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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11권, 세종 28년 1월 22일 경인 5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공부를 정하는 폐단에 대해 하연 등이 의논하니 몇 고을을 시험하여 아뢰게 하다

이때 의견을 올리[獻議]는 사람들이, 각 고을의 공안(貢案)에 부속된 물건을 그때의 값을 계산하여, 백성들이 경작하는 토지의 많고 적은 차등(差等)으로써 고루 나누어 장부에 기록해 두고 과렴(科斂)에 빙고(憑考)하고자 하니, 영의정 황희는 의논하기를,

"공부(貢賦)를 고루 정[均定]하는 것은, 이것이 미비된 규정이 아니고 곧 《육전(六典)》에 기재된 바이니, 수령(守令)이 직책을 다한다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으니 새로 번쇄(煩碎)한 법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또 다시 성헌(成憲)을 고치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하고, 우의정 하연(河演)·좌참찬 이숙치(李叔畤)·우참찬 정인지(鄭麟趾) 등은 의논하기를,

"고전(古傳)에 ‘취렴(聚斂)하는 신하가 있는 것보다는 차라니 도둑질하는 신하가 있는 것이 낫겠다. ’고 하였으니, 취렴하는 신하가 민생(民生)에 해(害)가 있음이 심합니다. 각사(各司)에서 공부를 바치는 수량은 본디 남고 줆이 없는데도, 수령이 임시(臨時)에 임의(任意)로 분정(分定)하는 것은, 이것은 반드시 백성들로 하여금 원수(元數)에 어두어서 그 내용을 알지 못하게 하여, 고소(告訴)할 길이 없게 하는 술책인 것입니다. 또 상고(商賈)와 서로 결탁하여 공물(貢物)을 대신 바치게 하고는, 과중하게 징수하여 이익을 나누기도 하고, 혹은 공공연히 방납(防納)하기도 하고, 혹은 비록 그것이 옳지 않은 점을 알면서도 관가(官家)를 넉넉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게 되니, 백성들의 근심하고 탄식함이 이 때문입니다. 수령을 적임자를 얻게 된다면 진실로 이런 폐단이 없을 것이지마는, 그러나 3백이 넘는 군현(郡縣)에 다 적임자를 얻을 수야 있겠습니까. 금방(禁防)을 명백하게 세워 수령들로 하여금 본디 정해진 공물을 수량에서 백성의 경작하는 바를 계산하여 등급을 매겨서 나누어 주게 하되, 호(戶)마다 증거될 만한 문서[文憑]를 주고 안적(案籍)을 만들게 하고, 감사(監司)는 또 편부(便否)를 상고하며, 또 바치는 기일(期日)을 정하여 월령(月令)으로 삼고 효유(曉諭)하여 예비(預備)하게 하며, 명백히 공개해 갖추[開具]어 인(印)을 찍어서 주되, 기일에 이르러 결코 약속을 어기지 말게 하고 안적에 의거하여 징수하고 마음대로 더 징수하지 못하게 하여, 백성의 고통을 구휼(救恤)해 주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장차 도(道)마다 각기 몇 고을씩 시험하여 전제 상정소(田制詳定所)로 하여금 마감(磨勘)하여 아뢰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책 652면
  • 【분류】
    재정-공물(貢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상업(商業)

○時獻議者欲將各官貢案付物件, 計其時直, 以民所耕多少, 差等均分置簿, 以憑科斂。 領議政黃喜議: "貢賦均定, 非是闕典, 乃《六典》所載, 守令盡職, 則可得自爲, 不必新立煩碎之法。 且更改成憲, 未便。" 右議政河演、左參贊李叔畤、右參贊鄭麟趾等議: "《傳》曰: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 聚斂之臣, 有害於民生甚矣。 各司納貢之數, 本無盈縮也, 而守令臨時任意分定者, 是必使民昧於元數, 莫知端倪, 而告訴無由之術也。 且交結商賈, 代納貢物, 重斂分利, 或公然防納, 或雖知其不可而欲富官家者有之, 民之愁歎, 職此之由。 守令得人, 則固無是弊矣, 然三百餘郡縣, 盡得人乎? 莫若明立禁防, 俾守令於元定貢物之數, 計民所耕, 差科分授, 戶給文憑, 勒成案籍。 監司又考便否, 又以所納之期, 定爲月令, 曉諭預備, 明白開具, 署印以給, 至期愼勿失信, 位案而收, 毋得擅自加斂, 以恤民隱。" 上曰: "將於每道各數郡試驗, 令田制詳定所磨勘以啓。"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책 652면
  • 【분류】
    재정-공물(貢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상업(商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