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손의 태를 안치한 곳이 해롭지 않은 곳이라 이른 사정 정앙을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다
처음에 원손(元孫)의 태(胎)를 경상도 성주(星州)에 안치하였는데, 그 도국(圖局) 안에 장경(長庚)의 묘가 있었으니 바로 성원군(星原君) 이정녕(李正寧)의 시조(始祖)이었다. 이때에 정녕이 풍수학(風水學) 제조(提調)가 되고, 성균 직강(成均直講) 윤통(尹統)과 사정(司正) 정앙(鄭秧)이 훈도(訓導)가 되어 장차 태실(胎室)의 돌난간[石欄干]을 만드는데, 풍수학관(風水學官)을 으레 보내어 그 역사를 감독하게 되었으므로 예조에서 윤통(尹統)을 보내려 하매, 통이 난간 만드는 규칙을 앙(秧)에게 물으니, 앙이 말하기를,
"난간은 전 규칙이 있다. 그러나 장경(長庚)의 묘가 태실(胎室) 원국(圓局) 안에 있다 하니 대단히 불리하다. 아는 자가 보면 반드시 그 묘를 옮길 것이다."
하였다. 통이 대답하기를,
"아무리 제조(提調)의 조상의 묘라도 만일 태실에 불리하다면 어찌 아뢰지 않을 수 있는가."
하였다. 이때에 앙(秧)의 어미가 경상도에 있었는데 앙이 일 때문에 돌아가 근친하고자 하여 통의 말을 정녕(正寧)에게 누설하여 이간하였다. 정녕은 통이 풍수학을 알지 못한다고 저지시키고, 앙을 천거하여 보냈다. 통이 예조 정랑 정광원(鄭廣元)에게 말하기를,
"제조가 앙을 보내려고 한 것은 반드시 내가 자기 조상의 묘를 옮길 것이라는 말을 허물한 것이다."
하니, 광원이 말하기를,
"이런 큰 일을 어찌 계달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통이 말하기를,
"앙도 결국은 반드시 아뢸 것이다."
하였다. 앙이 이미 돌아오매 정녕을 고맙게 여기어 이르기를,
"장경의 묘는 태실과 멀리 떨어져서 해로울 것이 없다."
하고, 마침내 아뢰지 않았다. 뒤에 통이 대호군(大護軍) 조유례(趙由禮)에게 말하였기 때문에 일이 발각되니, 이에 앙을 의금부(義禁府)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102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30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법-재판(裁判) / 인물(人物)
○初, 安元孫胎于慶尙道 星州, 其圖局內有長庚墓, 乃星原君 李正寧始祖也。 時正寧爲風水學提調, 成均直講尹統、司正鄭秧爲訓導。 及將造胎室石欄干, 例遣風水學官, 監督其役, 禮曹擬遣統。 統問造欄干之規於秧, 秧曰: "欄干自有前規, 但聞長庚之墓在胎室圓局之內, 甚爲不利。 識者見之, 必將移其墓矣。" 統答曰: "雖提調祖上之墓, 若不利於胎室, 則豈得不啓?" 時秧母在慶尙道, 秧欲因事歸覲, 洩統言於正寧以間之。 正寧沮統以不知風水學, 乃擧秧以遣。 統謂禮曹正郞鄭廣元曰: "提調欲遣秧者, 必咎我移祖上墳墓之言也。" 廣元曰: "如此大事, 何不啓達?" 統曰: "秧亦終必啓之。" 秧旣還, 德正寧謂曰: "長庚之墓, 與胎室隔遠, 無害也。" 卒不以聞。 後統言於大護軍趙由禮, 因而事覺, 乃下秧義禁府鞫之。
- 【태백산사고본】 33책 102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30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법-재판(裁判)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