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손과 이계전이 겸직과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문
행 집현전 직제학(行集賢殿直提學) 유의손(柳義孫)이 상서(上書)하기를,
"예로부터 유림(儒林)의 선비는 선배(先輩)·후배(後輩)의 관계를 중하게 여겨, 겸손하고 사양하는 것으로써 예절(禮節)로 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지금의 삼관(三館)092) 에도 오히려 유풍(遺風)이 있습니다. 신이 지금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직제학 겸 첨사원 첨사(行直提學兼詹事院詹事)에 특별히 임명되었으므로, 평민(平民)으로서는 최고(最高)의 출세(出世)이오니, 다시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옵건대, 본전(本殿)에서 차례를 따라 승진 전직(昇進轉職)하는 것이 삼관(三館)과 같은 점이 있는데, 지금 행 직제학 동첨사(行直提學同詹事) 이선제(李先齊)가 일찍이 기해년(己亥年) 과거(科擧)에 발탁되고, 병오년(丙午年)에 수찬(修撰)으로서 회시(會試)에 참고(參考)했는데, 신은 처음 과거에 오른 것이 신해년(辛亥年)이었으며, 신이 사헌부 감찰(監察)로서 수찬(修撰)에 임명될 때는, 선제(先齊)는 이미 교리(校理)에 승진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선제의 벼슬 차례[官次]가 항상 신의 위에 있었는데, 병진년(丙辰年)에 신이 문필(文筆)의 조그마한 재주로써 성은(聖恩)을 입어, 차례를 뛰어넘어 봉정직전(奉正直殿)에 승진되어 벼슬이 선제의 위에 있게 되니, 더욱 분수에 지나친 두려움이 더합니다. 하물며, 선제의 경학(經學)과 재행(才行)은 신이 따를 수 없는 바이며, 더구나, 신의 나이는 45세인데, 선제는 신보다 8세가 위인 것이겠습니까. 신은 그윽이 놀라고 부끄러워서 사양해 피하기를 청하고자 한 것이 몇 해 되었습니다마는, 그러나, 자급(資級)이 다름이 있기 때문에 감히 토로(吐露)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신이 선제와 더불어 함께 통훈 대부(通訓大夫)에 승진되어, 신은 첨사(詹事)를 겸하고 선제는 동첨사(同詹事)에 임명되었으니, 본직(本職)은 동일(同一)한데도 첨사와 동첨사는 그 등급이 조금 떨어져서, 선후(先後) 소장(少長)의 차례에 어긋남이 있으니, 더욱 심히 부끄럽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정성을 굽어 살피시어, 신의 겸직(兼職)을 고쳐 임명하여 선후(先後)의 구분을 엄하게 하고, 겸손 사양하는 기풍(氣風)을 도타이 하소서."
하였다. 직집현전(直集賢殿) 이계전(李季甸)이 상서하기를,
"높은 관질(官秩)에 뛰어 승진되는 것은 고금(古今)의 사람이 영광스럽게 여기오나, 분수에 지나친 자리를 외람히 있는 것은 사자(士子)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신(臣)은 천박한 재주로써 특별히 성은(聖恩)을 입어 지금 직집현전(直集賢殿)에 임명되었으니, 이것은 실로 분수 밖의 영광이므로 감격한 마음이 유달리 깊습니다. 다만, 집현전은 작위(爵位)의 차례로써 순서에 따라 승진하는 것이 예전부터 내려온 관례(慣例)입니다. 이보다 먼저 신이 조산 대부(朝散大夫)인 서운관 부정(書雲觀副正)이 되었는데, 응교(應敎) 김문(金汶)은 관계(官階)가 봉렬 대부(奉列大夫)가 되어 직위가 신의 위에 있었으며, 더구나 신은 나이 39세인데 김문은 신보다 5세가 위이며, 김문이 과거에 오른 것은 신보다 7년이 앞섰으며,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을 닦[行修]은 것도 신과는 비교가 아닙니다. 하물며 지금 행직·수직[行守]의 법을 새로 만들어, 하나가 정(正)이면 하나는 종(從)으로 하여 그 등급을 엄하게 하였는데, 김문은 봉렬 대부(奉列大夫)로 행 집현전 응교(行集賢殿應敎)가 되고, 신은 조산 대부(朝散大夫)로서 수 직전(守直殿)이 되어 신의 직위가 도리어 그 위에 있게 되니, 이것은 신의 마음으로서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관직을 받고 거짓으로 사양하는 것은 비록 왕술(王述)093) 의 그르게 여긴 바입니다마는, 그러나, 신의 이 말은 폐부(肺腑)에서 나왔으니 어찌 물의(物議)를 헤아리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신의 정성을 굽어살피시어 신의 관직을 김문에게 이수(移授)하시면, 관작(官爵)이 상칭(相稱)되고, 선후(先後)가 차례가 있게 되어, 소신(小臣)의 부끄러움도 또한 풀어질 수가 있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모두 훗날 전주(銓注)할 때에 다시 아뢰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98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4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庚戌/行集賢殿直提學柳義孫上書曰:
自古儒林之士, 莫不以先後爲重, 遜讓爲禮, 今之三館, 猶有遺風。 臣今特拜通訓、行直提學、兼詹事院詹事, 此乃布衣之極, 復有何望? 竊念本殿循序遷轉, 有同三館。 今行直提學同詹事李先齊曾擢己亥科, 歲在丙午, 以(脩撰)〔修撰〕 參考會試, 臣始登第。 歲辛亥, 臣以司憲監察拜(脩撰)〔修撰〕 , 先齊已陞校理。 自是先齊官次, 常在臣右。 歲丙辰, 臣以文墨小技, 蒙恩不次, 超陞奉正直殿, 位居先齊之上, 冞增非分之懼, 況先齊經學才行, 非臣所可分及? 且臣年四十有五, 而先齊長於臣八歲乎? 臣竊驚愧, 欲請遜避者有年。 然以資級有殊, 未敢吐露。 今臣與先齊同陞通訓, 而臣兼詹事, 先齊同詹事。 本職則一也, 而詹事同詹事, 其等差隔, 有違先後少長之序, 尤切愧焉。 伏望殿下俯察微懇, 許改臣兼職, 以嚴先後之分, 以敦遜讓之風。
直集賢殿李季甸上書曰:
超遷華秩, 古今所榮; 濫居非分, 士子所慙。 臣以譾薄之材, 特蒙聖恩, 今拜直集賢殿, 此實分外之榮, 感激殊深, 但集賢殿以爵位之次, 循序以遷, 舊例也。 前此臣爲朝散、書雲副正, 而應敎金汶階爲奉列, 位在臣上。 且臣年三十有九, 而汶長臣五歲; 汶之登科, 先臣七年, 而經明行修, 又非臣比。 況今新立行守之法, 一正一從, 嚴其等級; 汶以奉列、行集賢殿應敎, 臣以朝散、守直殿, 臣位反居其上, 此臣心之所甚愧也。 受職虛讓, 雖王述之所非, 然臣此言出於肺腑, 何計物議哉! 伏望殿下俯諒微情, 以臣之職移授汶, 則庶乎官爵相稱, 先後有序, 而小臣之愧, 亦可解矣。
上命竝於後日銓注時更啓。
- 【태백산사고본】 31책 98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4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