아뢰는데 세 가지 절차가 있으니, 신 등의 말을 듣고서 대간(臺諫)을 석방하는 것이 상(上)이요, 말을 듣지 않고 견책(譴責)하는 것이 그 다음이요, 대간에서 편당하였다고 해서 모두 의금부에 내려 가두는 것이 하(下)이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신 등의 피하지 못할 일이니 무엇을 꺼려서 계(啓)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김문은 마침내 참여하지 아니하였는데, 또한 두서너 사람이 김문의 행동에 따라 한 사람이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11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70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상-불교(佛敎)
○集賢殿直提學李季甸、應敎崔恒ㆍ魚孝瞻、校理朴彭年、修撰成三問、副修撰李塏ㆍ李芮、博士徐居正ㆍ韓弈ㆍ柳誠源、著作李克堪啓: "臺諫, 耳目之官, 今以言事不中而罪之, 則言路塞矣, 請赦其罪。" 首陽大君傳上旨曰: "爾等之言是矣。 然爾等不知予心。" 乃以諭義禁府諺文書示之曰: "所犯如此, 其不罪乎?" 季甸等啓曰: "臺諫之罪, 雖云如此, 固非私事, 豈容一毫他念? 第論國事耳。 今若罪之, 雖有可言之事, 誰敢言之? 言路通塞, 係國家之(女)〔安〕 危, 罪雖如此, 宜優容之。" 首陽大君怒曰: "姦詐欺君之人, 不罪可乎?" 季甸等對如前, 首陽曰: "此事所關非輕, 吾當書以啓之。" 卽援筆書曰: "臺諫姦曲, 無禮於君, 罪之固當。 然罪之則言路不通, 罪雖如此, 宜優容之。" 示季甸等曰: "爾等之言, 如是乎?" 曰: "然。" 首陽又謂都承旨黃守身曰: "此事甚大, 不可容易以啓。 其臺諫欺君之罪, 可恕乎? 臺諫本無此罪乎?" 細問其故, 季甸對又如前。 守身曰: "季甸等之意, 只恐言路之塞耳。" 首陽大君入內。 孝瞻謂季甸曰: "勢必下義禁府, 速取笠子可也。" 季甸曰: "若下獄, 則脫笠而去, 何須笠子?" 上尋謂季甸曰: "予知爾等之意矣, 待畢鞫商量之。" 先是, 上詰責康晋甚嚴, 季甸、孝瞻及直提學金汶適見之。 孝瞻曰: "今日不爲康晋之身幸矣。" 季甸曰: "臺諫以言事繫獄, 言路通塞, 在此一擧, 非細故也。 當與同僚議啓。" 翼日, 汶詣季甸家曰: "上怒方盛, 不可冒威以啓。" 季甸曰: "啓此事有三節, 聽臣等之言, 釋臺諫, 上也; 不聽而譴責之, 次也; 以黨於臺諫, 幷下義禁府, 下也。 然亦臣等所不避也, 何憚而不啓乎!" 汶終不與焉, 亦有數人從汶者。
- 【태백산사고본】 36책 11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70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