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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11권, 세종 28년 2월 3일 신축 4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각도에 숨겨진 염분을 찾아내 연속적으로 고찰하는 법식을 만들도록 아뢰다

의염색(義鹽色)에서 아뢰기를,

"삼가 상고해 본건대, 우공(禹貢)에는 청주(靑州)로써 공염(貢鹽)을 삼고, 주관(周官)에는 염관(鹽官)을 설치했는데, 비록 관직(官職)은 있지마는 처음부터 민간(民間)에 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관중(管仲)에 이르러 물고기와 소금으로 나라를 부강(富强)하게 하였고, 그 뒤 진(秦)나라의 소금 이익[鹽利]은 옛날보다 배(倍)가 되었으며, 한(漢)나라로부터 내려오면서 혹은 바다의 조세(租稅)를 받기도 하고, 혹은 물고기를 세[租]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 송(宋)나라경력 연간(慶曆年間)에는 조정의 의논이 차[茶]와 소금[鹽]의 전매(專賣)하는 법을 늦추고자 하니, 범중엄(范仲淹)이 말하기를, ‘국가의 용도(用度)는 상시 넉넉지 못함을 걱정하고 있는데, 만약 용도를 줄일 수가 있다면 차와 소금의 〈전매하는〉 법을 없애도 되겠지마는, 만약 능히 감손(減損)할 수가 없다면 반드시 농민에게 취(取)할 것이니, 어찌 놀고 지내는 사람에게 취하는 것과 같겠는가.’ 하여, 조정의 의논이 마침내 중지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도 또한 염법(鹽法)을 시행하여 율령(律令)에 기록되어 있으며, 강해(江海)의 이익으로 인하여 국가의 용도를 넉넉하게 하고, 백성의 생계(生計)를 이익되게 하는 것은 예전부터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군려(軍旅)의 수용(需用)과 빈객(賓客)의 접대와 구황(救荒)의 준비 등, 모든 국가의 대계(大計)는 실로 이것에 관계되니, 소금의 이익되는 것이 넓게 되었습니다. 진(秦)·한(漢) 이후에는 그 법이 반드시 사제(私製)의 소금을 금지·감독하고 관청에서는 홀로 그 이익을 취하여, 상세(商稅)가 정액(定額)이 있는데도 증가하여 이를 징수하매, 원망이 일어나게 되니, 소금의 해(害)되는 것이 또한 심한 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이를 비평하는 사람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현재 있는 정액 그대로 증가한 것이 없게 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이익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을 선택하여 관리로 삼게 할 뿐인데, 다른 무엇이 의논에 용납되겠습니까.

이 일로 미루어 본다면, 염법의 이롭고 해 됨은 다만 한때 설시(設施)의 득실(得失)에 있은 뿐인데, 어찌 그 해 되는 것은 생각하고서 그 이익되는 것까지 아울러 버리겠습니까. 지금의 염법은 이보다 다르니, 금지·감독하여 백성의 사제(私製)를 취하고자 한 것도 아니며, 백성의 차지한 곳을 빼앗으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 일정한 세[常稅]를 증가시키려는 것도 아니며, 다만 소금 생산에 알맞은 공지(空地)에 관분(官盆)을 설치하고, 값을 후하게 주어 곡식을 바꾸어서 의창을 보충하고, 혹은 이를 주어서 진휼(賑恤)하려는 것이니, 금지·감독하여 이익만 취하는 유(類)와는 같지 않습니다. 소금의 이익이 백성에게 있는 것은 진실로 그전과 같습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재물이 넉넉하고 의창이 꽉 차게 된다면 어찌 소금의 이익을 기다리겠습니까. 다만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서로 잇달아 해마다 실농(失農)하게 되어 나라에는 1년 동안의 저축도 없으니, 흉년을 구제하는 계책을 장차 어찌 시행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전년(前年) 겨울 편부(便否)를 시험할 때에 다만 한 고을만 살펴보니, 그 숨겨서 빠진 염분(鹽盆)의 수가 많았는데, 대개 모두가 관리들이 법을 무롱(舞弄)한 데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 도(道)의 숨겨서 빠진 수는 이를 미루어 보면 알 것이니, 밝게 바로잡아[明正] 찾아낸다면 그 수가 어찌 백이나 천뿐이겠습니까. 법에 의거하여 공(貢)을 징수한다면 의창을 보첨(補添)하는 방법이 어찌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만약 수공(收貢)의 수량을 더 나타내어 의창을 보첨하려고 한다면 관염구(官鹽區)를 설치해야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를 참작하여 시행함이 옳을 것입니다. 지금 별감(別監)을 보내어 비록 한두 차례 왕복(往復)하면서 찾아내게 하지마는, 그러나 1년 동안을 고찰(考察)할 수가 없게 되니, 그런 까닭으로 속이고 숨기는 폐단은 거의 금알(禁遏)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감사는 한 지방을 통찰(統察)하여 백성의 생명이 매였으므로, 백성을 이롭게 하는 직책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색관원(色官員)과 포치(布置)를 함께 의논한 뒤에 연속적으로

고찰하여, 이를 일정한 항식(恒式)으로 삼게 하소서. 만약 전과같이 고찰을 해이(解弛)하게 하여 다른 조목이 나타나게 된 것은 다만 그 관리만 처벌할 것이 아니라, 감사까지 아울러 책망해야 할 것입니다. 어수량(魚水梁)도 또한 위의 항목과 같이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654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수산업-염업(鹽業) / 농업-농작(農作) / 재정-공물(貢物) / 재정-창고(倉庫)

○義鹽色啓: "謹按《禹貢》, 以靑州爲貢鹽; 《周官》設鹽官, 雖有官而未始不在民也。 至管仲以魚鹽富國, 厥後之鹽利倍於古。 自而下, 或海租或魚池。 且 慶曆年間, 朝議欲弛茶鹽之法, 范仲淹曰: ‘國家用度, 常患不敷。 如減用度, 則除茶鹽之法可矣, 如不能減損, 則必取於農, 孰若取於遊手乎?’ 朝議遂寢。 今中國亦行鹽法, 著在律令。 因江海之利, 以裕國用, 以利民生, 自古而然, 其軍旅之需、賓客之供、救荒之備凡國家大計, 實關於此, 鹽之爲利廣矣。 以來, 其法必禁搉私鹽, 而官獨取其利, 商稅有定額, 而增益收之, 怨咨興焉, 鹽之爲害亦甚矣。 是故論之者有云: ‘因其見存之額而無所增加, 擇夫愛民輕利之人而爲之官而已, 他何容議?’ 以此觀之, 鹽法之利害, 只在一時設施之得失耳, 豈有慮其害而倂棄其利也? 今之鹽法異於是, 非欲禁搉而取民私也, 非奪民所占之處也, 亦非增益其常稅也, 只於宜鹽空地, 設置官盆, 優價易穀, 以補義倉, 或施之以賑恤, 非如禁搉取利之類, 鹽利之在民, 固猶舊也。 然國家殷富, 義倉盈溢, 則奚待鹽利? 第因水旱相仍, 年年失農, 國無一年之蓄, 救荒之策, 將何以施之? 肆於前冬試驗便否之時, 只審一邑, 其隱漏鹽盆數多, 率皆官吏弄法之致然也。 諸道隱漏之數, 推此可知, 明正推刷, 其數豈啻百千? 依法收貢, 義倉補添之術, 孰有加於此哉? 若加現收貢之數, 準補義倉, 則官鹽區設置與否, 斟酌施行可也。 今遣別監雖一二次, 往復推刷, 然不得終歲考察, 故欺隱之弊, 庶難禁遏。 監司一方統察, 生民之命係焉, 利民之責, 不可不深慮。 與色官負〔色官員〕 同議布置, 而後連續考察, 以爲恒式。 若似前陵夷考察, 因他條現露者, 非但罪其官吏, 竝責監司。 魚水梁, 亦如上項。" 從之。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654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수산업-염업(鹽業) / 농업-농작(農作) / 재정-공물(貢物) / 재정-창고(倉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