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111권, 세종 28년 1월 22일 경인 2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판돈녕부사 이교의 졸기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이교(李皎)가 졸(卒)하였다. 이교는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의 아들이었다. 홍무(洪武) 무진년에 음직(蔭職)으로써 관직에 임명되어, 네 번 전직(轉職)하여 호군(護軍)이 되고, 건국 초에 원윤(元尹)에 임명되었다. 임진년에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에 임명되고, 임자년에 충청도 도절제사(都節制使)에, 을묘년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에, 정사년에 경상도 도절제사가 되고, 계해년에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가 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조회를 정지하고, 부의(賻儀)를 내려 주고 치전(致奠)하였다. 양간(良簡)이란 시호(諡號)를 내리니, 온량(溫良)하여 즐거움을 좋아함을 양(良)이라 하고, 평이(平易)하여 헐뜯지 않음을 간(簡)이라 한다. 사람 됨이 구변(口辯)이 좋고 아첨을 잘하며, 재산은 부요(富饒)하였다. 다른 재능은 없었으며 젊었을 때부터 주식(酒食)과 성색(聲色)으로 일을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책 652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종친(宗親)
○判敦寧府事李皎卒。 皎, 安義大君[義安大君] 和之子。 洪武戊辰, 以蔭補官, 四轉爲護軍, 國初拜元尹。 歲壬辰, 除左軍同知摠制, 壬子, 授忠淸道都節制使, 乙卯, 知中樞院事, 丁巳, 爲慶尙道都節制使, 癸亥, 判敦寧府事, 至是卒, 停朝, 致賻致奠。 諡良簡, 溫良好樂良, 平易不訾簡。 爲人便侫, 資産富饒, 無他才能, 自少以酒食聲色爲事。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책 652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