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전라·경상도 도순찰사 정인지에게 전품 9등 구분의 의의를 설명하고 백성들의 불만을 없애줄 것을 유시하다
충청·전라·경상도 도순찰사(都巡察使) 정인지(鄭麟趾)에게 유시하기를,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전품(田品)을 분간하여 고중(高重)하게 한다는 의논이 중외(中外)에서 떠들썩합니다. ’고 하며, ‘경기(京畿)와 하삼도(下三道) 토전의 기름지고 척박함이 같지 않은데도 일등전(一等田)으로 동등하게 한 것도 옳지 못하며, 전에 상등전(上等田)이란 수재나 한재를 논하지 않아도 되는 전지(田地)인데, 전에 있어서의 중등전(中等田)을 상등(上等)으로 올려서 전의 2등과 한가지로 조세(租稅)를 받는 것도 또한 옳지 않고, 조세(租稅)의 수(數)도 과중(過中)한 데 이르옵니다. 또 경차관(敬差官)이 국가의 뜻을 잘못 생각하고 고중(高重)하게만 하려고 마음먹는 자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마땅히 만세(萬世)토록 전하여야 할 막중한 대사(大事)이옵기에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므로, 내가 대답하기를, ‘먼저 조세(租稅)의 수를 정하고 그 전품(田品)을 매긴다면 참으로 중외(中外)의 떠드는 말과 같겠지만, 이는 그렇지 않다. 일년의 수입한 수량을 총계하여 그 대략을 정하고 5등으로 전지를 나누는 것인즉, 부자는 많이 내게 되고 가난한 자는 적게 내게 되어 일이 마땅한데, 무엇을 떠들어 말한다는 것이냐. 하삼도에서는 1되의 종자를 심어 1섬을 거두는 전지를 1등으로 하고, 경기(京畿)에서는 1말의 종자를 심어 1섬을 거두는 전지를 1등으로 한다면 실로 옳지 않지만, 이는 그렇지 않고, 경기와 하삼도를 한 가지로 종자 1말을 심어서 1섬을 거두는 전지를 1등으로 하였지만, 하삼도에는 1등이 많고 경기에는 1등이 적은 것은 그 기름짐이 같지 않은 것을 또한 볼 수 있는 것이다. 고려(高麗)의 공법(貢法)은 손(損)과 실(實)을 논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한(水旱)을 가리지 않는 전지로써 상전(上田)을 삼아 그 온전한 조세를 거두게 하고, 중전(中田)은 땅의 품질이 비록 기름지더라도 연사에 따라 〈수확이〉 늘고 주는 전지였지만, 이것은 그렇지 않고, 비록 전에 있어 중등이라도 연사에 따라 올라가면 1등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전품(田品)을 모두 더 정한 후에 정부·육조(六曹)로 하여금 손(損)과 실(實)의 수와 연사의 9등(等)을 합쳐서 의논하여 그 총수(總數)를 정하고 5등(等)으로 나누었은즉, 조세(租稅)의 경중(輕重)이 모두 경 등(卿等)의 말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니, 어찌 경하고 중함이 있음을 미리 예측하였겠느냐. 가령 갑(甲)과 을(乙)이 한가지로 전지 1결(結)을 받은 것이 모두 5등이 되어 각기 1말 5되의 조세를 내게 되었는데, 경차관(敬差官)이 그 전품(田品)을 보고 갑이 조금 낫다 하여 4등으로 올려서, 갑은 1말 7되를 내고 을(乙)은 1말 5되를 바치게 한다면, 을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고, 갑은 반드시 원망하여 말하기를 「나도 저와 같은데 관리가 공평하지 못하여 나에게 2되를 더 바치게 하였다.」고 할 것이니, 갑도 가엾지마는 을은 더욱 가여운 것이다. 가여운 갑을 따라 옮겨서 내리면 더욱 가엾게 되고 마니, 을이 갑과 한가지로 바치게 함은 심히 옳지 않다. 갑과 을의 기뻐하고 노하는 것은 비록 이와 같으나, 국가의 정치 체제는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저울을 가지는 형세여서, 여기가 무거우면 저편이 가벼운 것이다. 어리석은 백성이 이 뜻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기를, 「반드시 장차 고중(高重)하게 될 것이라.」하고, 도리를 아는 선비들까지도 역시 따라 화동(和同)하는데, 만일 1등씩을 내린다거나 2등씩을 내린다 하면, 사람이 모두 즐거워 하겠지만, 그러나, 조세를 결정하는 날에 먼저 총수(總數)를 정하여 놓고 나누는 것이니, 내리고 아니 내리는 것이 무엇이 다름이 있겠는가. 이른바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 하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하였다는 비유와 같은 것이다. 다만 동등한 전지를 한 사람은 몇 등이고 한 사람은 또 몇 등이라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공평하지 못하다는 한탄이 있을까 염려된다.’ 하였더니, 정부(政府)에서 회계(回啓)하기를, ‘신 등은 이 뜻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상교(上敎)가 모두 옳습니다.’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전에 경 등이 청하기를, ‘하삼도의 전지가 비록 기름지다고는 하나, 그 중에도 척박(脊薄)한 전지는 북도(北道)와 다름이 없으니, 하전(下田) 중에서 더욱 척박한 것을 가려서 4, 5등으로 내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기에, 내 그 말에 따라서 이번의 제도를 정한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지금의 3등은 종전의 하등(下等) 그대로 같은 것이고, 4, 5등은 특별히 새 법령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본래 3등이던 것이 이번에 올라서 1, 2등이 된 것이 비록 많다 하지만, 본래 3등이던 것이 내려서 4, 5등으로 된 것도 또한 많다. 1, 2등으로 오른 자는 연사가 9등으로 나뉜 것을 따지지 않고 원망이 있을 것이고, 3등에 있는 자는 역시 이르기를, 우리 전지가 본래 하등(下等)이었는데, 내 아래에 또 두 등급이 있다 할 것이며, 4등이 된 자도 역시 이같이 말할 것이니, 어리석은 백성이 국가의 뜻을 알지 못함이 이와 같다. 또 송거(宋秬)가 서울에 왔다가 도로 가서 고치었고, 김길통(金吉通)은 하삼도에 가서 맞지 않는 곳을 본 것이 많다 하였으며, 경도 지금 또 대부분 고친다 하는데, 이는 경한 것을 중하게만 한다 하고 중한 것을 경하게 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으니, 아랫 백성의 적중하지 못한다는 한탄은 자연한 이치이다. 경은 나의 지극한 소회를 몸받아 더욱 근면하고 더욱 힘쓸 것이며, 또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국가에서 후렴(厚歛)하려는 의사가 없음을 알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103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35면
- 【분류】농업-양전(量田) / 재정-전세(田稅)
○庚申/諭忠淸、全羅、慶尙道都巡察使鄭麟趾曰:
議政府啓: "田品分揀高重之議, 中外喧說。 京畿下三道膏腴不同, 而俱有一等田, 亦未可也。 在前上等田, 水旱勿論之田也。 在前中等田, 陞爲上等, 與在前二等一體收租, 亦未可也。 租稅之數, 亦或至於過中矣。 且敬差官妄度國家之意, 以高重爲心者, 間或有之, 此法當傳之萬世, 莫大之重事, 不可不啓。" 予答曰: "先定租稅之數而等其田品, 則誠如中外之喧說。 此則不然, 總計一年所收之數, 定其大略而分於五等之田, 則富者多輸, 貧者寡輸, 事之當然, 何爲其喧說也? 於下三道以種一升收一石之田爲一等, 於京畿以種一斗收一石之田爲一等, 則實爲未可。 此則不然, 京畿與下三道, 俱以種一斗收一石之田爲一等, 而下三道多一等, 而京畿少一等, 膏腴不同, 亦可見高麗貢法不論損實, 故以水旱勿論之田爲上田, 收其全租。 中田地品雖腴, 而隨年高下之田也。 此則不然, 雖在前中等, 隨年而高, 則與一等無異矣。 田品畢定之後, 令政府六曹以損實之數與年之九等合而議之, 定其摠數, 分於五等, 則租稅之輕重, 皆定於卿等之言, 何預料輕重之有? 假如甲乙俱受田一結, 皆爲第五等, 而各當輸一斗五升, 敬差官視其田品, 甲稍優, 陞之第四等, 而甲輸一斗七升, 乙輸一斗五升, 則乙必喜之, 甲必怨曰: ‘我與彼同, 而官吏不均, 使我多輸二升矣。’ 甲可哀也, 乙尤可哀也。 從可哀之甲, 遷而下之, 則尤可哀之, 乙與甲同輸, 甚未可也。 甲乙喜怒雖如此, 於國家政體, 不得不然, 此所謂持衡之勢, 此重則彼輕者也。 愚民不識此意, 妄謂必將高重, 雖識理之士, 亦從而和之。 若曰每降一等, 每降二等, 則人必喜之, 然定租之日, 先定總數而分之, 則降與不降, 何異之有? 所謂朝四暮三衆狙皆悅之比也。 但於同等之田, 一人謂之某等, 一人亦謂之某等, 使民有不均之嘆, 是可慮也。" 政府回啓曰: "臣等不詳此意, 上敎皆是。" 予謂前卿等請曰: "下道之田, 雖曰膏腴, 其中塉薄之田, 與北道無異, 請於下田之中, 擇尤塉者, 降爲四五等可也。" 予從其說, 定爲今制。 以此觀之, 今之三等, 依舊下等自若也; 四五等, 特蒙新令者也。 本居三等, 而今陞爲一二等者雖多, 而本居三等而降爲四五等者亦多。 陞一二等者, 不計年分之九等而有怨, 居三等者亦謂我田本下也, 我下又有二等, 居四等者亦謂如此。 愚民之不知國家之意如是。 且宋秬至京, 復往而改之; 金吉通至下三道, 見不中處多, 卿今又多改之, 此改輕爲重, 而未聞以重爲輕者也。 下民不中之嘆, 理之自然。 卿其體予至懷, 益勤益勵, 且使愚民知國家不欲厚斂之意。
- 【태백산사고본】 33책 103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35면
- 【분류】농업-양전(量田) / 재정-전세(田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