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이 수릉을 살펴보고자 하니 날씨가 좋지 않아 정지하다
동궁(東宮)이 풍수학 제조(風水學提調) 하연(河演)·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수릉(壽陵)을 살펴보고자 하니,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 이선로(李善老)가 동궁에게 아뢰기를,
"지리서를 보니, 이에 이르기를, ‘바람이 불거나 구름이 끼었거나 우레가 울리거나 비가 오는 날과 상현(上弦)·하현(下弦)·보름·그믐·초하루·파일(破日)119) ·괴강일(魁剛日)120) 등의 날에 산을 살펴보는 것은 좋지 않다. ’고 하였사온데, 오늘은 보름 날이오니, 청하건대, 후일을 기다리시옵소서."
하니, 동궁이 즉시 선로(善老)로 하여금 달려가 임금에게 아뢰게 하니, 임금이 동궁에게 명령하시기를,
"내일 다시 가 보라."
고 하였다. 선로가 자기 아버지의 상중에 있을 때에 어설프게 풍수서(風水書)를 섭렵(涉獵)하였더니, 이때에 국가에서 수릉을 정하고자 선로에게 명령하여 널리 지리서를 고찰(考察)하고 길흉을 정하는 데에 참여하게 하였다. 선로의 사람됨이 경박(輕薄)하여 절도가 없으며, 재주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었다. 안평 대군(安平大君)과 사귐을 맺고 서로 더불어 유연(遊宴)하면서 시련(詩聯)을 창화(唱和)하니, 대군이 그에게 선물을 증여함이 특히 후(厚)하였다. 선로가 혹시는 동료인 벗을 대군에게 헐뜯어 참소하고, 대군이 이를 임금에게 전달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 식자(識者)들이 비루하게 여기었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105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책 576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출판-서책(書冊) / 인물(人物)
○東宮與風水學提調河演、鄭麟趾等相視壽陵。 集賢殿修撰李善老白東宮曰: "觀地理書云: ‘風雲雷雨、弦望晦朔、建破魁剛等日, 不宜相山。’ 今日是望日, 請竢後日。" 東宮卽使善老馳啓于上, 上命東宮, 明日更往視之。 善老居父喪, 粗涉風水書, 時國家欲定壽陵, 命善老博考地理諸書, 參定吉凶。 善老爲人輕薄無節, 恃才傲物, 交結安平大君, 相與遊宴, 唱和詩聯, 大君贈遺特厚。 善老或讒毁僚友於大君, 轉達於上, 識者鄙之。
- 【태백산사고본】 34책 105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책 57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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