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참판 권맹손이 의창염 설치의 당위성에 대해 아뢰다
집현전 직제학 김문(金汶)·이계전(李季甸)을 불러 말하기를,
"어제 올린 글은 내가 그대로 좇았다. 또 본궁 장리는 이름을 내수소 의창(內需所義倉)이라 고치어 다시 2,3주군(州郡)에 설치하여 시험하고, 호조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면 어떻겠는가."
하니, 계전이 말하기를,
"본궁 장리는 지난해의 구언(求言) 때에 집현전에서 소(疏)를 올려 파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지금 만일 다시 세우면 비록 의창(義倉)이라고 이름하여도 그 실상은 장리입니다. 대체로 장리는 반드시 재상(宰相)·세가(世家)와 토호(土豪)라야 다 거둘 수 있고 기르기 쉬운 것이어늘, 하물며, 본궁(本宮)이겠습니까. 본궁 장리는 수납(收納)하기는 쉽지만 아름다운 일은 아닙니다. 그 사이의 폐단을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본궁 장리를 세우기를 원함은 과연 참으로 백성의 소원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임금이 쓰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부고(府庫)의 재물이 모두 그것입니다. 하필 내수소(內需所)의 장리를 둔 뒤라야 만족을 취하겠습니까. 신은 원컨대, 내수소 장리는 그대로 사창(社倉)에 충당하고, 본궁의 노자(奴子)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소서."
하고, 문(汶)은 말하기를,
"원컨대, 문공(文公)이 사창(社倉)을 두자는 고사(古事)에 의하여 사류(士類)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억지로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고자 할 뿐이다."
하고, 또 승정원(承政院)에 이르기를,
"세자(世子)가 말하기를, ‘황해도 백성이 북을 쳐서 다시 세우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 하기에 정부에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는데, 지금 의논이 같지 않으니 장차 행하지 못할 것인가. 지난번에 정인지(鄭麟趾)가 납포수쇄(納布受殺)의 계책을 건백(建白)하였는데, 경 등이 그 폐단은 말하지 않고 지금 다시 내수 의창(內需義倉)을 세우려 하매, 말하기를, ‘만일 여러 고을에 내수 의창을 특별히 설치하면 수령은 염수(斂手)113) 할 따름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본궁 노자(本宮奴子)로 하여금 주장하면 이식을 받기를 요구하여 능히 갚을 수 있는 사람을 가려서 줄 터이니, 가난한 백성이 무슨 힘을 입느냐.’ 하였지만, 대개 큰 법을 세우려면 어찌 그 한가지 폐단을 생각할 수 있는가."
하매, 좌승지 황수신(黃守身)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이 이 법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본궁 장리가 원래 있던 곳에서만 다시 세우고 차례로 두고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고, 좌부승지 박이창(朴以昌)은 아뢰기를,
"법이 서면 폐단이 생기는 것인데, 만일 이 일을 세우면 어찌 폐단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갑자기 여러 고을에 두루 둘 수는 없고 마땅히 자래(自來)로 장리가 있던 곳과 주군(州郡)에 두어서 시험하자는 것이다."
하였는데, 뒤에 일이 정지되고 행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109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책 637면
- 【분류】재정-창고(倉庫) / 금융-식리(殖利) / 정론-정론(政論)
- [註 113]염수(斂手) : 두 손을 마주 잡고 공손히 서 있음.
○丙子/召集賢殿直提學金汶、李季甸曰: "昨所上書, 予已從之。 且本宮長利, 改名爲內需所義倉, 復置於二三州郡試之, 令戶曹主之, 何如?" 季甸曰: "本宮長利, 去歲求言之時, 集賢殿上疏請罷, 今若復立, 雖名義倉, 其實長利也。 凡長利, 必宰相世家與土豪, 乃能畢收而易息也, 況本宮乎? 本宮長利收納之易, 非美事也。 其間之弊, 何可勝言? 民之所以願立本宮長利者, 未知果眞百姓之所願乎? 人君欲有所用, 府庫之財皆是也, 何必內需所長利而後取足哉? 臣願以內需所長利, 仍充社倉, 令本宮奴主之。" 汶曰: "願依文公社倉古事, 擇士類主之。" 上曰: "予非欲强行, 欲試之耳。" 又謂承政院曰: "世子以爲: ‘黃海道民有擊鼓願復立者。’ 故議諸政府, 皆曰: ‘可。’ 今議論不同, 將不可行乎? 向者鄭麟趾建白納布受穀之策, 則卿等不言其弊, 今欲復立內需義倉 則乃曰: ‘如諸郡特設內需義倉, 守令斂手而已。’ 又曰: ‘使本宮奴主之, 則要其取息, 擇能償之人而給之, 貧民何賴?’ 夫立大法, 豈肯慮其一弊乎?" 左承旨黃守身等曰: "臣等非以此法爲不可行也, 但欲於本宮長利元在處, 復立之, 以次而徧行之也。" 左副承旨朴以昌曰: "法立弊生, 若立此事, 豈可謂無弊?" 上曰: "不可遽以徧置諸郡, 當於自來有長利處及大州郡, 置之以試耳。" 後事寢不行。
- 【태백산사고본】 35책 109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책 637면
- 【분류】재정-창고(倉庫) / 금융-식리(殖利)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