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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7권, 세종 24년 8월 12일 기해 2번째기사 1442년 명 정통(正統) 7년

성균 생원들이 의금부에 수금된 스승을 풀어달라고 상소하다

성균 생원(成均生員) 박충문(朴沖文) 등 90인이 상소(上疏)하기를,

"엎드려 듣자오니, 금년 8월 초10일에 교관(敎官)과 학관(學官)들이 유생(儒生)들의 사고 때문에 연인(延引)되어 의금부에 수금(囚禁)되었다고 하니, 신 등은 속으로 감회(感懷)가 절박(切迫)하여 참람되고 지나침을 기휘(忌諱)하지 아니하고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나이다. 간절히 이르노니, 사(邪)와 정(正)은 양립(兩立)할 수 없고, 향기나는 풀[薰]과 악취나는 풀[蕕]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도(道)가 밝아지면 이단(異端)은 희미하게 되고, 이단이 흥왕하면 우리의 도는 쇠미하게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이에 우리 태조께서는 천운에 순응하여 나라를 여시어 사도(斯道)를 높이 숭상하고 먼저 이단(異端)을 배척하였으며, 태종(太宗)은 이를 잘 이어 조술(祖述)하고 더욱 문교(文敎)를 높였습니다. 또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에 이르러서는 돈독히 도학(道學)의 바름을 믿고 옳은 것 같으면서 그른 것을 통찰(洞察)하시어, 그 사사로이 중이 되는 것을 금지하고 그들의 노비(奴婢)를 몰수함으로써, 선성(先聖)의 도를 익히게 하고 사설(邪說)의 해독을 물리치시니, 신 등은 사도(斯道)가 날로 상승(上昇)하는 것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기었는지 모릅니다.

전일에 학도(學徒) 수십인(數十人)이 광망(狂妄)함을 이기지 못하여 산사(山寺)에 놀러 갔을 때에, 저 중의 무리들이 유산(遊山)의 금령(禁令)이 있음을 빙자하고 자기들 여러 사람의 힘이 강한 것을 믿어, 동구(洞口)까지 쫓아와서 구타까지 하여 모욕을 주고, 또 거짓으로 망령된 고소(告訴)를 제기하였습니다. 우리 전하께서 우선 그 정상을 심문하기 위하여 담당 관원에게 넘겨서 그 까닭을 물으시니 처리하심이 매우 타당합니다. 그러나 유생(儒生)과 중이 공판정(公判庭)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송사한다는 것은, 비록 미친 아이들이 자초(自招)한 일이기는 하나 사도(斯道)를 위하여 생각할 때에는 진실로 유감됨이 있습니다. 더욱이 그 사고(事故)가 사장(師長)에게 연급(延及)하여 수금(囚禁)된 채 추국(推鞫)을 당하게 되니 신 등의 심정은 답답합니다. 그러므로, 장차 비록 죄를 입을지라도 감히 호소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성균관은 풍속 교화(風俗敎化)의 근원이고 예악(禮樂)의 갈피입니다. 이 직책을 맡은 자는 비록 사소한 과실(過失)이 있을지라도 특히 용사(容赦)하는 것은 중(重)하게 대우하기 때문입니다. 신 등이 삼가 학기(學記)를 상고하여 보니, 이에 말하기를, ‘무릇 학(學)의 도(道)는 스승을 엄하게 여기는 일이 어렵다. 스승을 엄하게 여긴 뒤라야 도(道)를 존중(尊重)하게 되며, 도를 존중한 뒤라야 백성들이 배움을 존경할 줄 안다. ’고 하였습니다. 지금 용렬한 중의 한때의 무고(誣告)를 가지고 〈교관과 학관을〉 불러다가 옥에 가두어서 만세(萬世)의 스승을 엄하게 여기는 도리를 더럽혔으니, 신 등은 장차 어디로 돌아가야 하겠습니까. 신 등의 생각으로는, 전하께서 스승을 높이고 선비를 중하게 여기는 일을 하고자 하지 않음이 아니나, 이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한 것은 교관(敎官)으로 하여금 그 규찰(糾察)할 바를 반성하고, 학자는 그 엄중한 다스림을 두려워하게 하기 위한 처사로서, 지나간 일을 징계하여 뒷일을 경계하시는 뜻이 진실로 얕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식한 승도(僧徒)들이 망령되게 말하기를, ‘전하가 우리 도(道)를 숭상하고 믿는다. ’고 하면서, 금지하는 법망(法網)을 돌아보지 않고 의(義) 아닌 것을 함부로 감행하여 아니하는 일이 없습니다. 신 등은 이단(異端)의 해독이 이 일로 인하여 바야흐로 확장되고, 우리의 유도는 이로부터 잠자고 쇠미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일을 만드는 데에는 처음을 꾀하라. ’고 하였고, 《시경(詩經)》에서는 ‘처음 조그마한 새가 훨훨 날아가는 큰 새가 되는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처음을 삼가하지 아니하면 마침내 금(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처음을 더욱 삼가실 것입니다.

또 본관(本館)은 생원(生員)과 진사(進士)의 상주(常住)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유학(幼學)의 무리는 다만 동·서재(東西齋)에 기숙(寄宿)하여 서로 번갈아 들어오고 나가고 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2백 인이나 되는 유생 가운데에 어찌 고유(告由)하는 자가 없겠습니까. 이제 유학(幼學) 이극배(李克培)·서강(徐岡) 등 두어 사람이 속일 수 있는 방법으로 여러가지로 고유(告由)한다면, 사장(師長)이 어찌 그 진정과 허위를 알고 허락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거관(居館)하는 여러 유생들이 죄다 자리를 비우고 놀러 나갔다면, 이것은 진실로 제어(制御)하지 않은 책임이 스승에게 돌아갈 수 있겠지만, 오직 그 중의 한두 명의 미친 아이가 학당(學堂)의 생도들과 함께 가서 장난한 것을 스승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신 등은 거듭 생각하여 보아도 그 죄를 알지 못하여 더욱 유감스럽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신 등의 도(道)를 넓히려고 하는 마음을 어여삐 여기시고, 신 등의 스승을 존경하는 성심을 살피시어 특별한 윤음(綸音)을 내려 스승을 수금(囚禁) 중에서 풀려 나오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사(邪)가 정(正)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게 하여 신 등이 의지해 돌아갈 곳이 있게 하십시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했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97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29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成均生員朴冲文等九十人上疏曰:

伏聞今八月初十日, 敎官與學官以儒生之故, 延繫義禁府, 臣等內切感懷, 不以僭躐爲諱, 而謹昧死以聞。 竊謂邪正不兩立, 薰蕕不相容, 故吾道明則異端微, 異端興則吾道衰, 古今之常理也。 肆我太祖應運開國, 尊崇斯道, 首斥異端, 太宗善繼善述, 益隆文敎, 及我主上殿下, 篤信道學之正, 洞察似是之非, 禁其私度, 收其臧獲, 以閑先聖之道, 以闢邪說之害。 臣等何幸斯道之日昇, 乃者學徒數十輩不勝狂妄, 遊諸山寺, 惟彼僧徒擬諸遊山之禁, 恃其衆力之强, 追及洞口, 旣加歐打之辱, 又有誣妄之訴。 我殿下姑訊其情, 付諸有司, 使問其故, 處之甚得其宜矣。 然儒生與僧, 同訟公庭, 是雖狂童之自取, 爲斯道計, 誠有所憾。 況以其故延及師長, 仍囚推鞫? 臣等鬱悒之情, 將(雖)〔誰〕 控告? 大抵成均, 風化之源, 禮樂之區, 任是職者, 雖有小過, 特赦之, 待以重也。 臣等謹按《學記》曰: "凡學之道, 嚴師爲難。" 嚴師, 然後道尊; 道尊, 然後民知敬學。 今以庸僧一時之誣告, 召置於獄, 以累萬世嚴師之道, 臣等將安其歸? 臣等以謂殿下非不欲崇重師儒, 至於如此者, 欲使敎官省其糾察, 學者懼其痛繩, 其所懲前戒後之意, 誠不淺矣。 然無識僧徒妄謂殿下崇信吾道, 不顧禁網, 恣行非義, 無所不至, 臣等恐異端之害由是而方張, 吾儒之道從此而寢微也。 《易》曰: "作事謀始。" 《詩》曰: "拚飛維鳥。" 信乎始之不謹, 終之莫禁, 伏惟殿下益謹始焉。 且本館, 生員進士之所恒居, 而幼學之輩, 但寄東西齋, 更相出入而已, 而況二百諸生之中, 豈無告由者乎? 今幼學李克培徐岡等數人, 以可欺之方, 多般告由, 則師長安知情僞而不許乎? 居館諸生席卷慢遊, 是誠不制御, 責有所歸。 唯其一二狂童, 與學堂之生偕行作亂, 彼惡知之? 臣等反覆籌之, 不知其罪, 尤加憾焉。 伏望主上殿下憐臣等弘道之心, 察臣等尊師之誠, 特降綸綍之音, 俾出縲絏之中, 使邪不得以亂正, 紫不得以間朱, 則臣等得有依歸。

不允。


  • 【태백산사고본】 31책 97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29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