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첨사원 설치를 반대하는 상소문
집현전 부제학(副提學) 최만리(崔萬理)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엎드려 들으니, 전하께서 장차 동궁에 첨사원을 두어 서무(庶務)를 나누어 맡기려고 하신다 하니 실로 보고 듣기에 놀랍습니다. 정부와 육조와 대간이 여러 번 정지하기를 청하였으나 전하께서 윤허하지 않으시니, 신 등은 놀라고 두려워함을 이기지 못하여 감히 위태하고 간절한 말을 진술합니다.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오니, 정치를 둘로 하여 권한을 나누는 것은 옛사람이 경계한 바입니다. 세자(世子)의 직책은 부왕(父王)의 식선(食膳)을 보살피고 문안을 드리는 데에 있을 뿐이옵고, 그 서정(庶政)을 나누어 재결하는 것과 같은 일은 삼대(三代)의 성세(盛世)에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잠깐 그 고증할 수 있는 것만을 들어 말한다면, 옛날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세자가 되었을 때의 나이는 84세였고, 문왕(文王)은 97세였습니다. 문왕이 90세의 나이로 어찌 근무를 게을리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무왕에게 정무를 맡겼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으니, 그가 후세를 위하여 염려함이 깊었던 것입니다. 위(魏)나라·진(晉)나라 이후로 비로소 태자로 하여금 정사를 청리(聽理)하게 하였으나, 혹은 질병 때문이고, 혹은 위태하고 의심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며, 혹은 정벌(征伐) 때문이어서 다 태평무사한 때는 아니었습니다. 당(唐)나라의 태종(太宗)이 태자에게 청정(聽政)을 명령하고, 고종(高宗)이 태자에게 국정의 감독을 명령하며, 순종(順宗)이 태자에게 감국(監國)을 명령하고 주(周)나라의 태조가 진왕(晉王)에게 청정을 명령하며, 송(宋)나라의 진종(眞宗)이 태자에게 일의 재결을 명령함과 같은 것은 다 병이 위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唐)나라의 태종이 고구려(高句麗)를 친정(親征)할 때에 태자에게 감국(監國)을 명령함과 같은 일은 정벌 때문에 한 일입니다. 이것은 다 부득이한 데서 나왔을 뿐입니다. 지금 전하의 이 처사는 정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위의(危疑) 때문도 아니니 또한 부득이하여 한 일에 견줄 수도 없습니다. 경미한 병환 때문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조종(祖宗) 이래로 이러한 옛일은 없었습니다. 이에 어찌하여 삼대(三代)와 조종의 성세(盛世)를 법으로 하지 않고 말세(末世)의 부득이한 일을 본받아 다른 날 정치를 두 곳에서 하여 정권을 나누게 하는 폐단을 열고자 하십니까. 옛날 송나라 효종(孝宗)이 황태자로 하여금 서무의 재결에 참여시키고자 하니, 주문공(朱文公)이 상소(上疏)하기를, ‘일을 익히게 하는 것이 그 덕을 닦는 것을 힘쓰게 하기만 못합니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지론(至論)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굽어 민정(民情)에 좇아 첨사원의 설치를 정지하고 세자로 하여금 강학(講學)에 전심(專心)하게 하시면 종묘 사직을 위하여 매우 다행한 일이며, 생민(生民)을 위하여도 매우 다행한 일이 되겠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오히려 경미한 병환을 염려하신다면 때로 세자로 하여금 곁에 모시어 재결에 참여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정권은 나누어지지 않을 것이며, 백성들이 들어도 의혹하지 않을 것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의 재결로 시행하게 하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97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3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政論)
○癸丑/集賢殿副提學崔萬理等上疏曰:
伏聞殿下將置東宮詹事院, 分委庶務, 實駭觀聽。 政府六曹臺諫累請停之, 殿下不允, 臣等不勝驚惶, 敢陳危懇。 臣等竊謂二政分權, 古人所戒。 世子之職, 在於視膳問安而已, 若其分決庶政, 非三代盛世之事也。 姑擧其可考者言之。 昔周武王之爲世子也, 年已八十四, 而文王則年已九十七矣。 文王以九十之年, 豈無倦勤之心? 然未聞委政於武王, 其爲後世慮深矣。 魏、晋以來, 始令太子聽政, 然或以疾病(式)或以危疑或以征伐, 皆非太平無事之時也。 若唐 太宗詔太子聽政, 高宗詔太子監國, 順宗命太子監國, 周太祖詔晋王聽政, 宋 眞宗詔太子決事, 皆以疾篤也。 若唐 太宗, 親征高麗, 詔太子監國, 此出於征伐者也。 是皆出於不得已耳。 今殿下此擧, 非爲征伐, 非爲危疑也, 亦非不得已之比也, 不過以微痾耳。 況我祖宗以來, 無此古事, 乃何不法三代祖宗之盛, 而欲效叔世不得已之事, 以開異日二政分權之弊乎? 昔宋 孝宗令皇太子參決庶務, 朱文公上疏以謂: "使之習事, 不若勉其修德。" 此誠至論也。 伏望殿下俯循輿望, 停詹事院, 使世子專心講學, 宗社幸甚, 生民幸甚。 若殿下猶以微痾爲念, 時令世子侍側參決, 則政權不分, 而民聽亦不惑矣, 伏望聖裁施行。
不允。
- 【태백산사고본】 31책 97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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