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에서 승도들의 안거회를 법으로 금하기를 청하다
사헌부에서 상소하기를,
"그윽이 《대학(大學)》의 치국평천하장(治國平天下章)을 상고(詳考)하오니, 이르기를, ‘재물(財物)을 생산하는데 대도(大道)가 있으니, 생산하는 자가 많고 소비하는 자가 적게 할 것이며, 일하는 자는 빨리 하고 쓰는 자는 천천히 쓰게 한다면, 재물이 항상 풍족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만세(萬世)의 재물을 다스리는 도리이요, 불씨(佛氏)의 가르침도 청정(淸淨)과 과욕(寡欲)으로 마루[宗]를 삼고, 산골짜기에 자취를 감추어서 새·짐승과 같이 무리를 지으며 풀잎으로 옷을 하고 나무 열매를 먹을 뿐이오니, 어찌 포식 난의(飽食暖衣)하여 큰 집에 편히 살게 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함은 그들 스승의 가르침에 위배(違背)되는 것입니다.
근래에 무행(無行)002) 한 승도(僧徒)들이 권문(勸文)을 싸서 받들고 중외(中外)에 횡행하면서 이르기를, 아무 절의 안거 간사(安居幹事)라고 하면서 인연(因緣)과 화복(禍福)의 설을 허황하게 퍼뜨려, 백단(百端)으로 속이고 꾀여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행동을 하니, 어리석고 무지한 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대부(士大夫)로서 유식하고 개명(開明)한 자도 혹 눈이 어두어 의심을 하고, 평소에 교만하고 인색 비루(鄙陋)한 자나, 호상(豪商)으로 장사함에 있어 털끝만한 이해에도 무섭게 계산하던 자들도 안거 반승(安居飯僧)의 일이라면, 재산의 유무(有無)를 헤아리지 않고 가산을 다 기울여 털어서 사원(寺院)에 시주하기를 오히려 남에게 부족할까 두려워하며, 하찮은 지아비와 지어미들도 집에 아무런 저축도 없으면서 쌀말과 베짜트리를 내어주려고 애쓰오니, 이렇게 작은 물건들이 모여서 거만(巨萬)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민간의 재물이 가만히 다 녹아 들어가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승도(僧徒)들이 재물을 탐내고 얻기에 만족함이 없으니, 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실로 부극(掊克)003) 의 겁탈하는 피해보다 심하여 국력(國力)을 여위게 하고 백성을 병들게 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또 천지간에 생산되는 재물은 제한된 수량이 있어서, 이것이 관에 있지 아니하면 민간에 있고 민간에 있지 아니하면 관에 있는 것인데, 안거회(安居會)에 소비되는 재물은 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민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대로 쓸모없는 곳에 버리는 것과 같은데, 아깝게 여기지 아니합니다.
하물며 우리 나라는 성조(盛朝)004) 가 시작된 이후로 밝은 정치가 거듭 흡족하여 평화한 세월이 오래 이어져 왔으므로, 인물의 성함은 옛날보다 배로 늘었으나 산천이 험하게 가로막혀 있으며, 토지는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여 군량도 넉넉하지 못하고 민생들도 풍족하지 못한데, 저 숨어 다니는 중들은 눈으로 오곡(五穀)이 무엇인지 가려 내지도 못하며 발이 농사짓는 밭이랑에 가본 일도 없으면서 백성의 고혈만을 빨아먹고 백 명씩 떼를 지어서 화당(畫堂)에 편히 살며 옥식(玉食)을 배불리 싫도록 먹고, 사지(四肢)를 놀리고서 아무 하는 일 없이 한가롭게 편히 쉬면서 제 세상처럼 잘 살고 있고, 국가에 바치는 세납은 무엇으로 아는지 한번도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가엾은 우리 농부들은 몸이 빗물에 젖고 흙 묻은 발로 한 해가 끝나도록 농사에 쪼달리면서 걷어가는 공과금의 독촉을 받는 나머지, 우러러 부모를 섬기고 엎드려 자녀를 길러 낼 재물도 오히려 이어 가지 못하여 기한(飢寒)과 궁축(窮縮)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놀고 있는 자는 먹을 것이 그 가운데 있고, 밭 가는 자는 굶주림이 그 중에 있게 되니, 편하고 즐거우며 배부르고 따습게 사는 자와 바쁘고 괴롭게 일해도 굶고 춥게 지나는 자가 이렇게도 거꾸로 뒤집히고 반대로 됨이 이와 같은 데 이르렀으매, 이것이 가히 마음 아프다고 하는 일입니다.
원컨대, 지금부터 승도(僧徒)의 안거(安居)는 일체로 금하고 안으로는 본 사헌부와 밖으로는 각도 감사가 때없이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수사하여 그른 일이 발각되면, 그 사주(寺主)·간사(幹事)와 같이 재물을 모아서 바치려고 자원한 대소 남부(大小男婦)들을 법에 의하여 죄주고, 시납(施納)한 재물은 관에서 전부 몰수하여, 담당한 관리들 중에 이 법을 문구(文具)로 알고서 그를 검거(檢擧) 또는 과제(科制)하지 아니하는 자는 죄주고 파면하게 하는 것으로 항식(恒式)을 삼아서 인민의 피해를 제거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면서 말하기를,
"승도들이 비록 안거회(安居會)로 먹고 지낸다 하더라도 역시 그들의 본분으로 먹는 것이니, 평상시에 먹고 지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만약 중 되는 것을 금하고 절을 전부 허물어 없애라는 말로 청한다면 모르겠거니와, 이미 그들을 승인(僧人)으로 삼고서 먹는 것만 버리게 할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지평 박추(朴崷)가 아뢰기를,
"저 승도(僧徒)들이 반드시 안거회를 기다려서 굶어 죽기를 면한다면, 신 등이 어찌 감히 이렇게 와서 청하오리까. 놀고 지나는 무리들이 주림을 면할 정도로 얻어먹으면 족할 것인데, 안거(安居)를 칭탁하고서 백성의 재물을 꾀여서 빼앗아 배불리 먹고 따슨 옷을 입고 화옥(華屋)에 편히 사는가 하면, 백성들은 한 해가 끝나도록 부지런히 일해도 기한(飢寒)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일입니다. 또 안거회에 많은 진수성찬을 차리니, 속세의 잔치 놀이와 무엇이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속세의 잔치놀이를 금지한다는 것이 법령으로 정해져 있으니, 안거회를 베푸는 것도 역시 금지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것을 금약(禁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하고자 하는 대로 맡겨둔다면, 일하기를 싫어하는 놀고 게으른 백성들이 다 중이 되기를 좋아하여 군액(軍額)이 날로 줄어 갈 것입니다."
라고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완성된 법이니, 그대로 따라서 잘하면 족한 것이다. 유자(儒者)들이 다투어 가면서 새 법을 세워 달라고 청하는 것을, 어찌 하나하나 다 실행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5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89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政論)
- [註 002]
○丁卯/司憲府上疏曰:
竊稽《大學》 《治國平天下章》曰: "生財有大道, 生之者衆, 食之者寡, 爲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此萬世理財之道也。 佛氏之敎, 以淸淨寡欲爲宗, 棲迹山谷, 與鳥獸同群, 草衣木食而已。 安有飽食煖衣, 安居廈屋之理乎? 是反其師敎也。 近來無行僧徒, 齎擎勸文, 橫行中外曰: "某寺安居幹事。" 虛張因緣禍福之說, 誑誘百端, 惑世誣民。 蠢蠢無知, 不足道也, 士大夫之開明有識者, 亦或疑昧, 素號驕吝鄙嗇者及豪商黠賈計在秋毫者, 至於安居飯僧之事, 則不計有無, 傾家破産, 施納寺院, 猶恐不足。 匹夫匹婦, 家無所儲, 而勉出斗米尺布, 銖累寸積, 以至巨萬, 民財潛消, 暗削而莫之知也。 僧徒貪得無厭, 若固有之, 實有甚於掊克刦奪之害。 瘠國病民, 無大於此者。 且天地生財, 只有此數, 不在官則在民, 不在民則在官。 其安居糜費之財, 在於官乎? 在於民乎? 是棄之無用之地而不惜也。 況吾東方盛朝開創以來, 重熙累洽, 昇平日久, 人物繁夥, 倍於曩昔, 而山川險阻, 地塉民貧, 軍餉不敷, 民生不裕。 彼亡命緇流, 目不辨五穀, 足不至南畝, 浚削民膏, 以百爲群, 安居畫堂, 飽饜玉食, 惰其四肢, 無所用力, 棲遲偃仰, 倘佯自得, 而於國家租賦, 視爲何事, 一無所與。 哀我農夫, 霑體塗足, 終歲勤苦, 催徵科斂之餘, 仰事俯育之資, 尙且不給, 或不免飢寒窮縮。 遊手, 食在其中; 耕也, 餒在其中。 閑忙苦樂、飢寒飽暖, 顚倒反逆, 至於如斯, 可謂痛心者此也。 願自今僧徒安居, 一切痛禁, 內而本府、外而監司, 無時差人搜摘, 事覺, 其寺主幹事同願辦集大小男婦, 依律科罪, 施納財物沒官。 所在官吏視爲文具, 不行檢擧禁制者, 科罪罷黜, 以爲恒式, 以除民害。
上不允曰: "僧徒雖安居而食, 亦是分內之食, 與常時所食何異? 若以禁僧毁寺之論來請則可矣, 旣爲人而去其食, 其可乎?" 持平 朴崷啓曰: "彼僧徒必待安居, 而後免於飢死, 則臣等安敢以此來請乎? 遊手之徒, 乞食免飢, 亦足矣。 託爲安居, 誘奪民財, 飽食暖衣, 安坐華屋, 而民則終歲勤苦, 不免飢寒, 深爲未安。 且安居之會, 設多般珍飧, 與世俗宴飮何異? 宴飮之禁, 著在令甲, 安居之設, 亦不可不禁。 若不行禁約, 以從其欲, 避役游惰之民, 皆樂爲僧, 軍額日減矣。" 上曰: "已成之法, 遵而勿失足矣。 儒者爭請立法, 豈可一一盡行乎?"
- 【태백산사고본】 30책 95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89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