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한확·김종서·이숙치 등과 복식과 공법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임금이 병조 판서 한확(韓確)·예조 판서 김종서(金宗瑞)·우참찬 이숙치(李叔畤)에게 이르기를,
"고려 공민왕 때에 참람되게 십이장(十二章)의 옷을 입고, 모든 물건은 다 황색(黃色)을 사용하던 것을 태조께서도 오히려 다 개혁하지 못하였다가, 태종조(太宗朝)에 이르러 황색 사용을 금지함이 엄중하고 분명하게 되었음이 전장(典章)에 실려 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궁중의 복식(服飾)으로 간혹 황색을 사용한 것이 있으나, 궁중의 일이야 고치기 무엇이 어렵겠는가. 중앙·지방의 모든 남녀(男女)의 누렇게 물들인 의복을 엄금함을 거듭 밝히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헌부(憲府)로 하여금 금단(禁斷)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이르기를,
"내가 여러가지 일에 있어서 여러 사람의 의논에 좇지 않고, 대의(大義)를 가지고 강행(强行)하는 적이 자못 많다. 수령 육기(守令六期)나 양계 축성(兩界築城)과 행직(行職)·수직(守職)을 자급(資級)에 따르는 등의 일은 남들은 다 불가(不可)하다고 하는 것을 내가 홀로 여러 사람의 논의를 배제(排除)하고 이를 행하였다. 근일에는 공법(貢法)을 시행하고자 하니, 모든 신민(臣民)들이 또 모두 불가하다고 하므로, 내가 상세하고 명확하게 효유(曉諭)하였으나 아직도 오히려 깨닫지 못하니, 내 공법의 시행을 정지하고자 한다."
하니, 종서·숙치와 도승지 이승손(李承孫)·우승지 유의손(柳義孫) 등이 아뢰기를,
"공법은 폐지할 수 없습니다. 매년 가을에 경차관(敬差官)을 나누어 보내서 전지(田地)의 품질(品質)을 자세히 살펴보게 하며, 기한을 급하게 하지 말고 10년을 한정하여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확(確)과 좌승지 황수신(黃守身) 등은 아뢰기를,
"법이 비록 매우 좋은 것일지라도, 처음으로 시행하려고 하면 백성들은 오히려 놀라서 듣습니다. 지금 공부 입법(貢賦立法)의 뜻을 백성들이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이오며, 더욱이 근년에는 축성(築城)과 입거(入居)시키는 일이 아울러 일어났고 농사는 잘되지 않았으니, 잠깐 동안 공법을 정지하였다가 후일을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옛날의 임금들은 일에 있어서 날카로운 의사로 강행하여도 사람들이 이의(異義)가 없었는데, 이 법을 세움에 대하여는 여러번 자세히 효유하였으나, 그 취지를 알지 못하므로 내가 정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큰 일을 이미 결정하였다가 중도에서 폐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고, 또 확(確) 등에 이르기를,
"금년은 한재로 흉년이 들어 두루 공법을 시행할 수는 없으니, 우선 한두 주현(州縣)에 시험하여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 대답하기를,
"성상의 하교(下敎)하심이 매우 좋습니다."
하였다. 지난 해에 한재로 인하여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모두 슬픈 모습을 하고 있을 때에, 경차관을 경기와 하삼도(下三道)에 나누어 보내서 전품(田品)을 구분하게 하였더니, 경차관들이 제조(提調)의 뜻에 영합(迎合)하여 다투어 중하전(中下田)을 상전(上田)이라고 하였다. 전최(殿最) 때가 되어 상전이 많다고 한 자를 상위(上位)로 하고, 하전(下田)이 많다고 한 자는 파면(罷免)을 당하게 되니, 조정의 논평이 소란하고 떠들썩하여 진정(鎭定)하지 아니하므로, 이 때에 임금이 확(確) 등에게 의논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105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578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왕실-국왕(國王) / 의생활-관복(官服) / 군사-관방(關防) / 재정-전세(田稅) / 농업-양전(量田) / 농업-농작(農作)
○庚子/上謂兵曹判書韓確、禮曹判書金宗瑞、右參贊李叔畤曰: "高麗 〈恭〉愍王時, 僭用十二章之服, 凡物皆用黃色, 太祖尙未盡革, 太宗朝, 黃色之禁, 至爲嚴明, 載在典章, 至于今日, 官中服飾, 或用黃色。 宮中則革之何難? 中外大小男婦黃染衣服, 申明痛禁何如?" 僉曰: "令憲府禁斷爲便。" 又謂曰: "予於庶事, 不從衆議, 斷以大義而强爲之者頗多。 守令六期、兩界築城與行守循資等事, 人皆以爲不可, 予獨排衆議爲之。 近日欲行貢法, 大小臣民, 又皆不可, 予曉諭詳明, 尙未覺悟, 予欲停之。" 宗瑞、叔畤及都承旨李承孫、右承旨柳義孫等啓曰: "貢法, 不可廢也。 每年秋分, 遣敬差官, 詳視田品高下, 勿令刻期, 待以十年爲便。" 確及左承旨黃守身等啓曰: "法雖甚善, 始欲行之, 則民猶駭聽。 今貢賦立法之意, 民未詳知之, 故如是耳。 況近年築城入居之事竝興, 農事不實, 姑停貢法, 以待後日何如?" 上曰: "古之人君於事, 銳意爲之, 人不異議。 玆法之立, 屢詳曉諭, 未知旨意, 予欲停之, 然大事已定, 而中癈未可也。" 又謂確等曰: "今年旱荒, 未可遍行貢法, 姑試一二州縣何如?" 皆對曰: "上敎甚善。" 去年因旱歲歉, 民皆嗷嗷, 分遣敬差官于京畿及下三道, 分別田品, 敬差官承望提調風旨, 競以中下田爲上田。 及殿最時, 上田多者居上, 下田多者見黜, 朝論訩訩不定, 故至是, 上與確等議之。
- 【태백산사고본】 34책 105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578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왕실-국왕(國王) / 의생활-관복(官服) / 군사-관방(關防) / 재정-전세(田稅) / 농업-양전(量田) / 농업-농작(農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