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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4권, 세종 23년 12월 9일 신축 1번째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지중추원사 정인지 등이 불교를 숭상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실망을 상소하다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정인지(鄭麟趾)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근일에 듣자옵건대, 전하께서는 흥천사의 부도(浮屠)에 경찬회를 행하시려고 모든 일을 준비하셨다고 하오니, 신 등은 그 옳지 못함을 삼가 아뢰었사오나 윤허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신 등은 자도 걱정 먹어도 걱정이 되와 삼가 소회를 뒤에 조열(條列)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낱낱이 받아들이시고 다시 삼사(三思)하고 유념(留念)하시어 일국 신민의 바라는 바에 부응하옵소서.

전하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로부터 성학(聖學)에 유념하시어 명예가 날마다 높으시니, 세자를 폐하여 세울 즈음에는 태종께서 전하의 학술을 좋아하여 부지런하심을 중국 조정에 갖추어 아뢰어서 드디어 보위(寶位)에 오르게 하시니, 당시에 태종 대왕의 뜻과 일국 신민의 바라는 바는 다름아니라, 전하께서 장차 성학을 크게 밝히시고 세도(世道)를 바로잡아 조선 억만년 무궁한 복이 되게 함이었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날마다 경연(經筵)을 열고 성학을 강명(講明)하여 정치와 교화가 바르고 밝으시니, 대소 신료(大小臣僚)와 군민 부로(軍民父老)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 태종께서 참으로 부탁하신 중한 책임을 맡을 이를 얻었다. ’고 하옵더니, 어찌 오늘날에 불교의 말을 믿고 유익 없는 일을 행하여, 위로는 태종의 뜻을 어기고 아래로는 신민의 바라는 바를 잃을 줄을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임금의 행하는 일을 반드시 기록하나니, 기록한 것이 본받을 것이 못되면 자손들이 무엇을 볼 것인가.’ 하였으며, 또 ‘임금은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도 아낀다. ’고 하였거늘, 행실이 없는 여러 중을 불러 맞아서, 의발(衣鉢)을 베풀고 나고(螺鼓)를 울리며 향소(香疏)247) 를 내려서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솟구치게 하오니, 이는 무슨 일이오며, 지식이 있는 신민은 어찌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의 실망하는 바이옵니다.

1. 흥천사는 우리 태조께서 정릉(貞陵)을 위하여 창건한 것이온데, 뒤에 국가에서 의논하기를, 능(陵)이 성안에 있음은 옛 제도에 합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밖으로 옮기고, 흥천사 석탑은 스스로 없어지는 날을 기다렸사온데, 지난해에 전하께서 조종의 옛 물건이라고 하여 특별히 성념(聖念)을 머무르시어 옛 제도를 더 새롭게 하시고, 간하는 말이 간절하오나 모두 듣지 않으시니, 전하께서는 비록 조종(祖宗)의 유물을 수리한다고 하실지라도,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실로 이것은 불교를 존숭하는 남상(濫觴)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태종께서 일찍이 근신(近臣)에게 이르시기를, ‘선·불(仙佛) 두 교는 세상을 미혹하게 하고 백성을 속임이 더할 수 없으나, 만약 없애기를 급하게 하면 백성의 보고 들음을 놀라게 할 것이니, 점차로 다스려 없애는 것이 마땅하다. ’고 하시고, 이에 전민(田民)을 거두고 절을 줄이며, 법석(法席)을 파하고 재찬(齋饌)을 감하며, 원경 왕후(元敬王后)헌릉(獻陵)에 장사하던 날에도, 태종께서 근신(近臣)으로 하여금 의정부에 나아가서 헌릉에 절을 세워야 할 것인지의 여부를 묻게 하니, 영의정 유정현(柳廷顯)이 대답하기를, ‘신의 부모처자가 모두 죽었사온데, 기도함으로부터 추천(追薦)248) 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하여 부처를 섬겼사오나 터럭 만한 이익이 없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소신은 필부(匹夫)이옵지만, 우리 전하께서는 태조께서 편찮으실 때에 정성을 지극히 다하여 하늘도 감동할 만하였사오나, 또한 이익을 얻지 못하였으니, 무릇 불교가 세상을 속이는 것이 전하여 옴이 이미 오래였거늘, 당시의 임금으로서 그 그름을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전하께서는 천년 만에 한 번 만나는 좋은 기회이므로, 근본을 금해 끊어서 후세에 밝게 보임이 바로 오늘날에 있사오니, 헌릉(獻陵)에 절을 세우는 것은 결단코 불가할 것입니다. ’고 하니, 전하께서 그 당시에 병환 중에 계시면서도 절을 세워서 모후(母后)의 쓸쓸한 슬픔을 위로하기를 청하시매, 태종께서 근신에게 전지하기를, ‘주상의 효도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내가 이제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를 흘렸노라.’ 하시고, 즉시 말씀하시기를, ‘주상의 말이 그러하기는 하나, 헌릉은 내가 죽어 돌아갈 곳인데, 무뢰(無賴)한 승도들이 항상 흉하고 더러운 일을 행하니, 내 베갯머리에 있게 할 수 없다. 정현의 말은 통쾌하다 할 만하다. 이 늙은이가 마음이 격분(激憤)한 때문에 이런 말을 발한 것이다.’ 하시며, 인하여 병조 판서 조말생에게 이르기를, ‘내가 평생에 부처에게 처한 뜻을 경이 자세히 아는 바이니, 나의 스스로 처할 바를 바르게 아니할 수 없다. ’고 하시고, 드디어 절을 세우지 아니하셨으니, 태종의 정녕하신 말씀이 지금도 오히려 귀에 있사옵고, 전하께서도 반드시 들으셨을 것이온데, 전하께서는 성고(聖考)249) 의 밝고 밝으신 훈계를 생각지 아니하시고 태조의 초창기의 일을 칭탁하여 자손 만세의 빙자할 무궁한 폐단이 되게 할 줄을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이 통절(痛切)하는 까닭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오경(五經) 성리(性理)의 오묘(奧妙)를 궁구하시고 백대(百代) 흥망의 자취를 두루 살피시며, 천지 만물의 이치와 득실 사정(得失邪正)의 도(道)를 통달하지 아니하심이 없거늘, 근년에 신민들이 이르기를, ‘궁중에서 부처를 섬기고 귀신을 섬겨서 숭상해 믿음이 날마다 독실하다. ’고 하오니, 그윽이 뜻하건대, 전하의 본의가 아니라, 반드시 사설(邪說)이 있어 전하의 뜻을 시험하였는데, 전하께서 우연히 한 번 허락하신 것이겠사오나, 세월에 젖어 드디어 오늘에 이르러서는 모든 논의를 배척하고 단연코 옳다고 하시오니, 전하의 평시의 학문으로써 어찌하여 성현의 말을 독실히 믿지 않으시기를 저처럼 하시고, 이단(異端)의 말에 미혹하시기를 이처럼 하시는지, 이것이 신 등의 실망하는 바입니다.

1. 신 등이 그윽이 듣자오니, 비구니(比丘尼)의 구(丘)라고 하는 성(姓)을 가진 자가 슬기롭고 간사하고 말을 잘하며, 문자(文字)를 꾸며 요망하고 속이는 일을 다하여 부녀들을 미혹하게 하오니, 이는 요물(妖物)이므로 멀리 내쫓아야 마땅할 바이옵거늘, 근년에 궁중을 인연하여 여러가지로 속이고 꾀어서 의빈(懿嬪)이 머리를 깎고 중의 옷을 입게 하였으니, 만세에 궁곤(宮壼)250) 의 궤범(軌範)이 되게 하는 바가 아니옵니다. 태종의 하늘에 계시는 영혼도 반드시 놀라고 부끄러워하실 것이온데, 전하께서는 어찌 금지하지 않으시어 태종의 부끄러움이 되게 하십니까. 이로부터 궁중에서 잇달아 본받아서, 머리깎기를 다투어 원하는 자가 있으면, 전하께서 어찌 능히 굳이 금하오리까. 무릇 신민(臣民)의 부녀로서 혹 남에게 정조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는 자가 있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중이 되어 정조를 온전히 함은 오히려 가하거니와, 궁중에서야 무엇 때문에 단발(斷髮)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의 소망에 어긋나는 바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이구(尼丘)를 밖으로 내쳐서 근본을 끊고, 또 의빈(懿嬪)251) 으로 하여금 옛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여, 궁중을 바르게 하시면 크게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1. 무릇 제사에는 정(正)과 사(邪)가 있습니다. 천지(天地)·일월성신(日月星辰)·산천(山川)·사직(社稷)·종묘(宗廟)·선성(先聖)·선사(先師) 등에 대한 것은 제사의 바른 것이옵고, 불로(佛老)와 무당에 대한 것은 제사의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임금으로서는 마땅히 바른 위치에 살고 바른 길을 행하며, 황극(皇極)252) 에 서서 만민(萬民)을 바르게 할지라도 백성들이 오히려 바르지 못한 데로 나아가는 자가 있사옵거늘, 하물며 사도(邪道)로써 인도함에서오리까. 옛사람의 말에 이르기를, ‘바른 일을 닦아도 오히려 복을 받지 못하거늘, 사욕(邪欲)을 행하고서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한 것은 옳은 말입니다. 또 부처는 대저 청정적멸(淸淨寂滅)로써 종지(宗旨)를 삼아 인륜이 도무지 없으니, 이미 왕자(王者)로서 마땅히 숭상해 받들 바가 못되옵고, 그 인과보응(因果報應)과 천당(天堂)·지옥(地獄)의 말은 모두 근사한 일을 과장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고 꾀이는 술책이오니, 비록 몸을 버리고 재물을 다하여 귀의(歸依)함이 비록 간절할지라도 절대로 터럭만한 유익이 없을 것이온데, 어찌 전하께서 도리어 어리석은 백성의 하는 바를 행하실 줄을 뜻하였사오리까. 옛적 한(漢) 문제(文帝)가 조서(詔書)하기를, ‘사관(祠官)의 축사(祝詞)가 모두 짐(朕)의 몸에 복이 돌아가기를 빌고 백성을 위하지 아니하니, 짐이 심히 부끄러워하노라. 사관으로 하여금 공경을 다하고, 비는 바는 없도록 하라. ’고 하였으니, 전하께서도 반드시 몸을 위하여 복을 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밝고 밝은 아름다운 덕이 인민을 화합화게 하는도다. 하늘에 복을 받아 자손이 천만에 이르리로다.’ 하였으니, 전하께서도 자손을 위하여 부처에게 복을 구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밝은 임금은 착한 일을 쌓아 복을 이룩하고 재물을 허비하여 복을 구하지 아니하며, 덕을 닦아 재앙을 소멸하고 사람을 수고롭게 하여 재앙을 물리치기를 빌지 아니한다. ’고 하였으니, 전하께서도 반드시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신 등은 우러러 생각하고, 굽어 생각하여도 전하의 하시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신 등의 절통해 하는 바입니다.

1. 신 등은 그윽이 듣자옵건대, 고려 태조 이후로 부처를 섬기는 일이 점점 성하여 5백 년 사이에 대대로 옳은 정치가 없고, 말엽(末葉)에 이르러서는 풍속이 크게 허물어져서 대소(大小) 부녀들이 사찰(寺刹)에 연달고, 무뢰(無賴)한 승도들이 여염(閭閻)에 혼잡하여, 음란한 풍속이 크게 행하고 정치·교화가 쇠미(衰微)하여 드디어 어지러워 망하는 데 이르니, 태종께서는 그 일을 목격하시고 도첩(度牒)의 법을 세우시고 절에 가는 영(令)을 엄하게 하시니, 큰 중이 없어지고 새로 창건하는 절을 금하게 되어 수십 년 사이에 풍속이 바로 잡혀서, 실로 국가의 공고(鞏固)한 기틀이 마련되었거늘, 이제 전하께서 다시 그 근원을 열으시니, 말류(末流)를 어찌 막으오리까. 이것이 신 등의 절통해 하는 바입니다.

1.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게으름이 없고 방탕함이 없으면 사이(四夷)253) 가 귀순해 오리라.’ 하고, 《시경(詩經)》에는 이르기를, ‘처음에는 잘못하는 이가 없으나, 끝까지 잘하는 이가 드물도다.’ 하였으니,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밤낮으로 다스리기에 힘쓰사 안팎이 편하고 일이 없으니, 일국의 신민이 모두 성상의 덕화(德化)를 입어 모두 당(唐)·우(虞)의 시대가 다시 나왔다고 하옵더니, 근년 이래로 신불(神佛)의 일이 점점 성하여 신민들이 이로써 전하의 마음을 엿보옵거늘, 하물며 이제 야인들이 변경을 연달아 침범하고 성을 쌓는 일과 이사시키는 괴로움으로 인하여 원근(遠近)이 요동하오니, 이는 진실로 전하께서 근심하고 부지런하실 때이온데 전하께서는 경찬회를 반드시 하고자 하시니, 이것이 신 등의 깨우치지 못하는 바이옵니다.

1.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제왕(帝王)들이 부처에게 귀의(歸依)하지 아니한 이가 없고, 또 천하가 부처에게 귀의하는데, 우리 나라는 여뀌잎처럼 작거늘, 어찌 홀로 폐할 수 있으랴.’ 하셨으나, 신 등은 생각하기를, 한(漢)·당(唐) 이후로 역대 제왕이 간혹 부처를 섬겨서 큰 화패(禍敗)는 없는 이가 있었으나, 모두 가히 본받을 것은 못된다 하겠습니다. 당(唐) 고조(高祖)는 승니(僧尼)를 사태(沙汰)하였는데, 태종(太宗) 말년에 이르러 애착(愛着)이 많아서 다시 부도(浮屠)를 세워 정관(貞觀)254) 의 정치에 누가 되었고, 〈태종이〉 죽은 지 수십 년도 못되어 당나라에 화(禍)가 참혹하였으니, 부처의 힘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지의 기운이 스스로 성하고 쇠함이 있어 진(秦)·한(漢) 이후로 대대로 좋은 정치가 없고, 이단이 날마다 성하여 승니(僧尼)와 도사(道士)를 비록 갑자기 끊을 수는 없사오나, 임금으로서 처리하는 도리는, ‘갑자기 끊을 수 없으니 아직 숭상해 믿는다. ’고 이를 수 없습니다. 비유하건대, 좋은 곡식을 기르는 자가 낭유(稂莠)255) 를 갑자기 없앨 수 없다고 하여 따라서 북돋우어 키울 수 없는 것과 같고, 또 여뀌잎 같은 나라로서 중이 되는 자가 날마다 많아서 놀고 앉아 먹고 국가의 의무를 도피하는 자의 근거지가 될 것이오니, 이것도 국가에서 마땅히 엄하게 금할 것이옵니다.

1. 당(唐)·우(虞) 삼대(三代)의 거룩한 시대에는 임금이 나라를 오래도록 누리고 백성들이 모두 장수(長壽)하여 천하가 화하고 밝았으나, 당시에는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부처를 섬긴 소치로 그러하였겠습니까. 이로써 보면, 사람의 죽고 사는 까닭과 귀천(貴賤)·영욕(榮辱)의 분수가 부처가 조종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하옵니다. 부처는 스스로 이르기를 과거·미래·현재의 삼세(三世)의 일을 죄다 궁구해 통달한다고 하오나, 오행(五行)의 이치에는 이미 그 자세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천지 인물의 시종(始終)과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변동과 의약 율려(醫藥律呂)의 조리에 대해서는 모두 그 말이 없으니, 이로써 보면, 죽고 사는 까닭을 알지 못함이 명백하옵니다. 부처는 서역(西域)에 있어 중국과의 거리가 겨우 수만 리인데도 오히려 현재의 당(唐)·우(虞) 삼대의 일을 말하지 못하옵거늘, 그 과거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은 허탄하고 망령되어 족히 믿지 못할 것이 명백하옵니다. 천지 조화가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이어서 생생(生生)이 무궁하오니, 이는 모두 자연한 이치로서 바뀌지 않는 수(數)가 있사온데, 부처는 어떤 사람이기에 유독 조화의 권한을 천단하오리까. 만약 선한 자는 복을 얻고 악한 자는 화를 얻는다면, 반드시 부처에게 귀의(歸依)한 뒤에 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성심으로 부처에게 귀의하면, 청정공적(淸淨空寂)하고 무위자수(無爲自守)할 따름이온데, 부처를 만들고 탑을 만들어 부처를 섬기기에 분주하옴은 모두 그 도(道)를 어김이오니, 그 공덕과 보응(報應)이 없음은 틀림없습니다. 이는 전하께서 본래 밝게 강구하신 바이오니, 일일이 덧붙여 아뢸 필요는 없사오나, 전하께서 되풀이해 생각하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1. 전조(前朝)의 불교가 성한 나머지에 사람들이 모두 불교에 귀의하여 세도(世道)가 휩쓴 듯하였는데, 태종께서 영의정 하윤(河崙)과 더불어 모의(謀議)하고 엄하게 배척을 가하여 10에 7, 8을 없애어 우리 도(道)를 밝히고 풍속을 다시 바루시와, 오늘날에 이르러 온 나라 신민들이 모두 불교가 옳지 못함을 알게 되어 이단을 물리치고 정도(正道)로 돌아가게 하시매 들인 힘은 적되 공은 많을 때이온데, 전하께서 도리어 독단으로 모든 의논을 배척하고 일으켜서 높여 섬기시니, 이것이 신 등의 소망에 어긋나는 바이옵니다.

1.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대저 사냥·주색(酒色)·유희(遊戲)·완호(玩好)256) 등은 모두 제왕(帝王)의 실덕(失德)이 되오나, 화환(禍患)이 자기의 일신과 일시에 그칠 뿐이옵고, 불교에 귀의(歸依)하는 폐단은 그 종결은 반드시 온 세상이 모두 여기에 빠져서 만세에 무궁한 환난을 끼칠 것이오니, 이것이 신 등의 절통하는 바이옵니다.

1. 아홉 길의 산을 만드는 데 한 짐의 흙을 더하지 못하여 일을 완성하지 못한다고 하오나, 전하께서는 인륜(人倫)의 도리에 있어 부자(父子)의 도리로써 말하여도 일호의 부끄러움이 없사옵고, 군신(君臣)의 도리로써 말하여도 한 가지 일의 실수가 없으시며, 형제의 도리로써 말하여도 우애하시는 정을 다하옵고, 궁정(宮庭)으로써 말하여도 엄숙하고 화합한 기운이 있사오며, 모든 정사와 많은 일에 이르러서도 하나의 바르지 못함이 없사옵거늘, 유독 이 부처를 받드는 한 가지 일에만 성명(聖明)의 큰 누(累)가 되오니, 이것이 어찌 한 짐의 흙을 더하지 못하여 공을 완성하지 못함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의 실망하는 바이옵니다.

1.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하여야 백관(百官)을 바르게 하며, 백관을 바르게 하여야 만민(萬民)을 바르게 한다고 하오니, 이는 고금에 뛰어난 격언(格言)이옵니다. 근년에 종실(宗室)의 여러 군(君)이 부처를 받들고 궁중에서도 그러하옵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전하께서도 그러하시니, 대저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더 심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신 등의 소망에 어그러지는 바이옵니다.

1. 전하께서 오늘날 행하시는 일에 두 가지 실수가 있습니다. 대저 부처를 섬겨서 복을 구하는 잘못을 선배(先輩)들이 의논하기를 자세히 하였사오매, 이 이치가 만무하옵거늘, 전하께서 그 말에 혹하시어 부처를 존숭해 섬기시니 이것이 첫째 실수이옵고, 의정부와 대간 및 여러 문신(文臣)과 학생들이 두세 번 간절히 간하오나 전하께서 굳이 거절하시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시니, 이것이 둘째 실수입니다. 무릇 군자(君子)의 허물은 일식·월식과 같아서, 허물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바라보고 허물을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감복해 하오니, 만약 전하께서 마음을 돌이켜서 한 번 윤허를 내리시면, 허물을 아낌 없이 고치는 성탕(成湯)의 덕에 지날 것이오며, 자기의 뜻을 버리고 남의 말에 따르는 요(堯)·순(舜)의 성(聖)스러움을 따를 것이오니, 어찌 신민(臣民)의 다행뿐이오리까. 실로 만세에 무궁한 아름다움이 될 것이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이 일 때문에 봉장(封章)을 받은 것이 많았고, 나는 이미 양(梁) 무제(武帝)가 되었다. 이 일을 정지하기를 명하는 것은 어렵지 아니하나, 내가 능히 그 사람을 사람되게 하지 못하고 그 글을 불태우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좇지 못하겠으며, 또 구니(丘尼)가 궁중에 나들면서 궁주(宮主)로 하여금 머리를 깎게 하여도 금지하지 못한 것은 나의 과실이다. 대저 임금의 허물을 얽고 짜는 것은 소유(小儒)들의 짓이다. 그 부모들은 집에서 염불하고 경을 읽어도 그 아들이 간하여 그치게 못하면서, 조정에 와서는 남이 상소함을 인하여 임금의 허물을 꾸미는 것이 옳은가."

하니, 정인지(鄭麟趾)가 아뢰기를,

"신하의 간하는 말이 진실로 옳으면, 그 옳은 것만 취할 뿐이옵고, 집에서 하는 일을 어찌 족히 논하오리까."

하였으나, 임금이 마침내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84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정론(政論)

  • [註 247]
    향소(香疏) : 향과 소문(疏文).
  • [註 248]
    추천(追薦) : 죽은 사람을 위해 명복을 비는 일.
  • [註 249]
    성고(聖考) : 부왕(父王).
  • [註 250]
    궁곤(宮壼) : 궁중.
  • [註 251]
    의빈(懿嬪) : 의빈 권씨(懿嬪權氏). 태종의 빈(嬪).
  • [註 252]
    황극(皇極) : 임금의 자리.
  • [註 253]
    사이(四夷) : 사방의 오랑캐.
  • [註 254]
    정관(貞觀) : 당 태종의 연호(年號).
  • [註 255]
    낭유(稂莠) : 강아지풀.
  • [註 256]
    완호(玩好) : 진기한 물건을 좋아하는 것.

○辛丑/知中樞院事鄭麟趾等上疏曰:

臣等近日伏聞殿下欲慶讃興天寺浮屠, 措辦諸事, 臣等謹陳其不可, 未蒙兪允, 臣等寢食輾轉, 謹以所懷條列于後, 伏望殿下一一採納, 更留三思, 以副一國臣民之望。

一, 殿下自在潛邸時, 留心聖學, 名譽日隆, 及至儲位廢立之際, 太宗以殿下好學不倦, 具奏朝廷, 遂登寶位。 當時太宗之意與一國臣民之望, 無他, 以殿下將丕闡聖學, 扶持世道, 以爲朝鮮億萬世無疆之福, 而殿下卽位之後, 日開經筵, 講明聖學, 政敎修明, 大小臣僚軍民父老, 咸以爲我太宗眞得付托之重, 何意今日信於浮屠之說, 爲無益之擧, 上違太宗之意, 下失臣民之望哉? 《傳》曰: "君擧必書, 書而不法, 後嗣何觀?" 且人主愛一嚬一笑。 招迎無行之群僧, 施衣鉢振螺鼓, 降香疏聳觀聽, 此爲何等事歟? 有識臣民, 寧不愧乎? 此臣等所以缺望者也。

一, 興天寺, 我太祖貞陵而創。 後國家議以爲陵在城中, 不合古制, 遷之於外, 而興天石塔, 以待自夷之日。 往年殿下以爲祖宗舊物, 特留宸念, 增新舊制, 諫說懇至, 皆不之從。 殿下雖曰修祖宗之舊, 臣等以爲實是尊崇之漸也。 我太宗嘗謂近臣曰: "仙佛二家, 惑世誣民莫甚焉。 若去之猝急, 駭民觀聽, 宜當漸次除治。" 乃收田民, 減寺額, 革法席, 省齋饌。 至於元敬王后獻陵之日, 太宗令近臣就問政府以起寺與否, 領議政李廷顯對曰: "臣父母妻子皆亡, 自祈禱至於追薦, 盡誠事佛, 無毫髮之益。 然小臣, 匹夫耳, 我殿下於太祖違豫之日, 至誠動天, 亦不蒙益。 夫佛之欺誣世俗, 流轉已久, 時君世主, 莫有知其非者。 我殿下千載一時, 禁斷根本, 昭示後世, 正在今日, 獻陵起寺, 斷不可爲。" 殿下時方在疚, 請起寺宇, 以慰母后寂寥之悲。 太宗傳旨近臣以爲: "主上孝思至矣, 予今聞之, 不覺下淚。" 乃曰: "主上之言, 然則然矣。 然獻陵, 吾所歸處, 無賴僧徒常事凶穢, 不可在吾枕頭, 廷顯之言可謂痛快矣。 此老叟憤激肝膽, 故發此言。" 仍謂兵曹判書趙末生曰: "予平生處佛之意, 卿所知悉。 予之自處, 不可不正。" 遂不起寺。 太宗丁寧之語, 今猶在耳, 抑殿下亦必聞之矣, 何意殿下不念聖考昭昭之訓, 乃托太祖草昧之日, 因循流俗之擧, 以爲子孫萬世藉口無窮之弊哉? 此臣等所以痛切者也。 殿下窮五經性理之奧, 閱百代興亡之跡, 其於天地萬物之理、得失邪正之道, 靡不通貫, 而近年臣民讙譁以謂: "宮中事佛事神, 崇信日篤。" 竊意非殿下本意, 必有以邪說嘗殿下之意, 而殿下偶一然諾, 歲月浸淫, 而遂至於今日, 排群議斷然以爲是。 以殿下平日學問, 何不篤信聖賢之言如彼, 而疑惑異端之言如此哉! 此臣等之所以觖望也。

一, 臣等竊聞比丘尼姓者慧黠巧舌, 緣飾文字, 聘妖機幻, 媚惑婦女, 此是妖物, 所當黜遠者也。 近年因緣宮禁, 誑誘百端, 懿嬪剃髮披緇, 非所以爲萬世宮壼之軌範也。 太宗在天之靈, 亦必驚駭慙愧矣。 殿下何不禁止, 以爲太宗之羞乎? 從此宮禁繼有則效而爭願落髮者, 殿下寧能堅禁之乎? 夫臣民婦女, 或有恐爲人奪志者, 容有斷髮爲尼, 以全其節, 則猶之可也, 至於宮禁, 何所爲之, 而爲之乎? 此臣等所以缺望也。 伏望殿下亟黜尼, 放之於外, 以絶根本, 亦使懿嬪還復舊儀, 以正宮〔禁〕 , 則不勝幸甚。

一, 凡祀有正有邪, 天地日月星辰山川社稷宗廟先聖先師, 此祀之正也, 佛老巫覡, 此祀之邪也。 王者當居正位行正道立皇極, 以正萬民, 民猶有趨於邪者, 況導之以邪乎? 善乎! 古人之言曰: "修正尙未蒙福, 爲邪欲以何望?" 且佛者, 大抵以淸淨寂滅爲宗, 人倫都盡, 已非王者所當崇奉。 其因緣果報地獄天堂之說, 皆鋪張近理之事, 以爲誑誘愚民之術, 雖捨身殫財, 歸依誠切, 絶無毫髮之益, 何意殿下反爲愚民之所爲哉? 昔 文帝詔曰: "吾聞祠官祝釐, 皆歸福於朕躬, 不爲百姓, 朕甚愧焉。 其令祠官致敬, 無有所祈。" 殿下亦必不爲己求福也。 《詩》云: "顯顯令德, 宜民宜人。 受祿于天, 子孫千億。" 殿下亦必不爲子孫求福於佛也。 古人有言曰: "明王積善以致福, 不費財以求福; 修德以消禍, 不勞人以禳禍。" 殿下亦必不爲百姓求福也。 臣等仰而思, 俯而思, 殊不知殿下之所爲也。 此臣等之所以痛切者也。

一, 臣等竊聞高麗太祖以來, 事佛漸盛, 五百年間, 世無善政, 至于末葉, 風俗大毁, 大小婦女絡繹寺刹, 無賴僧徒混雜閭閻, 淫風大行, 政敎衰微, 遂至亂亡。 太宗目擊其事, 立度牒之法, 嚴上寺之令, 絶棟樑之僧, 禁新創之寺, 數十年間, 風俗歸正, 實爲社稷鞏固之基。 今殿下復開其源, 末流安可塞哉? 此臣等之所以痛切者也。

一, 《書》云: "無怠無荒, 四夷來王。" 《詩》曰: "靡不有初, 鮮克有終。" 殿下卽位以來, 宵旰圖治, 中外晏然, 一國臣民, 咸被聖化, 皆以爲復出也。 近年以來, 神佛之事漸盛, 臣民以此窺殿下之心, 況今野人連寇邊鄙, 城堡之役、遷徙之勞, 遠近搖動, 此誠殿下憂勤之日, 而殿下必欲爲之, 此臣等之所未諭也。

一, 殿下以爲: "自古帝王, 莫不歸佛。 且以天下歸佛, 而我國小如蓼葉, 安得獨廢哉?" 然臣等以爲以後歷代帝王, 間有事佛, 無大禍敗者, 皆非所以可法也。 高祖沙汰僧尼, 太宗末年多愛, 復立浮屠, 以累貞觀之治, 崩未數十年, 室之禍慘矣。 佛力果安在哉? 天地之氣, 自有盛衰, 以後, 世無善治, 異端日熾。 僧尼道士, 雖不得遽絶, 然君上處之之道, 不可謂未能遽絶而姑崇信之也。 譬如養嘉穀者, 不可以稂莠爲不可遽除, 從而培壅之也。 且以蓼葉之國, 爲僧者日衆, 遊手坐食, 以爲逋逃之藪, 此亦國家之所當痛禁者也。

一, 三代之盛, 人主享國久長, 民庶俱躋壽域, 天下熙熙。 當是之時, 佛法未入中國, 此豈事佛之致然? 以此觀之, 人物死生之故、貴賤榮辱之分, 其非爲佛氏操縱明矣。 佛氏自以謂過去未來見在三世之事, 悉皆窮通, 然於五行之理, 已不得其詳, 故天地人物之始終、日月星辰之陵食、醫藥律呂之條理, 皆無其說。 以此觀之, 其不知死生之故明矣。 佛氏處西域, 去中國才數萬里, 尙不能言見在三代帝王之事, 其言過去未來事, 誕妄不足爲信明矣。 天地造化, 往者過, 來者續, 生生無窮, 皆自然之理, 有不易之數。 佛氏何人, 獨擅造化之權哉? 若善者得福, 惡者得禍, 則不必歸依於佛然後得也。 若誠心歸佛, 淸淨空寂, 無爲自守而已。 造佛造塔, 奔走事佛, 皆乖戾其道, 其無功德報應也必矣。 此皆殿下素所講明者也, 不必一一贅陳, 伏惟殿下反覆潛思焉。

一, 前朝佛法爛熳之餘, 人皆歸佛, 世道靡然。 太宗, 與一相河崙謀議, 痛加排闢, 十去七八, 吾道以明, 風俗復正, 至於今日, 一國臣民皆知佛氏之非正, 闢異端歸正道, 事半功倍之秋也。 殿下乃反獨斷排群議而起之, 尊而事之, 此臣等之所以缺望者也。

一, 臣等竊念大抵田獵酒色遊戲玩好, 固皆帝王之失德, 然禍患止於一身一時而已, 至如歸佛之弊, 其終必至於擧世沈淪, 貽萬世無窮之患, 此臣等之所痛切者也。

一, 爲山九仞, 功虧一簣。 殿下於人倫, 語父子而無一毫之愧, 語君臣而無一事之失, 語兄弟而盡友愛之情, 語宮庭而有肅雍之和, 以至庶政萬事, 無不一歸於正, 獨此奉佛一事, 爲聖明之大累, 豈非爲一簣之虧哉? 此臣等之所以觖望者也。

一, 正心以正朝廷,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此超絶古今之格言也。 近年, 宗室諸君奉佛, 宮禁亦然, 至於今日, 殿下亦然。 夫上有好者, 下必有甚焉, 此臣等之所以觖望者也。

一, 殿下今日之擧, 有二失焉。 蓋事佛求福之非, 前輩論之詳矣, 萬萬無此理。 殿下惑於其說, 尊崇事佛, 此一失也。 政府臺省及諸文臣學生再三切陳, 殿下堅拒不納, 此二失也。 夫君子之過, 如日月之蝕,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若殿下翻然一賜兪音, 則改過不吝, 邁成湯之德; 舍己從人, 追之聖, 豈惟臣民之幸? 實爲萬世無疆之休。

上曰: "予以此事受封章多矣, 予則已爲 武帝矣。 命停此事, 固非難矣。 然予不能人其人火其書, 故未敢從之。 且使尼出入宮禁, 使宮主削髮, 不能禁止, 予之過也。 大抵羅織君上之過, 皆小儒所作。 厥父母在家, 念佛誦經, 其子不能諫止, 而立於朝, 因人上疏, 文君之過可乎?" 麟趾曰: "人臣進諫之言苟善, 則但取其善可也。 在家之事, 何足論耶?" 上終不允。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84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