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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7권, 세종 24년 8월 4일 신묘 1번째기사 1442년 명 정통(正統) 7년

정갑손·민건·허사문·백효삼 등이 첨사원 설치를 반대하는 의견을 아뢰다

대사헌 정갑손(鄭甲孫), 장령 민건(閔騫), 지평 허사문(許斯文)·백효삼(白效參) 등이 궐하(闕下)에 나아가 아뢰기를,

"어제의 하교에 이르시기를, ‘첨사원(詹事院)은 내가 부득이하여 설치한다. ’고 하시었으나, 이 일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말한다면 종묘 사직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 장차 큰 법을 세우심에, 어찌하여 대신에게 의논하여 국민의 여론을 청취(聽取)하지 않습니까. 신 등은 되풀이하여 사리(事理)를 따져 보아도 하나도 가(可)하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은 일의 미세하고 기밀한 데를 알지 못하고 실정에 먼 말을 하고 있다."

고 하였다. 갑손 등이 다시 아뢰기를,

"신 등은 본래 타국(他國)의 신하가 아닙니다. 국정(國政)의 대체(大體)에 있어서 무엇을 모르겠습니까. 신 등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춘추가 한창 장성(壯盛)하시고 별로 노췌(勞悴)해야 할 일도 없사온데, 국가의 서무(庶務)를 어찌하여 반드시 동궁(東宮)에게 맡겨야 한단 말입니까. 신 등이 비록 아는 것은 적고 본 바는 얕으나, 삼대(三代) 이전에는 이러한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더욱이 태조태종도 또한 이 제도는 설치하지 않았사온데, 어찌 조종(祖宗)이 세우지 않은 법을 갑자기 오늘날에 시행하려고 하십니까. 만약 중국 조정의 일을 가지고 말한다면, 태종 황제(太宗皇帝)가 젊어서 풍질(風疾)을 앓은 일이 있으므로 정사를 볼 때마다 번번이 인종(仁宗)으로 하여금 곁에 모시게 하여 전지(傳旨)할 뿐이었습니다. 인종(仁宗) 때에는 선종(宣宗)이 또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 법을 혹이나 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 이때를 당하여 어찌 세우지 않았겠습니까. 예전부터 없었던 일을 이제 갑자기 시행하였다가, 만약 영원한 후세까지 다 오늘과 같은 성세(盛世)일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을 것이지만, 적어도 혹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말류(末流)의 폐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태종이 전하에게 국사를 부탁하신 것은 그 뜻이 반드시 이러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오니, 원컨대, 깊이 생각하시고 헤아림을 더하여 모름지기 대신 및 국민들과 더불어 모의(謀議)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다시 할 말이 없다. 경 등도 또한 무슨 다시 더 진술할 말이 있겠는가. 내가 마땅히 친히 대사헌을 보고 타이를 것이다."

고 하였다. 갑손(甲孫)이 다시 아뢰기를,

"임금의 하교하심이 이미 자세하고 신 등의 말도 또한 다하였습니다. 비록 인견(引見)하시는 영광을 입더라도 성상(聖上)께서는 하교(下敎)하실 말씀이 없고 신도 계달(啓達)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용(引用)한 당나라 제도를 보니 첨사원은 요속(僚屬)에 대한 일을 관장(管掌)하였을 뿐이고 천자(天子)의 서무를 다스린 것은 아닙니다. 첨사원을 설치하여 나라의 서무를 다스리게 하는 것은 본래 당나라의 본의가 아닙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계시면 그의 뜻을 살핀다. ’고 하였으며, 해석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아버지가 있으면 아들이 스스로 전단(專斷)하지 못한다. ’고 하였습니다. 또 동궁(東宮)은 신하이온데, 어찌 스스로 전단(專斷)하고 위에 사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관직을 한 번 설치하면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의 도리가 어그러질 것입니다. 중국 조정에서 항상 우리 나라를 예의(禮義)가 있는 나라라고 하였는데, 만약 이 법을 듣는다면 그들이 어찌 우리 나라에 군신 부자의 도(道)가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또 역대(歷代)의 옛일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어찌 어질고 훌륭한 임금들이 첨사원은 설치함이 좋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직 이 법은 없었던 것이 어찌 다 오활(迂闊)하여 그러하였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거듭 깊이 헤아려 생각하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의 말은 실로 자세하게 다하였다. 내가 마땅히 친히 보고 나의 뜻을 일러주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97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2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辛卯/大司憲鄭甲孫、掌令閔騫、持平許斯文白效參等詣闕啓曰: "昨日敎曰: ‘詹事院, 予不得已而設之, 然此事關係宗社。’ 若論其不得已, 則未有如宗社之重也。 今將立大法, 何不議諸大臣, 以取國論乎? 臣等反(覈紬)〔覆籌〕 之, 無一可者。" 上曰: "卿等不知事之細密, 乃爲迂闊之說。" 甲孫等更啓曰: "臣等, 本非他國之臣也。 於國政大體, 何所不知! 臣等竊意殿下春秋鼎盛, 別無勞悴之事, 國家庶務, 何必付於東宮? 臣等雖薄識淺見, 然三代以前, 未聞如此之制也。 況太祖太宗亦不設此官, 豈可以祖宗不立之法, 遽行於今日乎? 若以朝言之, 太宗皇帝少患風疾, 當視事之時, 每令仁宗侍側, 傳旨而已。 仁宗時, 宣宗亦如之。 此法儻若可立, 則當是時, 豈不立乎? 古來未有之事, 今乃遽行, 若使萬世皆如今日之盛, 則猶可也, 苟或不然, 則末流之弊, 不可勝言。 且太宗付托於殿下, 其意必不如是, 願加商量, 須謀及大臣與國人。" 上曰: "予更無所言, 卿等亦安有更陳之言? 予當親見大司憲論之。" 甲孫更啓曰: "上敎已詳, 臣等之言亦盡, 雖蒙賜見, 上無所敎, 臣無所啓。 然今觀所引制, 詹事院, 掌太子僚屬之事耳, 非治天子之庶務者也。 設詹事院, 使治國之庶事, 固非家之本意也。 古人云: ‘父在, 觀其志。’ 釋者曰: ‘父在, 子不得自專。’ 且東宮, 臣也。 安可自專而不稟於上乎? 此官一設, 而父子君臣之道乖矣。 朝廷常以我國爲禮義之邦, 若聞此法, 則其肯謂我國有君臣父子之道乎! 且以歷代言之, 豈無賢聖之君能知詹事院之爲可設也! 然而自古及今, 未有此法, 是豈盡迂闊而然歟? 願殿下反覆商量。" 上曰: "卿等之言, 實爲詳盡, 予當親見, 以諭予意。"


  • 【태백산사고본】 31책 97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2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