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종실록 105권, 세종 26년 윤7월 25일 임인 1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옛 성현들의 예를 들어 백성들이 부지런히 농사에 힘쓸 것을 하교하다

하교(下敎)하기를,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 것인데, 농사(農事)하는 것은 옷과 먹는 것의 근원으로서 왕자(王者)의 정치에서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오직 그것은 백성을 살리는 천명에 관계되는 까닭에, 천하의 지극한 노고(勞苦)를 복무(服務)하게 하는 것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성심(誠心)으로 지도하여 거느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백성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힘써서 농사에 종사하여 그 생생지락(生生之樂)을 완수(完遂)하게 할 수 있겠는가. 저 옛날 신농씨(神農氏) 같은 이는 처음으로 쟁기와 보습[耒]을 만들어서 천하를 이롭게 하였고, 소호씨(少昊氏)구호(九扈)126) 에게 명령하여 농사를 맡게 하였다. 이것은 고대(古代)의 성군(聖君)이 하늘의 뜻을 이어 지극히 바른 도(道)를 세워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천명을 수행한 것이다. 요(堯)임금희씨(羲氏)화씨(和氏)에게 명령하여 공경하여 백성에게 농사짓는 때를 주게 하였으며, 순(舜)임금은 십이목(十二牧)에게 의논하기를, ‘먹는 것은 오직 농사의 때를 지키는 데에 있다. ’고 하였다. 하후씨(夏后氏)구혁(溝洫)127) 에 진력(盡力)하였고, 상(商)나라의 조상은 세민(細民)의 의지하는 바를 알았었다. 주(周)나라에 이르러서는 농사로써 나라를 개척하였으니 《시경(詩經)》빈풍편(豳風篇)의 시에서나, 《서경(書經)》무일편(無逸篇)의 저작에 있어서 농사의 힘들고 어려움을 정성껏 마음에 지니지 않은 것이 없어서 깊이 다스리고 오래도록 편안한 왕업(王業)을 이루었다. 훌륭하게도 한(漢)나라문제(文帝)는 자주 조서(詔書)를 내려서 해마다 나무 심기를 권하고 조세를 감하며 농경지를 주니, 나라 안이 은성하고 부유하였으며, 당(唐)나라고조(高祖)는 목재(牧宰)에게 조서를 내려 힘써서 간이하고 고요한 행정을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농시(農時)를 잃지 않게 하였고, 태종(太宗)은 매양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영위(營爲)하는 데에는 농사때를 잃지 않는 것이 근본이 된다.’ 하였으니, 그가 쌀 한 말에 3전(錢)하는 실적(實績)을 이루게 한 것이 어찌 그 인유(因由)한 바가 없었겠는가. 송(宋)나라의 제도에는 권농사(勸農司)를 두고, 연말에 그 성적에 따라 상벌(賞罰)을 시행하였으며, 또 주현(州縣)으로 하여금 매년 술을 준비해 가지고 들에 나가서 부로(父老)들을 맞이하여 보고 농사에 힘을 다하라는 뜻을 타이르게 한 것은, 아마 또한 여기에 보는 바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크게 생각하건대, 우리 태조(太祖)께서 천운(天運)에 순응하여 나라의 터전을 열으시매, 제일 먼저 전제(田制)를 바로잡아 백성을 도탄에서 건져 내어 농사의 이(利)를 누리게 하였으니, 그 농사를 권장하신 조목이 법령에 갖추어 있다. 태종(太宗)이 왕업을 계승하시어 더욱 씨 뿌리고 수확하는 일을 더욱 힘쓰셨다. 특히 어리석은 백성들이 심고 가꾸는 방법에 어두운 것을 염려하셔서 유신(儒臣)에게 명령하여 우리 나라의 말로 농서(農書)를 번역하게 하여 중앙과 지방에 널리 반포하시고 후세에 전하였다. 과덕(寡德)한 내가 왕업을 계승하여서는 밤낮으로 겁내고 두려워하노니, 우러러 전대(前代) 때에 이러하였음을 생각하고 오직 조종(祖宗)을 법으로 한다. 돌아보건대, 농무(農務)는 마땅히 백성에게 가까운 관리에게 책임을 맡겨야 하는 것이므로, 그들을 신중히 선택하여 임명하고 친히 격려하고 효유하였다. 또 차례로 주현(州縣)에 물어서 그 땅에서 이미 시험한 결과를 모아서 《농사직설(農事直說)》을 만들어 농민들로 하여금 훤히 쉽게 알도록 하기에 힘썼으며, 혹이나 농사에 이(利)로울 만한 것은 마음을 다하여 연구하여 거론(擧論)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 힘을 다하고 땅에는 버려 둔 이(利)가 없게 되기를 기대하였는데, 백성들에게는 저축할 여유가 없어서 한번 흉년이 들면 문득 굶주린 얼굴들을 하니, 이것이 어찌 아전들이 나의 가르침을 받들어 힘써 종사하지 않음이 적기 때문이겠는가. 내가 매우 염려하는 바이다. 일찍이 옛날의 어진 수령들을 살펴보건대, 한편에서 이(利)로운 일을 일으켰을 때에 백성이 실지의 혜택을 받은 것은, 부지런히 노력(勞力)하여 이루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수(龔遂)발해(渤海)의 수령이 되어서 농사짓고 누에 치는 일을 힘써 권장하였는데, 백성들이 도검(刀劍)을 차고 다니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팔아서 소와 송아지를 사게 하였으며, 봄에는 밭에 나가 일하기를 권하고 겨울에는 곡식들을 거두어 모으게 하니, 백성들이 다 부유하고 충실하게 되었다. 소신신(召信臣)남양(南陽)의 수령이 되었을 때에 백성을 위하여 이(利)되는 일을 하기를 좋아하여 몸소 경농(耕農)을 권장(勸奬)하느라고 들에 나다니면서 편안히 앉아 있는 때가 적었다. 가다가 물이나 샘을 보면 도량을 만들어 관개(灌漑)를 넓히니, 백성들이 그 이(利)를 얻어서 농사에 힘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임연(任延)구진(九眞)의 수령이 되니, 그곳의 풍속은 사냥을 생업(生業)으로 하고 소를 부려 농경(農耕)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번번이 곤핍(困乏)하게 되므로, 이에 농기구(農機具)를 주조(鑄造)하여 개간(開墾)을 가르치고, 해마다 개간을 넓히니 백성들이 자족자급(自足自給)하게 되었다. 신찬(辛纂)하남(河南)의 수령이 되어서 농상(農桑)을 독려하고 권장하되, 친히 스스로 살펴보고 부지런한 자에게는 포백(布帛)과 물화(物貨)를 주어 돕고, 게으른 자에게는 죄를 주었으며, 주문공(朱文公)남강(南康)의 수령이 되었을 때에, 게시문(揭示文)을 인쇄하여 백성에게 농사를 권장하였는데, 〈그 게시문에는〉 갈아 엎고, 시비(施肥)하고 씨를 뿌리며, 제초(除草)하는 절차에서부터 삼과 콩을 심는 법과 제방과 못을 수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술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순순(諄諄)히 타이르며, 때로는 친히 들을 순시(巡視)하고 가르친 대로 하지 않은 자는 처벌하였다. 모든 이런 일들이 어찌 그렇게 해야 할 이유 없이 번거롭고 소요(騷擾)함을 좋아서 하였겠는가. 대체로 보통 사람들의 심정은 그것을 거느리면 스스로 힘쓰고, 놓아 두면 게을러지는 것이다. 선철(先哲)이 말하였기를, ‘일명(一命)의 벼슬128) 을 받는 선비라도 진실로 남을 사랑하는 데에 마음을 두면, 남에게 반드시 구제함이 있다. ’고 하였다. 하물며 지금의 감사와 수령의 책임을 맡는 자는 다할 수 있는 권한(權限)을 잡고 있어서 한 지방의 기쁨과 슬픔이 그 한 몸에 달려 있음이겠는가. 만약 성심으로 어루만지고 불쌍히 여긴다면 어찌 옛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겠는가. 대체로 말해서, 농가(農家)의 일이란 것은 농사의 시기를 일찍 시작한 자는 수확도 또한 이르고, 힘을 많이 들인 자는 수확도 또한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농정(農政)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오직 그 적절한 시기를 어기지 않고, 그 농사에 바칠 힘을 빼앗지 않는 데에 있을 뿐이다. 온갖 곡식은 심고 씨뿌리는 것이 각각 그 때가 있는 것이니, 적어도 때를 한번 잃어버리면 해가 다하도록 다시는 따라갈 수 없다. 백성의 몸은 이미 하나이니 힘을 둘로 나눌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을 빼앗는 일이 관(官)에 있다면 어찌 농사에 힘쓰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인사(人事)를 이미 다하였다면, 비록 천운(天運)이 동반(同伴)되지 않더라도 또한 그 재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윤(伊尹)구전제도(區田制度)129)조과(趙過)의 대전제도(代田制度)가 바로 그것이다. 근일에 경험한 일을 가지고 말한다면, 정사년에 후원(後苑)에 농사짓는 것을 시험하여 사람의 힘을 더 할수 없이 다 하였더니 과연 가뭄을 만나도 한재(旱災)를 일으키지 않고 벼가 매우 잘되었었다. 이것은 우연히 천재를 만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구제할 수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전(傳)에 말하기를, ‘백성의 살아가는 길은 부지런한 데 있고, 부지런하면 빈핍(貧乏)하지 않는다. ’고 하였으며, 《서경(書經)》에는 말하기를, ‘게으른 농부가 스스로 편안하여 힘써 수고로움을 짓지 아니하고 밭이랑에서 일하지 아니하면, 피와 기장을 가리지 못하리라. ’고 하였다. 비로소 차라리 근로(勤勞)에 지나칠지언정, 태타(怠惰)한 데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겠다. 그러나, 백성이 부지런히 힘쓰고자 하더라도, 관에서 권하고 시킴이 성실하지 아니하면 그 힘을 발휘할 곳이 없을 것이다. 또 망종(芒種)이라는 절후(節候)는 사람의 힘이 넉넉하지 못하여 비록 다 일찍 하지는 못하였을지라도, 만약 이 때만 잃지 않는다면 오히려 가을에 곡식이 성숙할 가망이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특히 망종이라는 절후를 한정으로 하여 늦어서 실농하기 보다는 이 때를 잃지 말고 파종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이 때를 가다려서 파종(播種)하는 시기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농서(農書)에서도 또한 대개 일찍 파종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수령들은 예전의 상습(常習)에 익숙하여져서 비록 파종 때를 당하고도 스스로 말하기를, ‘망종(芒種)이 아직 멀다. ’고 하고는, 모든 농지(農地)에 관계되는 소송 사건을 즉시 처결(處決)하지 아니하며, 종곡(種穀)과 양곡(糧穀)의 진대(賑貸) 등의 사무를 항상 빨리 처리하지 아니하여 번번이 시기를 늦추어 버리곤 한다. 혹은 수령이 비록 감사에게 보고하여도, 감사는 호조에 이첩(移牒)하고, 호조에서는 의정부에 보고하며, 의정부에서는 사유를 갖추어 계문(啓聞)해야 하므로, 전전해서 서로 문서(文書)를 왕복하고 있는 동안에 망종(芒種)은 이미 지나가고 만다. 어떤 이는 농경의 적절한 시의(時宜)를 알지 못하고 한갓 권과(勸課)한다는 이름 얻기만 꾀하여 너무 일찍 심기를 독려하기 때문에, 종묘(種苗)가 살지 못하여 도리어 농사를 해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참으로 절후(節候)의 이르고 늦은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계획이 어설퍼서 일이 시기를 잃게 하는 자도 또한 있다. 이래서야 어찌 근심을 나누어 백성을 사랑하는 자의 도리일 수 있겠는가. 누구든 나와 함께 착한 정치를 같이 하려는 자들은 나의 위임한 뜻을 본받고, 조종(祖宗)의 백성에게 두텁게 하신 법을 준수(遵守)하며, 전현(前賢)들의 농사를 권과(勸課)한 규범(規範)을 보고, 널리 그 지방의 풍토(風土)에 마땅한 것을 물으며, 농서(農書)를 참고하여 시기에 앞서서 미리 조치하되, 너무 이르게도 말고 너무 늦게도 하지 말라. 더구나 다른 부역을 일으켜서 그들의 농사 시기를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니, 각각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백성들이 근본을 힘쓰도록 인도하라. 밭에 일하여 농사를 힘써서, 우러러 어버이를 섬기고, 굽어 자녀를 길러서 나의 백성의 생명이 장수(長壽)하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 나라의 근본을 견고하게 한다면, 거의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며, 예의를 지켜 서로 겸양(謙讓)하는 풍속이 일어나서, 시대는 평화하고 해마다 풍년은 들어 함께 태평시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105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79면
  • 【분류】
    농업-권농(勸農) / 농업-농업기술(農業技術) / 역사-고사(故事) / 출판-서책(書冊) / 과학-역법(曆法) / 구휼(救恤)

  • [註 126]
    구호(九扈) : 농사일을 맡았던 아홉 관리. 즉 춘호(春扈)·하호(夏扈)·추호(秋扈)·동호(冬扈)·극호(棘扈)·행호(行扈)·소호(宵扈)·상호(桑扈)·노호(老扈)임.
  • [註 127]
    구혁(溝洫) : 전답(田畓)사이에 있는 도랑.
  • [註 128]
    일명(一命)의 벼슬 : 낮은 벼슬.
  • [註 129]
    구전제도(區田制度) : 해마다 전지를 바꾸어 곡식을 심는 농경법.

○壬寅/下敎曰:

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 農者, 衣食之源, 而王政之所先也。 惟其關生民之大命, 是以服天下之至勞。 不有上之人誠心迪率, 安能使民勤力趨本, 以遂其生生之樂耶? 若古神農, 始爲耒耟, 以利天下; 少昊九扈, 以掌農事, 此聖神所以繼天立極而爲億兆立命者也。 , 敬授人時; 咨十二牧, 食哉惟時; 夏后氏盡力乎溝洫; 商宗知小人之依; 至于家, 以農事開國。 《豳風》之詩、《無逸》之作, 無非拳拳於稼穡之艱難, 以成長治久安之業, 其盛矣哉? 文帝數下詔書, 歲勸種樹, 減租賜農, 海內殷富; 高祖詔牧宰, 務從簡靜, 使不失時。 太宗每謂群臣曰: "營衣食, 不失時爲本。" 其致斗米三錢之效, 豈無所由! 制置勸農司, 歲終賞罰, 又令州縣每歲載酒出郊, 延見父老, 諭以竭力耕田之意, 蓋亦有見於此歟? 洪惟我太祖應運開基, 首正田制, 拯民塗炭, 俾享耕鑿之利, 其勸課之條, 具在令甲。 太宗繼述, 益勤播獲之功, 特慮愚民昧於樹藝之宜, 命儒臣, 以方言譯農書, 廣布中外, 以傳于後。 寡予承緖, 夙夜兢惕, 仰惟前代時若, 惟祖宗是憲, 顧以農務, 當責近民之官, 是用愼簡, 親加勉諭。 且令逮訪州縣因地已試之驗, 輯爲《農事直說》, 務使田野之民曉然易知, 儻可以利於農者, 靡不悉心究擧, 期於人盡其力, 地無遺利, 而民無蓄積之餘, 歲一不登, 輒有飢色, 是吏奉吾敎不力, 而從事焉尙寡也, 予甚慮焉。 嘗觀古之賢守, 能興利一方, 而民受實惠者, 莫不以勤勞而成。 龔遂渤海, 務勸農桑, 民有帶持刀劍者, 使買牛犢, 春勸趨田, 冬課收斂, 民皆富實。 召信臣南陽, 好爲民興利, 躬勸耕農, 出入阡陌, 稀有安居, 行視水泉, 開通溝瀆, 以廣灌漑, 民得其利, 莫不力田。 任延九眞, 其俗以射獵爲業, 不知牛耕, 每致困乏, 乃令鑄作田器, 敎之墾闢, 歲歲開廣, 百姓充給。 辛纂河內, 督勸農桑, 親自檢視, 勤者資以帛物, 惰者加罪。 朱文公之爲南康也, 印榜勸民, 自犂翻糞種芟草之節, 以至種麻豆修陂塘之事, 莫不開具, 諄諄曉諭, 時親巡野, 罰不如敎。 凡此豈無自而好爲煩擾哉? 蓋常人之情, 率之則自力, 縱之則惰窳耳。 先哲有言: "一命之士, 苟存心於愛物, 於人必有所濟。" 矧今任監司守令之責者, 皆操可致之柄, 一方休戚, 係于一身, 若心誠撫恤, 何古人之不可及哉? 大抵田家之事, 趨時早者, 所得亦早; 用力多者, 所收亦多, 故農政所重, 惟在不違其時, 不奪其力而已。 百穀種蒔, 各有其時, 時苟一違, 終歲莫追。 民旣一身, 力不可分, 奪之在官, 豈可責之力田? 苟人事旣盡, 則雖天運之不齊, 亦可禦也。 若伊尹之區田, 趙過之代田是已。 以近日所驗言之, 歲丁巳, 於後苑試治田極人力, 果遇旱不能爲災, 禾頗稔熟。 是則偶爾天災, 其以人力而可救也審矣。 《傳》曰: "民生在勤, 勤則不匱。" 《書》曰: "惰農自安, 不愍作勞, 不服田畝, 越其罔有黍稷。" 乃知寧過於勤勞, 不可失之怠惰也。 第民欲勤力, 勸課不實, 則無所施其力矣。 且云芒種者, 人力不贍, 雖不能皆早, 若及此時, 則猶有秋成之望, 故特限節候, 以示與其晩而失業, 不若及此時之爲愈也, 非謂必待此播種之期也。 《農書》亦云: "大率欲早。" 今之守令, 狃於故常, 雖當播種之時, 自謂芒種猶遠, 凡干土田訴訟, 未卽處決, 穀種口糧賑貸等事, 常不汲汲, 每失稽緩。 雖或守令申報監司, 監司移牒戶曹, 以報政府, 政府具由以啓, 轉相往復之際, 芒種已過。 或不識耕稼之宜, 徒務勸謀之名, 督種太早, 苗不得生, 反以害農者有之。 或未能眞知氣節之早晩, 自計疎虞, 以失事機者, 亦有之, 豈分憂字民之義乎? 凡與我共聖者, 其體予委任之意, 遵祖宗厚民之典, 視前賢課農之規, 廣詢風土所宜, 參以《農書》所載, 預期措置, 毋太早毋太晩, 尤不可興務以奪其時, 各盡乃心, 導民務本, 服田力穡, 仰事俯育, 以壽我民命, 以固我邦本, 庶幾家給人足, 蔚興禮讓之風; 時和歲豐, 共享熙皞之樂。


  • 【태백산사고본】 34책 105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79면
  • 【분류】
    농업-권농(勸農) / 농업-농업기술(農業技術) / 역사-고사(故事) / 출판-서책(書冊) / 과학-역법(曆法)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