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 행보를 시명지보로, 국왕 신보를 소신지보로 고치고 과거의 인을 따로 만들어 과거 시험에만 쓰게 하다
의정부에서 예조(禮曹)의 첩정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일찍이 황제(皇帝)께서 준 대보(大寶)의 글귀에, ‘조선 국왕(朝鮮國王)’이라 일컬어서 경내(境內)의 범상한 일에 쓰기가 마땅치 않으므로, 국왕 신보(國王信寶)를 만들어서 사신(事神)·사유(赦宥)·공거(貢擧) 등의 일에는 이를 쓰게 하고, 국왕 행보(國王行寶)를 만들어서 책봉(冊封)·제수(除授) 등의 일에도 이를 쓰게 하며, 황제가 준 대보(大寶)는 사대문서(事大文書) 이외에는 간직하여 두고 쓰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참상(慘祥)하건대, 행보(行寶)·신보(信寶)는 경내에서 쓴 것인데도 그 글에 아울러 국왕이라고 일컬었으니, 특히 뜻[意]이 없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 예전에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글을 만들었는데, 삼가 경전(經傳)을 상고하면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명고(命誥)를 사방에 베푼다.’ 하였고, 《국어(國語)》에 말하기를, ‘말은 신(信)을 밝히[昭]는 것이라.’ 하였으니, 마땅히 이 뜻을 취하여 행보(行寶)를 시명지보(施命之寶)로 고치고, 신보(信寶)를 소신지보(昭信之寶)로 고치어, 시명지보는 책봉(冊封)·제수(除授), 보통 행하는 교서(敎書) 등의 일에 쓰고, 소신지보는 신명(神明)을 섬기고 군사를 발하고 물건을 주는 등 일에 쓰오면, 거의 명령을 행하고 신(信)을 보이는 뜻에 합할 것입니다. 또 종전에는 행보(行寶)·신보(信寶)를 과거보는 사람의 권자(卷子)에 쓰고 승지(承旨)가 신봉함(臣封緘)이라고 일컬었는데, 이제 친히 압인(押印)하고 제봉(題封)하면서 인문(印文)은 다 고치었으니 공거(貢擧)에 쓰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바라옵건대, 과거(科擧)의 인(印)을 따로 만들어서 승지(承旨)로 하여금 신봉함(臣封緘)이라 일컫고 상서원(尙瑞院)에 간직하여 두고서 전시(殿試)에만 쓰게 하면 참으로 사의(事宜)에 합할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102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12면
- 【분류】출판-인쇄(印刷) / 역사-고사(故事) / 왕실-국왕(國王)
○議政府據禮曹呈啓: "曾以帝賜大寶之文稱朝鮮國王, 不宜用於境內常事, 乃造國王信寶, 用之於事神赦宥貢擧等事; 國王行寶, 用之於冊封除授等事, 其帝賜大寶, 事大文書外, 藏而不用。 今更參詳, 行寶信寶, 旣是用於境內, 其文竝稱國王, 殊無意謂。 且古以美名爲文, 謹稽經傳, 《易》云: ‘施命誥四方。’ 《國語》云: ‘言以昭信。’ 宜取此意, 改行寶以施命之寶, 信寶以昭信之寶。 施命之寶, 用之於冊封除授常行敎書等事; 昭信之寶, 用之於事神發兵賜物等事, 則庶合行令示信之義矣。 且前此行信之寶, 用之於擧人卷子, 而承旨稱臣緘封。 今旣親押題封, 而印文俱改, 則不當用於貢擧。 乞別鑄科擧之印, 使承旨稱臣緘封, 藏之尙瑞司, 只用於殿試, 允合事宜。" 從之。
- 【태백산사고본】 33책 102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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