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에서 절에서 금을 쓰는 일을 금하고 경찬회를 파하기를 상서하다
의정부에서 상서(上書)하기를,
"석씨(釋氏)231) 가 얼굴이 누른 것은 날 때부터의 본빛으로 그러한 것이옵고, 처음에 금을 쓴 것이 아닙니다. 우리 동방으로 볼지라도 그 얼굴이 혹은 희고 혹은 붉으며, 혹은 검고 혹은 푸르며, 혹은 누른 것이 같지 아니하온데, 하물며 천하의 사방 팔황(八荒)의 다른 나라와 먼 지역의 사람들의 얼굴빛이 다 같지 아니함과, 얼굴과 모양이 서로 다름은 다 기록할 수 없사오니, 빛이 같지 아니함은 만물의 자연한 이치입니다. 석씨(釋氏)도 사람이므로, 그 얼굴이 누름은 우연히 이 같은 것이오매 애초에 사람과 다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세속에서 화복설(禍福說)에 빠져서 신이(神異)하게 여겨, 무릇 숭상해 받드는 일은 행하지 아니하는 바가 없사오매, 그 빛을 형상하고자 하여 그 얼굴을 금으로 함은 오히려 가하거니와, 혹은 순금으로 몸을 만들고 혹은 은으로 몸을 만들며, 혹은 흙과 나무로 몸을 만들고는 아울러 이금(泥金)을 써서 그 몸과 사지(四肢)를 도금(鍍金)232) 하는 데 이르니, 그 괴이하고 망령됨이 심하옵니다. 그러하오나, 이는 얼굴이 누르다는 말로 인하여 엄연히 쓴 것이옵고, 기타 여러 부처와 여러 보살 등의 무리는 원래 얼굴이 누르다는 말이 없는데, 그 사지(四肢)와 몸통까지도 모두 금을 바르니, 그 터무니 없이 망령되게 만든 것이 또한 심하지 아니하옵니까. 또 허황되고 괴이함이 이보다 심한 것은 그 몸과 사지는 오히려 신이(神異)하게 하여 존숭하거니와, 머리에 이고 있는 집과 발로 밟는 판(板)과 전후 좌우와 당우(堂宇)233) ·동량(棟樑)·서까래 끝과 벽까지 금벽(金碧)234) 이 빛나지 아니함이 없사오니, 옛적부터 내려오면서 천하의 사치를 극진히 하여 천하의 지극히 귀한 물건을 진흙과 모래처럼 쓰니, 재물을 손상하고 백성을 해롭게 하여 정교(政敎)를 패상(敗傷)시킴이 어찌 이와 같은 것이 있사오리까.
또 석가의 문도(門徒)에서 아난(阿難)235) 이 총명하여 능히 스승의 말을 기억한다고 하여, 아난의 말을 좇아 잡설(雜說)을 모으고, 또 그 무리들의 조습(祖襲)236) 한 허탄하고 망령된 말을 편찬하여, 금구(金口)237) 로 말한 바라고 하여, 천함만축(千函萬軸)238) 에 이르렀는데, 역시 모두 금·은으로 글자를 쓰니, 이것이 비록 참으로 금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애초에 금으로 쓴 것이 아니었을 것이온데, 세상에서 다투어 금으로 글자를 쓰니, 그 미혹함이 심합니다. 이제 본국 중외(中外)의 여러 절이 몇 천만이 되는지 알지 못하겠사오나, 큰 절에는 불상(佛像)이 수백에 이르고 작은 절도 2, 30에 내리지 아니하옵는데, 소상(塑像)은 순전히 금을 써서 바르고 화상(畫像)은 사이에만 잡채(雜彩)를 써서, 하나의 불상이라도 금을 쓰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또한 그것이 몇 만억이 되는지 알지 못하겠으며, 금자경(金字經)도 몇 만 권질(卷帙)이 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하온즉 불가(佛家)에서 여러가지로 사용하는 금이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중국 사람이 와서 본다면 우리 나라에 금이 없다고 이르겠습니까. 이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쓰는 것은 불가에서 쓰는 것에 비하면 겨우 천백분의 일이 되옵거늘, 그 금의 많음이 이와 같음은 무엇 때문이온지, 대개 복을 얻고 장수(長壽)한다는 말에 속고 미혹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불경과 불상을 만드는 데에는 금을 가진 이는 모두 주고, 혹 장사하는 자도 모두 값을 갑절을 받고 실어 보내기 때문에 금을 파는 자는 반드시 중에게 팔게 되오니, 금이 장차 다할 것은 주로 이러한 이유에서인데, 백성들의 집에 간직해 둔 것이라면 나라에서 긴급히 쓰일 때를 만나서 거두어 살 수 있사오나, 만약 금이 중에게로 돌아가면 다시 쓸 수 없고 모두 허비되어 없어져서 진토(塵土)로 돌아갈 것이오니, 어찌 몹시 애석하지 아니하옵니까.
가령 불교가 진실하고 거짓이 없어 그 말을 믿어야 한다면, 삼세(三世)239) 의 끝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나온 것이 모두 염화일시(拈花一示)240) 에 지나지 아니하고 언어에 의하지 아니하며, 무유(無有)에 관계됨이 없이, 다만 흙덩이처럼 벽에 얼굴을 향하고, 고목사회(枯木死灰)처럼 한 뒤에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말에 이르기를, ‘무릇 상(相)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만약 제상(諸像)을 보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 아니다.[凡所有相皆是虛妄 者見諸像 非卽見如來]’ 하고 또 이르기를, ‘무주(無住)241) 에 응하여 그 마음이 난다.[應無住而 而生其心]’고 하였으니, 석씨(釋氏)의 전수(傳授)하는 심법(心法)의 절요(切要)한 말이 이에 지나지 아니하오니, 그 인과화복설(因果禍福說)은 과연 상(相)이 아니겠으며, 과연 무주(無住)가 되겠습니까.
이제 승도들의 하는 바가 그 스승의 도(道)에 과연 이같은 실행이 있습니까. 지금 머리를 깎은 자의 상(相)이 있고 주착(住著)242) 이 있는 것이 도리어 머리를 기른 사람보다 심함이 있습니다. 양(梁) 무제(武帝)는 불교에 대하여는 본디 모두 캄캄하게 알지 못하고 오직 본심으로 공양(供養)하는 것을 큰일로 삼기 때문에, 천하의 재물을 다하여 받들어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겨, 마침내 천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삼사(三舍)의 몸이 동태사(同泰寺)의 종[奴]이 되었으니, 그 부처를 받드는 데에는 힘을 다하지 아니한 바가 없다고 이를 만하오나, 서역(西域)의 중 달마(達磨)가 말하기를, ‘그렇게 하는 것은 조금도 공덕(功德)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양 무제가 듣지 아니하였더니, 과연 대성(臺城)에서 〈후경(侯景)의 난(亂)에〉 굶어 죽은 화(禍)가 있었으니 그 보응(報應)의 이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석가의 염화(拈花)한 것과 달마(達磨)가 향벽(向壁)한 것은 동일한 방법이온데, 지금의 중들은 한 사람도 달마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는 자가 없고, 오로지 양 무제를 본받아서 온 세상이 모두 이것이오니, 그 학문의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은 단정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고 꾀어서, 받들고 시주하도록 여러 방법으로 자랑하고 허탄한 일을 꾸며 만드니, 도리어 그 스승의 도(道)를 해침이 얼마나 많으며, 석가와 달마에게 죄를 지음이 심하지 아니하옵니까.
그 스승의 훈계를 멸시해 버리고 감히 허탄하고 망령되게 복을 얻는다는 말을 함은 무엇 때문이옵니까. 다름이 아니라, 중이 되면 일생을 먹고 입는 근원이 오로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가령 한 사람의 중이 마음이 맑고 욕심이 없이 다만 염화(拈花)의 뜻만 지니고 있다면, 그 무리들이 반드시 즐겨서 따를 자가 없을 것이오며, 지금 사람이 귀의(歸依)하여 미포(米布)와 진보(珍寶)를 많이 바칠 자도 끊어질 것입니다. 지금 새로 불상(佛像)과 경권(經卷)을 만드는 자가 날마다 불어 그치지 아니하며, 은으로 소상(塑像)을 만들고 금으로 바르는 것과, 은으로 경문(經文)을 쓰고 등에는 금·은으로 그림하는 것까지 있사오니, 만약 엄하게 금하지 아니하오면 금이 장차 모두 중에게로 돌아가서 남음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국용(國用)이 적어서 여러 도(道)에 사신을 보내어 금이 나는 곳을 탐사하오니 겨우 10여 곳이온데, 그 나는 바와 공역(工役)의 많음을 시험하오니, 나는 바가 심히 적어서 수백 명이 수백 일 동안에 제련한 것이 한 두 냥(兩)에 불과하오니, 이로써 보면 수십 년 백성을 수고롭게 부려서 나는 금이 몇 근, 몇 냥에 불과하온데, 몰래 부처에게 쓰는 것은 어찌 백배(百倍)뿐이겠습니까. 이제 청심원(淸心元)은 사람을 살리는 긴요한 약이오나, 금을 쓰기 어려워서 오히려 금하오니, 만약 불경과 불상에 비교하오면, 그 경중(輕重)이 어떠하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중외에 전교하시어 있는 곳의 수령으로 하여금 크고 작은 절에, 아무 절에는 소상(塑像)이 몇 화상(畫像)이 몇인 것을 죄다 조사하여 각각 그 길이와 넓이의 척촌(尺寸)을 갖추어서 모두 표를 붙이게 하며, 금은자경(金銀字經)도 권질(卷帙)을 갖추어서 일일이 치부(置簿)하여 아뢰게 하시고, 인하여 새로 만드는 불경·불상과 절 집에 금은으로 바르는 것을 엄하게 금하여, 만약 금령을 범하는 자가 있거든 신고하게 하여 범하는 전재(錢財)로써 상(賞)을 주고, 만일 고하지 아니하고서 뒤에 발각되면 가까운 이웃 절에 있는 중도 함께 추핵(追劾)하여 아울러 논죄(論罪)하여, 승속(僧俗)243) 을 물론하고 먼 변경에 충군(充軍)하옵소서.
신 등은 또 생각하옵건대, 흥천사 경찬회는 일국 신료(臣僚)들이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이가 없으며, 분하지 아니하다고 하는 이가 없사오니, 국민이 모두 불가하다 하오면, 이치에 거슬린다 할 만하옵고, 국민들이 모두 분하게 여기면, 여러 사람이 노여워한다고 이를 만하옵니다.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의 학문이 광명정대(光明正大)하사 전고(前古)에 뛰어나시니, 무릇 정치의 도(道)와 경기(經紀)의 법도가 옛 성왕(聖王)에 합하지 아니함이 없사온데, 어찌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으며, 인륜(人倫)이 없는 불교만을 능히 끊어 버리지 못하시고, 도리를 패(敗)하는 비난을 취하옵니까. 무슨 까닭으로 이익 없는 일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의 성냄을 범하십니까. 깊이 전하를 위하여 애석해 하옵니다. 애석함을 말하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는 데 이르오니, 급히 흥천사 경찬회를 파하사, 밝은 시대에 한 점의 누(累)를 없애 버리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83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 [註 231]석씨(釋氏) : 부처.
- [註 232]
도금(鍍金) : 금을 칠함.- [註 233]
당우(堂宇) : 당(堂)의 처마.- [註 234]
금벽(金碧) : 황금색과 푸른 빛으로 단청한 것.- [註 235]
아난(阿難) : 아난타(阿難陀). 석가모니의 종제(從弟)로서 십대 제자(十代弟子)의 한 사람이며, 석가의 상시자(常侍者)로서, 견문이 많고 기억력이 좋아 불멸(佛滅) 후에 경권(經卷)의 대부분은 이 사람의 기억에 의하여 결집(結集)되었다고 함.- [註 236]
조습(祖襲) : 스승의 말을 이어 전함.- [註 237]
금구(金口) : 부처의 입.- [註 238]
천함만축(千函萬軸) : 서적의 많음을 가리킴.- [註 239]
삼세(三世) : 전생·이승·저승. 곧 과거·미래·현재를 말함.- [註 240]
염화일시(拈花一示) : 글이나 말로 전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일. 석가모니가 연꽃을 따서 제자들에게 어떤 뜻을 암시한 일에서 나옴.- [註 241]
○議政府上書曰:
釋氏顔面之黃, 蓋其天生之色然也, 初非施金也。 以吾東方觀之, 其面或白或赤或黑或靑或黃, 不能齊一, 況天下四方八荒殊方絶域之人, 顔色不應盡同, 而其殊形異狀, 不可勝記。 色之不齊, 物之情也。 釋氏亦人也, 而其面之黃, 偶爾如此, 初非有異於人也。 但世俗陷於禍福之說, 以爲神異, 凡所以崇奉之事, 靡所不擧, 欲像其色金其面, 猶之可也, 至於或純金爲軀, 或銀軀或土木軀而竝用泥金, 遍鍍其身體四肢, 其怪妄已甚矣。 然此因面黃之說而泛用之也, 若其他諸佛諸菩薩等象, 元無面黃之說, 而至其支體, 亦皆塗金, 其無稽妄作, 不亦深乎? 又有荒怪甚於此者, 其身體四肢, 猶以爲神而尊崇也, 至于頭戴之屋、足履之板、前後左右與夫堂宇棟樑桷端面壁, 無非金碧輝(暵)〔煌〕 。 古昔以來, 天下之窮奢極侈, 以天下極貴之物, 用之如泥沙, 傷財害民而敗傷政敎, 豈有如此者乎? 又釋氏門徒, 以阿難爲聰明能記師言, 從阿難之口, 裒集雜說, 又撰其徒祖襲誕妄之言, 以爲金口所說, 至于千函萬軸, 亦皆銀金寫字, 此雖眞爲金口之出, 初不應金寫也。 世有競用金寫字, 其惑甚矣。 今本國中外諸寺, 未知幾千萬也。 大寺則佛像至于數百, 小寺則亦不下二三十。 塑像則純用金塗, 畫像則間用雜彩, 無一像不用金者, 亦未知幾萬億也。 金字經, 亦未知幾萬卷帙也。 然則佛家諸般施用之金, 何可量乎? 設有中國之人來見, 則其謂我國無金乎? 是亦不可不慮也。 其爲國用者, 於佛家之用, 僅爲千百分之一也, 其金之多若是, 何也? 蓋得福長壽之說, 爲之誑惑乎! 又於造經像則有金者皆與之, 或有賈者率皆倍價輸送, 故賣金者, 必於僧人, 而金之將盡, 職此之由。 藏於臣民之家則遇國有緊用之時, 可以收買, 若金歸於僧者, 無復可用, 皆爲(糜)〔磨〕 滅而塵土之歸矣, 豈非痛惜之甚者乎? 假使佛敎眞實無妄, 而信其言也, 則三世千萬億之出, 皆不出拈花一示不落, 言語不涉無有, 而但塊然面壁, 若枯木死灰, 然後庶可作佛。 又其言曰: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像非卽見如來。" 又曰: "應無住而而生其心。" 釋氏傳授心法切要之言, 不出於此, 其因果禍福之說, 果爲非相乎? 果爲無住乎? 今僧徒所爲於其師之道, 果有此等實行乎? 今祝髮者之有相有住, 反有甚於有髮者也。 梁 武於佛家, 本皆懜然不知, 惟以本心供養, 爲大事因緣, 竭天下奉之, 猶以爲未足, 卒至視天下如棄弊屣, 三舍身爲同泰寺奴, 其於奉佛, 可謂無所不用其極矣。 西域僧達磨乃曰: "片無功德。" 梁 武帝不從, 果有臺城之禍, 其報應之理安在? 釋迦拈花, 達磨向壁, 同一軌轍也。 今爲僧者, 無一人欲陞達磨之堂, 而專宗梁 武, 滔滔皆是, 其學之是非邪正, 斷可識矣。 其誑誘群愚, 使之瞻奉施舍, 多方作爲誇誕之事, 豈非反害其師之道萬萬也, 而其得罪於釋迦、達磨爲甚重也哉? 其蔑棄師訓而敢爲誕妄得福之設, 何哉? 無他, 爲僧, 一生衣食之源, 專出於此故也。 設有一僧澹然無欲, 而只存拈花之旨, 則其徒必無悅從之者。 今之人歸依, 多施米布珍寶者亦絶矣。 今之新造佛像經卷者, 日滋不已, 而至有用銀爲塑而塗金者, 用銀寫經而背畫金銀者。 若不痛禁, 則金必將盡歸於僧而無遺矣。 今以國用乏少, 遣使諸道, 探覓産金之地, 僅十餘所, 仍令試驗其所出與工役之多, 而所出甚少, 數百人數百日所鍊, 不過一二兩。 以此觀之, 數十年勞民苦役之出, 不過斤兩, 而潛用於佛者, 奚啻百倍乎? 今淸心元, 活人緊要之藥, 而難於用金, 尙且禁焉。 若校諸經像, 則其輕重爲何如也? 伏望殿下敎中外, 令所在官大小寺社推刷, 某寺塑像幾、畫像幾, 各具其長廣尺寸, 悉令着標; 金銀字經, 亦具卷秩, 一一置簿啓聞。 仍令嚴禁新造經像與堂屋塗金銀, 若有犯令者, 令陳告, 以犯錢財充賞, 如有不告後現, 則竝推近隣寺僧, 竝行論罪, 僧俗勿論, 兩界邊遠充軍。 臣等又念興天之會, 一國臣僚, 無不非之, 無不憤焉。 國人皆曰不可, 則可謂悖理矣, 國人皆以爲憤, 則可謂衆怒矣。 殿下天縱之學, 光明正大, 超乎前古, 凡爲治之道, 經紀法度, 無不合於古聖矣, 何獨於無父無君滅絶人倫之敎, 不能頓去, 而以取敗理之譏乎? 何故作無益之事而以犯衆人之怒乎? 深爲殿下惜之, 惜之不已, 至於涕泣。 伏望亟命罷去興天之會, 以去昭代一點之累。
不允。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83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 [註 232]