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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일 계미 2번째기사 1443년 명 정통(正統) 8년

의정부에서 아뢴 과거(科擧)의 강경정식(講經程式)

의정부에서 예조의 첩정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과거(科擧)의 강경정식(講經程式)은,

1. 《원속육전(元續六典)》과 각년 수교(各年受敎)의 이미 행한 격례(格例)에 의하여 시행하고, 그 중에 빼고 보탤 절목을 지금 다시 마련하여 아뢰게 할 것.

1. 회시(會試)에 사서(四書)와 삼경(三經) 이상을 각각 한 장(章)씩 외게 하고, 관시(館試)·한성시(漢城試)·향시(鄕試)에도 같게 할 것.

1. 전에는 매 경서(經書)마다 첫 편의 한 장(章)에 대하여 30사람에게 두루 물어서 해를 마치어 파하였으나, 그러나 혹 막고 금하는 것이 엄밀하지 못하여 누설(漏說)할 염려가 있었으니, 금후로는 매 인에게 장(章)을 변경하여 물을 것.

1. 영락(永樂) 15년 윤5월 5일에 수교(受敎)한 바에 의하면 초장(初場)의 대통(大通)은 3분(分) 5리(里), 통(通)은 2분, 약통(略通)은 1분, 조통(租通)은 5리이고, 중장(中場)의 중지상(中之上)은 10분, 중지중(中之中)은 9분, 중지하(中之下)는 8분, 하지상(下之上)은 7분, 하지중(下之中)은 6분, 하지하(下之下)는 5분이고, 종장(終場)의 상지상은 13분 5리, 상지중은 12분, 상지하는 11분, 중지상은 10분, 중지중은 9분, 중지하는 8분, 하지상은 7분이며, 하지중은 6분, 하지하는 5분이었으나, 그러나 중장의 제순(製述) 상등에 합격하면 중등으로 취할 수 없고, 두 편에 각각 분수를 주면 타장(他場)의 분수보다 크게 지나치니, 지금부터는 초장에 사서 오경 모두 대통(大通)이면 31분 5리를, 모두 통(通)이면 18분을, 모두 약통(略通)이면 8분을, 모두 조통(租通)이면 4분을, 그리고 사서·삼경(三經)이 모두 대통이면 24분 5리를, 모두 통이면 14분을, 모두 약통이면 7분을, 모두 조통이면 3분 5리를 주고, 중장(中場)의 두 편이 모두 상지상이면 18분을, 모두 상지중이면 16분을, 모두 상지하이면 14분을 모두 중지상이면 12분을, 모두 중지중이면 10분을, 모두 중지하이면 8분을, 모두 하지상이면 6분을, 모두 하지중이면 4분을, 모두 하지하이면 2분을 주되, 만일 한 편은 상지상이고 한 편은 상지중이면 17분을 주어 나머지도 이와 같이 하고, 종장(終場)에 상지상은 18분을, 상지중은 16분을, 상지하는 14분을, 중지상은 12분을, 중지중은 10분을, 중지하는 8분을, 하지상은 6분을, 하지중은 4분을, 하지하는 2분을 줄 것.

1. 영락(永樂) 17년 5월 일의 수교(受敎)에 이르기를, ‘통하지 못한 글의 수는 논하지 말고, 다만 통한 경서의 수가 7서(書)에 차면 중장(中場)에 부시(赴試)하는 것을 허락한다.’ 하였으니, 그 문세가 심히 분명하지 못하여 시행하기에 현란하니, 이제부터는 사서 중에 하나를 통하지 못하고 삼경 중에 하나를 통하지 못하면, 중장에 부시하는 것을 허락치 말고, 사경 중 두 개가 불통이고 오경 중 세 개가 불통인 자도 중장을 허락하지 말 것.

1. 구례(舊例)는 문과(文科)의 한성시(漢城試)·경기 향시(京畿鄕試)를 모두 30인으로 정한 액수를 삼았었는데, 영락 15년 5월간에, 본조(本曹)에서 헌의(獻議)하기를, ‘경기(京畿)의 주군(州郡)은 본래 직속이니 따로 향시를 베푸는 것이 타당치 못한다.’ 하여, 이에 경기 향시를 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재가 점점 많아서한성시에 응시하는 사람이 많으면 천여 인에 이르니, 시기에 미처 강시(講試)하기 어려운데다 또한 정하게 살피지 못할 것이 필연한 일이니, 구례를 따라 다시 경기 향시를 세우고 진사(進士)·생원(生員)도 이 예(例)에 의하여 또한 경기 향시를 베풀 것.

1. 역대에 선비를 취하는 수가 동일하지 않았고, 33인의 정액(定額)도 고제(古制)에서 상고할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인재가 많은데 식년(式年)에 선비를 뽑는 것이 정액에 구애되어 그 수가 늘지 못하고, 문신(文臣)을 차임(差任)하는 것은 매우 많아 항상 결원을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득이하여 식년(式年) 사이에 매양 별시(別試)를 행하는데, 그래도 부족하오니, 이제부터는 회시(會試)에 취사(取士)하는 것을 비록 33인으로 정액을 삼더라도, 만일 혹시 경서와 제술에 통한 자가 많으면 액수에 구애하지 말고 뽑되, 50인을 지나지 말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102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28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議政府據禮曹呈啓:

科擧講經程式, 一依《元》《續六典》及各年受敎已行格例施行, 其中損益節目, 今更磨勘以啓。

一, 會試, 四書及三經以上, 各講一章。 館試、漢城試、鄕試, 亦同。

一, 在前每經書初開卷處一章, 歷問三十人, 竟日而罷, 然或防禁不密, 漏說可慮, 今後每人更章以問。

一, 永樂十五年閏五月日受敎: "初場, 大通三分五里, 通二分, 略通一分, 粗通五里; 中場, 中之上十分, 中之中九分, 中之下八分, 下之上七分, 下之中六分, 下之下五分; 終場, 上之上十三分五里, 上之中十二分, 上之下十一分, 中之上十分, 中之中九分, 中之下八分, 下之上七分, 下之中六分, 下之下五分。" 然中場製述, 合於上等, 則不可以中等取之。 二篇各給分數, 則大過於他場分數。 自今初場, 四書五經, 俱大通三十一分五里, 俱通十八分, 俱略通九分, 俱粗通四分五里; 四書(四)〔三〕 經, 俱大通二十八分, 俱通十六分, 俱略通八分, 俱粗通四分; 四書三經, 俱大通二十四分五里, 俱通十四分, 俱略通七分, 俱粗通三分五里。 中場, 二篇俱上之上十八分, 俱上之中十六分, 俱上之下十四分, 俱中之上十二分, 俱中之中十分, 俱中之下八分, 俱下之上六分, 俱下之中四分, 俱下之下二分。 若一篇上之上、一篇上之中, 給十七分。 餘倣此。 終場, 上之上十八分, 上之中十六分, 上之下十四分, 中之上十二分, 中之中十分, 中之下八分, 下之上六分, 下之中四分, 下之下二分。

一, 永樂十七年五月日受敎, 節該: "勿論不通書數, 而只論所通經書之數滿七書, 許赴中場。" 然其文勢未甚分析, 眩於施爲。 自今四書一不通、三經一不通, 不許赴中場。 其以四經而二不通、五經而三不通者, 亦不許中場。

一, 舊例文科漢城試、京畿鄕試, 皆以三十人爲定額。 永樂十五年閏五月間, 本曹獻議: "京畿州郡, 本爲直隷, 別設鄕試未便。" 於是罷京畿鄕試。 然今人材滋盛, 漢城試應擧者, 多至千餘, 及期講試爲難, 且不能精察必矣, 依舊例復立京畿鄕試。 進士生員依此例, 亦設京畿鄕試。

一, 歷代取士之數不一, 三十三人定額, 亦無古制可考。 況今人材衆多, 式年取士, 拘於定額, 厥數不敷, 文臣差任頗多, 常患缺員, 故不得已式年之間, 每行別試, 猶爲不足。 自今會試取士, 雖以三十三人爲定額, 如或通經書製述者多, 則不拘額數取之, 毋過五十人。

從之。


  • 【태백산사고본】 33책 102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28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