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성 김반의 파면에 대한 성균관 생원들의 상서문
성균 생원(成均生員) 황계하(黃季夏) 등이 상서(上書)하기를,
"국가의 다스림은 인재(人才)의 성(盛)한 것에 매어 있고, 인재의 성한 것은 사도(師道)가 서는 것에 관계되오니, 자고(自古)로 제왕(帝王)이 학교를 건설하고 스승을 세워 인재를 양육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사사로이 보옵건대, 대사성(大司成) 김반(金泮)은 품성(稟性)이 순진(醇眞)하고 학술(學術)이 넓고 발라서, 옛날 태종(太宗) 때에 선정신(先正臣) 권근(權近)이 글을 올려 그 학행(學行)의 높음을 천거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국가에서 그 어진 것을 높이고 믿어, 좋은 벼슬[華秩]을 거쳐 시험하여 기유년에 비로소 사예(司藝)를 제수하고, 사성(司成)·대사성(大司成)을 거쳐 겸사성(兼司成)에 이르렀사온데, 그 사이에 직책에 게을리 하지 않고 정연(整然)하게 가르쳐서, 성리(性理)를 강론하고 나라의 근본을 배양한 것이 이제 이미 17년이 되었사오니, 그 사람을 길러 낸 공(功)이 진실로 작지 않습니다. 근년에 과거에 오른 선비와 문학을 한다는 자는, 태반(太半)이 모두 반(泮)이 가르친 사람입니다. 국가에서 그 공을 포창하여 첨지중추(僉知中樞)를 주어 그 직위를 높이고, 겸사성(兼司成)을 잉임(仍任)하여 가르침을 맡게 하였는데, 뜻밖에 두어 해도 못되어 첨지(僉知)를 떨어뜨려 강등시켜 대사성(大司成)을 삼았으니, 위질(位秩)의 높고 낮은 것이 비록 교훈(敎訓)에는 관계가 없사오나, 밝은 시대의 사유(師儒)를 높이고 중하게 여기는 뜻에 결점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이 사사로이 한(恨)하는 것이 있습니다. 옛적에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박사(博士) 환영(桓榮)으로 태자 소부(太子小傅)를 삼고, 겸하여 치거(輜車)·승마(乘馬)를 주었으니, 학문에 힘쓴 것을 포상한 것입니다. 엎드려 성재(聖裁)를 바라옵니다. 신 등이 또 한(恨)되는 것이 있습니다. 전 대사성(大司成) 김위민(金爲民)은 기품(氣稟)이 순박(淳朴)하고 학문이 독실(篤實)하여, 오직 봉공(奉公)만 알고 직사(職事)에 부지런해서, 계축년에 사성(司成)를 제수하고, 갑자년에 승진하여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유림(儒林)의 의표(儀表)가 되었사온데, 지난번에 전조(銓曹)에서 그 직(職)을 파면시켰으니 신 등이 놀랍고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 직책을 태만히 한다 하여 파면하였다면, 두 번이나 성균(成均)을 지내어 부지런히 교훈하였고, 만일 쇠하고 늙었다 하여 파면하였다면, 총명(聰明)이 감(減)함이 없고, 또 치사(致仕)할 나이도 아닙니다. 하과(下科)를 맞아서 파면되었다면 그 파면시킨 것이 마땅히 7월 도목(都目)에 있어야 할 터인데, 이때에 파면하지 않은 것을 보면 고공(考功)이 상(上)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 등이 연유를 알지 못하여 한갓 애석하게 여길 뿐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聖上)께서는 옛 공적을 거두어 쓰시어, 남의 착한 것을 폐하지 마시고 다시 예전 직책에 나가게 하시오면, 신 등의 기쁨만이 아니오라 실로 사문(斯文)의 대행(大幸)이옵니다. 옛적에 공규(孔戣)가 치사(致仕)하였는데, 한유(韓愈)가 상서(上書)하기를, ‘시청(視聽)과 심려(心慮)가 아직 어둡고 착란(錯亂)하지 않거든 가는 것을 들어주지 마시어, 인군(人君)이 어진이를 탐(貪)하고 늙은이를 공경하는 도(道)를 밝히소서.’ 하였습니다. 엎드려 성재(聖裁)를 바라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위민(爲民)은 본래 경학(經學)이 없고, 게다가 노혼(老昏)하여, 여러 생도들이 하나도 업(業)을 받는 자가 없으니 다만 안석[几]에 기대어 졸기만 할 뿐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11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책 642면
- 【분류】인물(人物)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己未/成均生員黃季夏等上書曰:
國家之治, 係乎人才之盛; 人才之盛, 關於師道之立。 自古帝王所以建學立師, 養育人才者, 以此也。 竊見大司成金泮稟性眞醇, 學術博雅。 昔在太宗之時, 先正臣權近上書薦其學行之高, 自是國家尊信其賢, 歷試華秩。 歲在己酉, 始除司藝, 歷司成大司成, 至于兼司成, 其間不懈于位, 循循敎誨, 講論性理, 培養邦本者, 今已十七年于〔玆〕 , 其作人之功, 誠不細矣。 近年登科之士, 號爲文學者, 太半皆泮所敎也。 國家褒崇其功, 授僉知中樞, 以尊其位, 仍兼司成, 以掌其敎, 不意曾未數歲, 落僉知降爲大司成。 位秩之高卑, 縱無關於敎訓, 無乃有虧於明時崇重師儒之意乎? 臣等竊自有憾焉。 昔後漢 光武以博士桓榮, 擢爲太子少傅, 兼賜輜車乘馬者, 褒其稽古之力也。 伏惟聖裁。 臣等又有憾焉。 前大司成金爲民, 氣稟淳朴, 學問篤實, 唯知奉公, 勤於職事。 歲在癸丑, 授以司成, 甲子, 升爲大司成, 表儀儒林。 曩者銓曹罷去其職, 臣等驚惶失措, 以爲若以曠職而罷之, 則再經成均, 孜孜訓誨; 以爲衰耗而罷之, 則聰明無減, 且非致仕之年矣; 以爲下科而罷之, 則其罷之也, 當在七月都目矣。 觀其不罷於此時, 則知其考功之居上矣。 臣等不知所由, 徒自痛惜。 伏望聖上收用舊績, 不廢人善, 復就舊職, 不惟臣等之懽忻, 實斯文之大幸也。 昔孔戣致仕, 韓愈上書曰: "視聽心慮, 苟未昏錯, 則未聽其去, 以明人君貪賢敬老之道。" 伏惟聖裁。
不允。 爲民本無經學, 加以老耗, 諸生絶無受業者, 但憑几就睡而已。
- 【태백산사고본】 35책 11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책 6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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