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101권, 세종 25년 9월 11일 임술 2번째기사
1443년 명 정통(正統) 8년
좌정언 윤면이 뛰어 올려 제수된 이최와 민원의 관직을 다시 제수할 것을 청하다
좌정언 윤면(尹沔)이 아뢰기를,
"이최(李漼)는 통선(通善)으로 뛰어올려 수성균사예(守成均司藝)를 제수하였고, 민원(閔瑗)도 역시 봉직(奉直)으로 수사예(守司藝)를 제수하였사온데, 사예는 정4품의 관직이옵니다. 행(行)과 수(守)의 법은 직무를 중히 여겨서 한 것이온데, 이처럼 뛰어올려서 제수하오면 모람(冒濫)의 폐해가 있을까 두렵사오니, 청하옵건대, 모두 고쳐 제수하소서. 성균 학정(成均學正) 이형기(李馨期)는 본디 현리(縣吏)로서, 과거를 볼 때에 거짓으로 조부(祖父)와 아비의 관직을 사칭(詐稱)하였사오니, 심술(心術)이 이미 글렀사옵니다. 학정(學正)은 성균관의 정록소(正錄所) 인신(印信)을 관장하옵고 유생(儒生)을 검찰(檢察)하는 것으로서 그 임무가 가볍지 아니하오니, 청하옵건대, 역시 고쳐 제수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행(行)·수(守)의 법(法)을 세운 것은 구애되는 곳에 써서 변통(變通)되게 하려 함이었는데, 너희들의 의논이 실로 옳지 아니하다. 형기(馨期)의 일은 내가 장차 생각하겠다."
하였다. 면(沔)이 다시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101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07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